혈관을 찾을 수 없는 아기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우리 아기가 유난히 자다가 많이 깬 새벽,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하루 전에 병원을 가서 약을 처방받아 왔는데 24시간도 안돼서 상태가 더 심해져 버렸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병원 오픈시간에 맞춰 아기를 안고 출발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은 아기의 걸쭉한 기침소리로 가득했고 나는 제발 폐렴만은 아니길, 입원만은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청진기를 아기 가슴에 대자마자 의사는 ‘보호자분, 아기상태가 많이 안 좋네요. X레이 한번 찍어봅시다.’라고 했다.
X레이 기계에 아기를 눕힌 채 위쪽은 내가, 아래쪽은 방사선 사 선생님이 아기몸을 꽉 잡았다.
앞, 뒤, 옆. 3번의 사진을 찍는 동안 우리 아기는 머리와 등이 다 젖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X레이 찍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눈물이 나오질 않았었다.
그저 그건 무서움에 우는 울음이니, 내 품에서 얼마든지 빠르게 진정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폐렴이 확정된 후 임상병리실부터 입원까지 우리 아기의 울음은 그칠 수 없었다.
임상병리실에 아기의 피검사를 접수한 후 검사대로 갔을 때 임상병리사님의 표정이 퍽 난감해했다. 허둥지둥 다른 동료 병리사를 찾으며‘너무 어린 아기가 왔어, 혈관이 보일까? 00 씨 있어요? 없어요? 아.. 큰일이네 “ 를 반복했다.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없었지만, 우리 아기가 치료를 받아야 하니불안함 마음을 감추고 또다시 아기를 침대에 눕혔다. 아기 팔에 노란 고무줄을 감고 제일 얇은 바늘을 혈관에 찔렀다. 임상병리사는 혈관에 바늘을 꽂은 채 바늘을 돌리며피를 뽑을 수 있는 각을 찾고 있었다. 45초쯤 흘렀을까? 됐다!라는 작은 탄성과 함께 피를 뽑았고 우리 아기는 얼굴이 빨갛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렸다.
피검사 후엔 집에서 코로나 음성 판정 문자를 기다리며 짐을 챙겼다. 제일 큰 여행용 캐리어 1개, 보조용 짐가방 1개 총 2개의 짐을 챙기고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실을 배정받고, 아기를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는데, 뻘게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아기 얼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빠르게 눈물을 삼키고 아이와 함께 주사실로 향했다. 링거를 꽂아야 하는데 수간호사도 임상병리사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무 아기야, 00 씨 없어? 혈관을 못 찾겠는데.. 아… 해보자 일단”
2개의 손등에 바늘을 꽂은 채로 혈관 찾기를 시작했고,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찾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 아기는 흰자가 보일 정도로 자지러 지게 울었고결국 발등으로 링거를 꽂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실 아동병원을 찾아 전원을 했어야 했다.
입원 후에도 아기는 바늘이 빠져 다른 발등에 링거를 다시 꽂아야 했고, 잡고 일어서기 시작한 아기 발을 링거는 견디지 못했다. 결국 의사에게 요청해 링거를 팔로 옮겼지만 10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소요했고 왼쪽 팔뚝이 접히는 부분은 혈관이 터지기만 했다.
“나는 그만할래요.”를 외쳤지만 의사는 다른 곳에 하자며 오른쪽 팔뚝이 접히는 부분에 링거를 꽂았고 3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한 뒤에야 링거를 연결했다. 난생처음 겪은 아픔에 우리 아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동자가 뒤로 넘어가 흰자가 보였다.
병원에 입원한 3일 동안 손등 2번, 발등 2번, 팔뚝이 접히는 부분 2번 총 6번의 바늘을 꽂았다 뺏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혈관이 얇아 보이지 않는 아기를 탓했다.
나는 내가 원망스러웠고 아기에게 죄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성을 가진 인간임에 감사했다.
이성이 없었다면 나는 “혈관이 너무 못생겼네”라고 말할 때마다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면 모든 것이 미안하고, 모든 것에 예민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