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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Oct 23. 2021

아프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첼로를 시작한 뒤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일단 긴장해서 양쪽 어깨에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가서 거의 1년 가까이 ‘어깨에 힘 좀 빼시라’는 얘길 들었다. 그러면 또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 스타일이라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어깨를 다시 있는 힘껏 아래쪽으로 내린다. 그러니까 어깨에서 힘을 빼는 게 아니라 더 힘을 줘서 아래쪽으로 이동시키는 거다. 그러니 어깨는 고질적으로 아팠고, 등도 아팠고, 당연한 얘기지만 첼로 소리도 정말 안 좋았다. 과장 좀 해서 정말 삐그덕 삐그덕 관짝 끄는 소리가 그 정도로 암울하려나 싶을 정도. 지판을 손가락으로 눌러야 하는 왼손은 또 어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소리가 잘 안 나다 보니 지판 뒤에 가만히 대기만 해야 하는 엄지에까지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가서 현을 누르는 다른 손가락과 엄지로 거의 지판을 꼬집어 뜯어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힘을 줬다. 엄지는 가만히 대고 다른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내리 누르기만 해야 하는데 악보 따라가기 급급하다 보니 그게 안 돼서 나온 자구책이었던 것.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안 되는 실력으로 무리해서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다보면 절로 기괴한 자세와 방법들이 난무하게 된다. 문제는 내 자세와 방법이 잘못돼서 아픈 건지 모르고 그냥 처음이니까 익숙해질 때까진 좀 아프기도 해야겠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계속 ‘열심히’ 무리를 하면 어딘가 망가진다는 거다. 

왼손이 점점 더 아파오더니 급기야 설거지할 때 국그릇을 제대로 들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졌다. 아직 관절염을 앓아본 경험은 없었으나 아픈 양상과 느낌이 딱 ‘관절염’ 같았다. 관절염이 왔다고 생각하니 서러웠다. 가뜩이나 노안이 와서 왼쪽 지판을 흘낏거릴 때도 잘 안 보이는데 관절염이라니. 이래서 배움은 때가 있고, 너무 늙어 시작했으니 얼마 못 하고 관절염까지 걸리고, 나는 망했다 생각했다. 

같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친구를 만난 날 어깨도 아프고 손가락 관절도 아프고 너무 아프다고 하소연했더니 그 친구도 여기저기 아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아픈 건 문제가 있는 거야. 생각해봐.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하는 사람들 보면 한 시간 두 시간씩 내리 연주하잖아.” 내가 연주하는 방식으론 십 분만 해도, 아니 2분짜리 곡을 다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교향곡을 4악장까지 연주하고도 나처럼 괴로워하는 사람은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연주하며 그렇게 아픈 게 정상이라면 현악기 연주자 중에 손의 관절이 남아날 사람이 없을 게 아닌가. 그럼 내가 분명 정말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통증은 문제가 있음을 알려오는 우리 몸의 신호다. 그래서 통각은 꼭 필요하다. 증세가 나오고 아파야 사람들이 병원도 가고, 어딘가 곪아 터지기 전에 해결을 할 수 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깨달음을 얻은 후, 나도 다음 레슨에서 선생님께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씀드리고 원인을 찾아 자세를 수정하고 연습을 달리 했다. 그랬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관절염이 온 줄 알고 첼로를 내려놓아야 하나 속상해했는데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아픈 만큼 망가진다. 적어도 이 나이엔 그렇다. 성숙해지는 건 젊을 때나 할 일이다. 그러니 어딘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면,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당신을 계속 아프게 한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세심한 진단을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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