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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와디디 Feb 24. 2023

(졸지에) 스승님의 스승이 된 사연

첼로 입문기. 이 나이에 첼로를 하겠다고

예전에 운동을 하러 동네 짐에 나갔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이 내 몸의 움직임을 보더니 한 말. 

“회원님은 춤은 추지 마세요.”

응? 내가 춤 엄청 못 추는 거 어떻게 아셨지? 

그냥 팔다리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만 봐도 안단다. 그래서 내가 소울도 있고 욕망도 있다고, 흥도 많다고. 그래서 춤 엄청 잘 추고 싶다고 했더니, 그건 그야말로 최악의 조합이라고 했다. 의욕만 충천하는데 몸이 뚝딱뚝딱거리는 경우는 더 눈뜨고 봐주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게 되는 법이라고.      

몸이 안 따르는데 의욕만 과도하게 앞서면 꼭 탈이 난다. 

남의 눈 따위 생각말자, 나만 즐거우면 됐지,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다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익히고 적응하는 데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가뜩이나 몸치인 데다 성격까지 급한 나는 꼭 빨리 잘하고 싶다. 그 아득한 차이 때문에 나는 종종 속상하고, 자주 다친다.      

첼로를 배우면서도 잘하고 싶은 욕망은 불타오르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자연히 무리를 하게 됐다. 문제는 잘못된 자세였다. 어깨에 있는 대로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현과 지판을 계속 봐야하니 나도 모르는 새 목을 앞으로 꺾고 장시간 있게 됐고, 어느 날부턴가 뒷목과 등이 찌릿찌릿 아파오기 시작했다. 단순 근육통과는 다른 통증이었다. 송곳처럼 예리한 무언가가 목과 등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그리고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등을 대고 누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X-ray와 MRI를 찍은 끝에 받은 진단은 목 디스크. 아직 터지진 않았지만 경추 두 개가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통증을 느끼는 거라고 했다. 자세를 교정하고 통증을 유발하는 일을 당분간 쉬고 보름간 약을 먹으라고 했다. 안 그럼 정말 큰일 난다고. 

15년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번역 일을 하면서도 목 디스크가 생기지 않았었는데 첼로를 시작하고 1년 만에 이 사단이 났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나 첼로 못 하면 어떡하지?”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길게 가기 위해선 일단은 참아야 했다. 연습을 한동안 쉬고 약을 먹은 후에 통증이 나아지기 시작한 뒤에도 연습 시간을 줄였다. 목과 허리를 곧게 세워야 했기에 자세도 계속 신경 쓰고 체크했다. 그리고 2주 만에 레슨을 받으러 가서 선생님께 첼로를 과도하게 연습하다 목 디스크가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첼로 연습 못 해서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젤 먼저 들더라고요.”      

그 다음 시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선생님을 지도해주시는 교수님(그렇다 예술의 세계에는 선생님의 선생님의 선생님이 줄줄이 계시다.)께 가서 말씀드렸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그분, 네 제자가 아니라 네 선생님이다. 좀 보고 배워라. 넌 그저 어디 조금만 아프면 이때다 싶어 연습 못 하겠다고 하는데. 디스크에 걸려서도 첼로를 못 할까봐 걱정하고 계신다니. 네가 그분한테 배워야겠다.”      

그렇게 해서 졸지에 선생님의 선생님으로 등극했다는 사연. 

다행히 목 디스크 덕분에 첼로만 잡으면 힘이 잔뜩 들어가던 몸에서 힘을 빼고 자세도 곧게 세울 수 있었다. (디스크로 고생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도저히 자세를 곧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세가 조금만 무너져도 너무 아프기 때문.) 그래서 소리도 조금 나아졌다.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나쁜 일이 절대 계속 나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선생님을 막 혼내면서 가르치는 더 위대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완전 기분 좋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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