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미천할수록 낯짝은 두껍게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

by 고고와디디

남의눈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매사 그렇지는 않다. 그랬다가는 피곤해서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일찌감치 포기한 부분에서는 누가 어떻게 보든 뭐라 하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잘하고 싶은 것에서는 좀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특히 첼로는 악기의 울림이 워낙 크다 보니 연습을 하면 윗집, 아랫집, 앞집 이웃들이 내 소리를 다 듣고 품평할 것만 같아 잔뜩 위축이 되어 활을 긋는다. 그래서 주 1회 정도는 기를 펴고 활을 제대로 그어보려고 동네 연습실을 빌리는데, 연습실에 가서도 연습실 이웃들이 의식된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물론이고, 옆방, 앞방 연습생들도 신경이 쓰인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옆방이나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갑자기 하던 거 말고 그나마 좀 자신 있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식이다. 어이없는 짓이란 거 안다. 그들은 내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본다 해도 오늘 하루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일 뿐인데! 변명을 좀 하자면 혼자 사방 벽인 조그마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옆방의 소리가 들려온다. 성악하는 사람, 각종 관악기, 현악기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방음이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연습실이 워낙 촘촘히 붙어 있는 데다 악기의 울림이 크기 때문에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들 악기 하는 사람들인지라 연습하는 사이사이 들려오는 옆방의 얼굴 모를 누군가의 소리에 관심이 간다. 아 저 사람은 고수구나, 아 저 사람은 이제 2,3년쯤 배웠나 보다. 와, 저 사람은 정말 집요하구나, 같은 마디를 벌써 몇 번째 저렇게 반복하는 건지, 얼굴 한 번 보고 싶네. 내가 누굴 평가할 주제는 안 되지만 소리가 들려오니 자연히 이런저런 감상평이 생긴다가 문득 드는 생각. ‘아... 내 소리도 누군가가 다 듣고 있겠군.’

그러나 아파트 이웃주민 눈치 안 보고 제대로 연습 좀 해보겠다고 돈까지 내고 그 무거운 악기를 업고 와서, 다시 연습실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연습해야 할 부분을 안 하고 자신 있는 쉬운 곡만 연주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바보천치 같은 일인가! 그래서 나도 최대한 뻔뻔해지기로 하고 연습에 몰두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는 내 최대치의 뻔뻔함으로도 커버가 어려웠다.

왼손 운지와 오른손 활 움직임의 타이밍을 못 맞춰서 박자가 늦어지고 소리가 깔끔하게 나지 않는 것이 나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이게 잘 안 되니 일단 왼손 운지만 따로, 활 긋는 것만 따로 열 번씩 해오라는 숙제가 떨어진 것.

첼로나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는 현이 네 개뿐이지만 왼손가락으로 지판의 어느 부분을 누르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음계를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연습하는 곡은 딱 두 줄만 오가며 긋는 곡인데 멜로디는 다음과 같다.

레레파파 라라시시 라라레레 도도시시 라라라라 레레레레 솔솔솔 솔 미미미미

레레파파 라라시시 라라레레 미미파파 미미레레도도시 시 라라라라 라라라라

그런데 왼손으로 지판을 누르지 않고 활만 그으면 다음과 같은 곡이 된다.

‘레레레레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레레레레 라라라라 레레레레

레레레레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이렇게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히 이런 의문이 든다. ‘이것이 과연 음악인가?’

그것도 이걸 열 번씩이나 해야 한다. 내가 듣기에도 괴로운데 옆방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지나다니는 학생들은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 나는 공감능력이 아주 뛰어난, INFJ. 따라서 그들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된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연습실에 온 의미가 없으므로.

그러면서 든 생각 한 토막. 운전을 할 때, 앞 차가 미적미적 거리는 바람에 나까지 신호를 놓치거나 옆 차가 어물어물해서 나의 안전까지 위협당하면 상당히 화가 난다. 그러나 우리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인 차에겐 아주 관대해진다. 아예 한 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그래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하는 마음, ‘애쓴다~~’하고 짠하게도 여기고, 양보도 해주고, 알아서 비켜가게 되지 않는가. 그 생각이 드니 나도 내 연습실 문 앞에 ‘초보첼로’라는 문구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듣기 힘든 나의 첼로 소리에도 음악 하는 선배님들이 한 번씩~ 웃고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하지만 아직은 상상뿐. 일단은 이런 정신으로 무장하고 활을 긋는 중이다.

‘아, 몰라. 듣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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