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눈이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졌다. 덩달아 마음의 온도도 떨어졌다. 일요일 밤이 되자 해야 할 일도 뒤로 미뤄놓고 이불속에서 웅크린 채 나 대신 마다가스카르로 떠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를 봤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라니! 어릴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생텍쥐페리 작가의 상상 속 나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있는 나무라는 걸 커서야 알았다. 그곳은 아직도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였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생각해 보니 내일이 별 걱정 되지 않는 그런 날이 있은 지가 언제인지.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 밤마다 내일을 준비했다. 시간표를 보고 내일 수업이 들은 교과서와 공책을 책가방에 넣고, 연필 다섯 자루를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넣었다. 때로는 스케치북, 그림물감, 붓, 팔레트, 물통을. 때론 찰흙과 신문지를. 리듬악기세트나 리코더를, 색종이나 잡지, 가위, 풀을. 줄넘기나 바느질 세트를. 내일을 위한 준비물이 담긴 책가방을 싸놓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도 간혹 도시락 가방이나 실내화 주머니를 두고 가거나, 가끔은 안경을 안 쓰고 학교에 가다가 생각나서 다시 되돌아간 적도 있었다. 나름 꼼꼼히 준비했는데 막상 집을 나설 때는 다른 걸 놓치고 갔다. 어른이 되니 어린 시절 매일 밤마다 빨간 책가방에 미리 싸던 준비물보다 더 무거운 짐을 싸야 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의 수를 센 다음 그 개수를 은행에 예금하며 살고 있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