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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방황은 계속된다

결국 정확한 방향이나 목적지보다는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

by 봉필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삶과 닮아있는 이야기, 혹은 자신의 삶과 정반대에 있는 이야기, 때로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법한 이야기들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그리고 많이 읽힌 책인 성경 역시도 줄줄이 교리만 늘어놓는 형식이 아니라 여러 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이 책을 집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몇 개의 문장보다는 이야기에 끌린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동화책이나, 혹은 텔레비전으로 접했던 애니메이션, 어린이용 프로그램들을 통해 이야기로 자라난 우리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셈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자라왔고, 또 앞으로 살아갈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어릴 적 동화책을 통해 익혀나갔었던 신비로운 이야기부터, 어엿한 소년이 되어 접했던 가슴 뜨거운 사랑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 편의 이야기인 나의 삶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이기에 특히나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소설가, 아니 이야기꾼이라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이 수필을 엮게 되었다. 길다면 길었던 대장정을 마치고 보니 무척이나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10년 간격으로 자신의 자서전을 내는 작가도 있다고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세월이 어느 정도 쌓이면 이 이야기에 이어 붙여보는 노력 역시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내 기준에서) 많은 글을 써 나가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이 이야기들이 모두 나의 삶에 새겨진 소중한 추억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부끄러운 경험들을 하기도 했었지만, 누군가에게 드러내어도 될 정도의 당당함은 어느 순간에나 깃들어 있었다고 자부한다.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다면, 대체 이 세상에 있는 어느 누가 품어줄 것이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오점 없는 인생이란 없다. 그런 사실은 언제나 나의 삶에 위안이 되고, 또 나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들에게 보일 용기를 가져다준다.


지금의 내가 소설가를 꿈꾸게 되고, 여전히 글을 써나가게 된 태초의 계기인 베르테르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지 않은 미래의 막대한 중압감에 짓눌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 괴테의 소설은 나에게 하나의 커다란 울림이 되어 주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사랑을 겪어 본 적도 없었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지독한 현실에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 마침내 생을 마감하게 된 베르테르의 심정에 어쩐지 공감할 수가 있었다. 사랑의 '사' 자도 몰랐던 나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생경한 경험을 그토록 생생히 전하는 괴테의 문장에, 그리고 그의 소설에 깊은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성 간의)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에게 사랑의 경험을, 그리고 그 사랑의 좌절이라는 감정을 안겨주다니.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진한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그리고 나는 그 정도로 진한 액기스와도 같은 문장들로 구성된 이야기를 써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꿈꾸게 되었다.


그 뒤로도 소설가라는 목표는 내 뒤통수에 꼬리표라도 달린 듯 나의 인생 전반을 따라다녔다. 한창 음악에 미쳐(사실 미쳤다고 하기엔 다소 열정이 부족하긴 했지만) 있을 때에도, 지독한 군생활을 겪어나갈 때에도, 일본에 가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을 해나갈 때에도, 뒤늦게 흥미를 가지고 뛰어든 캠퍼스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내 뒤통수에 잔뜩 웅크린 채 나를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현대를 살고 있는 '하루키'라는 닮고 싶은 문인도 발견할 수 있었고, 강건한 철학을 표방하는 니체를 만나면서 나 역시 그런 예술적인 감각과 인생을 통찰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은 사람이 되기를 은근히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이 순간에 인생의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라도 맞이한 듯 와락! 하고 소설가라는 목표가 나의 온몸을 감쌌다고. 그런 식으로 나는,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때로는 내가 예상치도 못했던 변덕이 나의 삶을 덮칠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에 갑작스러운 계기로 인해서 뚝- 하고 글을 끊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실적인 풍파에 부딪혀 심각한 고뇌의 늪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껏 잘 버텨온 인생 속에서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전까지 겪은 적 없는 막대한 위기에 짓눌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하다. 그저 나는 또렷이 오늘의 목표를 내일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최선을 다하는 그 속에서 현실의 상황이나 특정 결과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는 나의 손에서 아득히 떨어져 있는 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오늘을 살아갈밖에.


결론적으로 내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듯이, 우리는 인생에서 대부분의 순간들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기치 못하게 압도적인 힘을 가진 맹수와 밤길에 만날 일도 없고, 거대한 매머드를 사냥하다가 그 뒷발에 차여 죽음을 맞이할 일도 없고, 매일매일 힘겹게 이어지는 전쟁 속에 나의 목숨의 안위를 우려해야 할 일도 없다(물론 지구상 어느 지역에서는 그렇겠지만). 집값이 비싸다느니, 물가가 어떻다느니, 앞으로 연금이 어떻게 된다느니... 사실 그런 것들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당장에 그런 미래가 펼쳐지든 펼쳐지지 않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일을 찾아서 하기만 하면 그만인 인생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미래 정도는 누릴 수가 있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어차피 방황할 뿐인 인생 앞에 가만히 멈춰서 있는다 한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살아 숨 쉬는 한, 그런 방황들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아니, 지속해 나갈 수밖에 없다. 어느 길로 가든 '안정적인' 길이란 없다.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우리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 스스로의 일상만큼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또 그런 사실을 이용해야만 하는 의무가 우리 인간에게는 있다고 생각한다. 두려워말고 부딪치고 깨어지며 경험이라는 자산을 쌓으면서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한 자신만의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숙제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좌절하고 우울에 빠질 수는 있지만,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언제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당당히 자신만의 인생을 꿋꿋이 살아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 역시도 이 글의 서사와 메시지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앞으로도 그런 삶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방황하는 자들이여, 부디 쓰러지지 않기를.


KakaoTalk_20241117_113539259.jpg 2017년 12월 상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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