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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또다시 글쓰기

작가, 더 나아가 소설가라는 목표를 향해서

by 봉필


자본 자체가 인생의 풍요를 책임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수준이 밑바닥으로 치달았을 때 자본만큼 인생에 치명적인 녀석 또한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인 위기는 그 자체로 삶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녀석이라는 생각이다. 올해 최악의 경제 사태로 꼽을 수 있는, 2024년 8월 5일에 일어난 블랙 먼데이 쇼크로 인해 나의 주머니 사정은 더없이 쪼그라들었다. 자본의 수급 측면에서는 오직 투자에만 매달려 왔었기에(그나마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그 부분에서 더 이상 기댈 만한 구석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거나, 유튜브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노동에 대해 한동안 찾아보기도 했었다고.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생각해 보니, 글쓰기를 열심히 해본 적은 없었잖아?"


그렇다. 지금껏 나의 삶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분야는 단연코 음악과 글이었다. 이래저래 그와 관련 없는 직업들을 거치며 살아오기는 했지만, 내가 삶에서 진실로 열정을 다하고 싶었던 것은 딱 그 두 가지로 정의 내려볼 수가 있다. 대학을 그만둔 뒤의 백수 시절에는 짧은 시간이나마 음악에 대한 열정을 원 없이 털어낼 수 있었다. 반면에, 글쓰기는 여태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으로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저 무슨 일을 하든 곁들여서 드문드문 이어왔을 뿐,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거나 완전히 글에 몰두하여 하루에 정해진 분량만큼 써낸다거나 하는 열정을 불태워 본 적은 없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써야지, 나중에는 소설가가 되어야지와 같은 뜬구름 잡는 생각들만을 이어왔을 뿐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마침내, 나는 글을 제대로 써보기로 결심했다.


8월 초에 막을 내렸던, 지독했던 지난 연애를 겪으면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참으로 많았다. 우리는 인생의 지독한 고통 속에서 그에 걸맞은 진하고도 선명한 교훈과 가르침을 얻어낼 수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으로 잔인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이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하나, 지나친 고통에 버무려진 삶을 떠올리면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절망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하다. 경험상 가볍게 배운 것은 가볍게 잊히기 마련이었다. 오직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고통을 수반해야만 하는 삶이기에, 우리는 인생의 매 순간 고통과 마주해야만 하는 지독한 저주에 걸려버린 듯도 하다. 일찍이 부처는 자신을 둘러싼 그러한 삶의 속성에 통달하여 삶 자체가 고통이라는 정의를 내렸던 것이었겠지. 카뮈가 말한 생의 부조리함은 내 인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진리와도 같은 것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삶의 속성이 그런 것이라면, 마땅히 니체의 말처럼 그런 운명 또한 사랑하고, 카뮈의 주장처럼 그런 부조리에 마땅히 반항하며 살아갈 뿐이다. 평화로운 사랑과 연애를 이어올 때에는 깨닫지 못했었던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최악의 상대와 만나 극악의 연애를 경험한 뒤에 나름대로 깨닫게 되니 기뻐해야 맞는 걸까, 슬퍼해야 맞는 걸까? 여전히 나는 내 감정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어쨌거나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그런 속성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끌어안을 뿐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니 말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키워나가면서, 지난 사랑에 대한 여파로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담은 에세이를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플랫폼을 찾던 와중에 '브런치 스토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기실, 브런치 스토리와의 연은 꽤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랫폼이 처음 태동했던 2015년 당시에 나는 군인이었다. 우연히 어디선가 글쓰기 플랫폼이 새로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짧은 글을 엮어 작가 신청을 했다가 좌절했었던 것이 브런치 스토리에 관한 나의 첫 번째 기억이다. 두 번째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애드 포스트 승인이 난 뒤에 자신감을 가지고 재도전했었던 2022년이었다. 대충 아무렇게나 끄적인 글들을 어떻게든 엮어 신청을 했더랬다. 역시나 그때에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지 못했었다. 다시 글쓰기와 당당히 마주하게 된 2024년, 과거와 차원이 다른 간절한 마음가짐과 더 나은 글 실력(드문드문 이어오기는 했었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도전해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 세 편을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작가 신청을 했고, 곧장 다음날 나는 작가 승인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올해 9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미친 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스토리에 하루에 하나씩 글을 포스팅해 나갔고, 네이버 블로그에도 하루에 하나 이상씩 포스팅을 이어갔다. 지금껏 살면서 이토록 글을 열심히 써 본 적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채워져 있던 자물쇠를 한 번에 깨부수기라도 한 듯, 내 머리와 마음에 잠들어있던 글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었던 기억들이나, 특별한 경험을 통해 깨달았던 감상들이 봇물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나, 이렇게까지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 정도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예상치 못했던 위기 속에서 나는, 글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발견하고 그것의 열기를 한껏 끌어올려 나갔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하루 종일 글을 쓰는 나의 일상은 감히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고, 블로그나 브런치 스토리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나는 충분히 많은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을 만한 경지에 올라 있었지만, 실제로 시도해보지 않았기에 그런 나의 능력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무엇이든 판단하기가 힘들다. 위기이든 기회이든, 무언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해본 다음에 후회하는 것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는 생각은 다시 한번 그렇게 내 안에 강렬히 새겨졌다.


종국적으로 나는 하루키나 대문호 괴테처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 명의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이야기꾼의 삶이 나의 목표인 셈이다. 그런 목표 지점들에 대해 생각하던 중, 창작의 이야기도 좋지만 우선은 내가 겪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설령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한들, 이야기꾼을 목표로 하는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자 충분한 연습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에서 나의 인생을 담은 이 수필이 탄생할 수 있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일, 느꼈던 감정, 그리고 깨달았던 것들을 그렇게 술술 풀어내게 되었다고. 나의 지난날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참 많은 생각과 감상들이 겹쳐가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추억했던 기억들을 글로 담아냄으로써 한결 더 생생히 그려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더 소중히 간직해야겠다는 나름대로의 다짐 역시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에게 들려줄 만한 나름대로의 교훈도 끌어낼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하나의 울림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자 목표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렇게 글은 나의 삶을 정리함과 동시에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해 준 셈이다. 참으로,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녀석.


그렇게 지금까지 글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을 글로 채워왔기에 나에게는 더없이 길고도 깊이 다가오는 시간들이 분명하다. 아마 앞으로도 미약하지만 나름대로 창대했던 이 시작의 때를 곱씹어보게 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글로벌 경제 상황이나 투자 환경도 충격적이었던 여름에 비해서는 나은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여 보다 여유로운 투자 생활을 이어가며 글을 써나갈 수가 있었다. 매일매일 비슷하지만,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느낌이 참 좋은 요즘이다. 이 나날들의 끝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 여정이 진행될수록 나의 노력과 진심은 빛을 더해갈 것이고, 이런 삶의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나의 노래는 누군가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쓰는 삶을 산다.


KakaoTalk_20241219_200704570.jpg 2024년 가을의 고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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