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둬?
백수일지의 시작인 만큼 나의 퇴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겠지.
수많은 아르바이트들을 경험했던 만큼 그만둔 경험도 참 많지만,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 있어서) 제대로 된 직장을 그만둔 것은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 갖게 되었던 부사관이라는 직업 이후로 두 번째였다. 생각해 보면 이 일, 저 일 많이 거쳐오기는 했지만 죄다 비정규직이었구나. 새삼 '직장'이라는 단어와 한참이나 떨어진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가면서, '백수'라는 지금의 내 처지를 나타내는 단어와 내가 얼마나 밀접한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어떤 틀에 갇히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만큼 처음부터 나의 인생은 이런 비포장 길로 나아가기 위해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날들을 부정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무튼, 그렇다고.
나는 (만) 서른이 된 시점에 이르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시험에 최종합격했던 순간부터 퇴사를 계획하기는 했었지만, 계획보다 다소 이른 시기에 그만둔 것은 사실이다. 직장을 다닌 지 3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이미 직장으로부터 어떠한 미련이나 감회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딱딱한 공직 생활에 나름의 권태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일찍이 하기도 했었지만, 나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으로부터 한참이나 동떨어진 조직이라는 사실을 하루하루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그런 상태로 꾸역꾸역 출근 도장을 찍어대면서 직장 내 사람들과의 마찰도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어차피 떠날 계획이었으니, 괜히 남아 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내 길을 찾아 나서는 편이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퇴사 계획을 앞당겼고, 내 생일이 임박했을 무렵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덜컥- 직장을 그만두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돌이켜 봐도 그 이유가 가장 크기는 했었다. 만일, 일 자체가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고 한다면 내가 그 직장을 그리 쉽게 내려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냐 하는 식의 너무나 지당한 말씀으로 나를 질책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의 어느 지점에 내 의지로 결코 꺾을 수도, 굽힐 수도 없는 어떤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또한 너무나 자명하게 알고 있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머릿속의 생각이나 상식보다 그런 신념을 우선시하며 살아간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 따위 거추장스럽게 붙어 있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고. 나로서는 이렇게 태어났으니, 그저 이렇게 살아갈 뿐이다.
잠시 나의 퇴사라는 주제를 접어두고서 '직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먼저 고찰해 보면 어떨까 싶다.
신분제가 폐지되어 정해진 계급이 없고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강제적으로 물려받지 않아도 되는, 고도로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지는 좀 더 고찰해 볼 필요가 있겠지만). 요즘 그 부작용도 나름대로 부각되고 있는 듯한 그런 '능력주의'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특정 분야에 알맞게 키워나가면 그에 걸맞은 직업, 직장을 거머쥘 수가 있다. 다양한 직업들이 산재해 있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만큼,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시점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 하세요?"
"어떤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신가요?"
우리에게 직업이란, 단순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나의 아이덴티티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나와 마주 보고 선 상대방에 적용할 때에는 그 사람에 대해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척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남들보다) 더 나은 보수와 만족감을 주는 직급과 직장을 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분명히 돈이라는 물질적인 상관 관계도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쪽은 어디까지나 일 자체의 사회적인 측면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경시되는 직업과 보수는 넉넉하지 않지만 남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있다면 어느 쪽의 선호도가 더 높을까? 최근 들어 전자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전히 후자의 선호가 더욱더 강하다고 느낀다. 직업의 사회적 의미는 그만큼 중요한 측면을 함의하고 있는 셈이다.
퇴사를 한다는 것, 백수가 된다는 것은 그런 사회적인 품위를 과감히 내려놓는 행위를 말한다. 누군가로부터 당연한 질문을 받지만, 당연하게 대답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사회 속에서 어떤 고립감을 느끼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야 내 발로 나온 처지이기 때문에 그런 동정심에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누군가는 분명 원치 않은 형태의 백수가 되어 짙은 어둠에 갇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어쨌거나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가운데 관계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자체가 참으로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지극히 본능에 반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그마저도 익숙해지면 또 견딜 만해 지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주관이 그럴 뿐이다.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나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꿈'이었고, '장래의 희망'이었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된 시절부터 줄곧 그런 교육을 받아왔고 나는 마땅히 그런 단어들이 나에게 주는 무게를 실감하며 거기에 대한 고심을 바탕으로 직업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갔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 그 본래의 단어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고, 나의 학생기록부에는 공무원이라는 시시하고 딱딱한 단어가 새겨졌었다. 그와 같은 과거의 경험은, 내가 여전히 이 땅의 교육체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 대해 탐구하고 꿈을 꾸기에 충만한 나이였음에도 지나치게 현실적인 가르침을 억지로 내 안에 욱여넣으려고만 했었으니 말이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런 어른들의 만행이 흘러넘치는 상태였기에 나를 비롯한 또래 아이들은 정도에서 각각 차이를 보이기는 했겠지만 무기력한 수용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에 이르러 그런 환경에 대한 압박감은 절정에 이르렀고, 나는 하루빨리 학교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으로 3년이라는 세월을 그저 '버텨냈다'. 그리고 마침내 성인이 되었지만, 학교가 나에게 준 가르침은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현실 앞에서 또 한 번 무너져 내려야만 했다. 그래, 중고등학교는 그저 우리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뿐이었다. 대학은, 좋은 직장으로의 도약을 위한 디딤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고.
그럼에도 어쨌거나 나는 살아갔다. 아니, 살아가야만 했다. 정말이지 우연한 기회로(진실로 이 정도의 말로밖에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해병대 부사관이라는 직업을 떠맡게 되었고, 무사히 정해진 기간 동안 나라에 충성을 다한 뒤 다시금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 몇 번인가 방황의 세월을 거쳐 마냥 어리기만 했던 시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훅- 하고 와닿은 현실 앞에 경찰 공무원이라는 길을 걸어가게 되기도 했다. 단언컨대 나 스스로도 그런 직업을 원하게 될 줄 몰랐고,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오지도 않았다. 일단 아무 직업이나 몸에 걸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친형이 재직 중이던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에 응시하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몇 개월 만에 합격할 수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복을 입고 있을 내 모습조차도 상상한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세월 동안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아무런 기대 없이 시작했던 공직 생활이었기에 결과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 역시 나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직업은 계절에 따라 바꿔 입는 옷과 같다는 글을 몇 년 전엔가 블로그에 끄적였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유효하다. 지금에 이르러, 정말로 우리 세대가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비해 넘치도록 많은 수명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평생직장'이란 단어는 이제 사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현재 퇴직하고 있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30년 가까이 머물렀던 곳으로부터 나온 뒤에 어떤 현실에 직면해 있는지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을 따름이다. 단순히 하나의 일에 지독히 파묻혀 즐거움을 느껴보는 일도 충분히 보람찰 수 있겠지만, 세상에 흩뿌려진 다양한 일들을 배워나가는 재미 또한 우리 삶에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그리고, 지나치게 하나의 일에만 골몰한다면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균형을 잃고 거꾸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러 벌의 옷을 준비해 놓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단벌 신사가 되든 어디까지나 각자의 옷장을 꾸려갈 개개인의 자유겠지만, 바깥 환경에 맞는 옷을 준비해 놓는 지혜 정도를 갖춘 뒤에 자신에게 꼭 맞는 개성을 찾아나가는 길이 정석이라고 할 순 있겠지. 나는 삶 속의 많은 순간들을 즐기는 가운데, 지나온 계절을 곱씹으며 다가올 계절에 대한 대비를 해 나가고 있을 따름인 셈이다. 잠시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입게 될 옷을 신중히 고르고 있는 중이랄까.
경찰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분명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내가 오래 걸치고 싶은 마음을 먹을 정도로 나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밤낮이 뒤바뀌는 교대 근무, (군대에 비해 덜하기는 하지만)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계급 사회, 융통성 없는 업무 처리 방식, 생각보다 낮은 보수... 등 수많은 단점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내가 일 자체에 큰 흥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주요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바랐던, 혹은 바라고 있는 좋은 직장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나는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좋은 직장'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상당히 이기적인 관점에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모두에게 어울리는 옷이 진정한 의미의 옷인지에 대해서도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 비키니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서 옷을 골라야 한단 말씀. 엉뚱하게 여성복이나 유아복 코너에서 옷을 고르는 불상사 정도는 미연에 방지해야겠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 무슨 일을 해 나갈 것인지 뚜렷한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퇴사를 감행했었다. 유튜버를 할 거라느니, 경제 블로그를 운영할 거라느니, 책을 낼 거라느니 이런저런 계획들이 입으로부터 튀어나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것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는 못했다. 이러나저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었다. 당장의 생활만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으면, 내가 통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가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퇴사 초기를 보냈었다. 결국 그 역시도 돈 문제로 좌절되는 듯한 흐름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