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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원 Sep 23. 2024

2화. 섬의 가족 (2)

부모는 자식을 믿는다.

“강 선생님은 걱정이 많이 되겠어?”

“무슨 걱정이요?”

“무슨 걱정이긴. 그렇게 아끼던 자식들이 전부 섬을 나가버렸으니 걱정이지.”

“이 선생님. 애들을 우리처럼 섬에만 가둬 키울 수는 없잖소.”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하죠. 그래서 난 우리 딸 학교 들어가기 전에 육지로 가려고.”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이 선생은 용진보다 나이가 많지만 아이를 늦게 가졌다. 나이가 35이 돼서야 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때 용진의 첫째 아들인 우성의 나이는 14살이었다. 그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딸을 이 선생 역시 용진과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보다 적극적이었다.     


“강 선생님은 어떻게 육지로 나갈 생각은 없어?”

“없네요, 허허.”

“젊을 때 가. 젊을 때. 늙어 가지고 나가려고 하면 더 발이 안 떼질걸?”

“나가시면 편지하세요. 한 번 보고 나갈 마음이 생기면 도전해 보겠습니다.”     


우찬과 연숙을 육지로 내보낼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착잡했다. 가끔씩 오는 우성의 편지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선 듯 먼저 연락을 보내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혹여 열심히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금세 적응한다. 연숙이 중학교에 올라가는 4년이 지나고서는 더 이상 걱정이 없었다. 우성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지방의 국립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송도의 자랑거리가 됐다. 그 덕에 우성의 장학금 걱정이 없어 우찬과 연숙은 편하게 육지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육지에 아무 일도 없는 건 아니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진 채로 살아가는 우찬 때문에 우성의 골머리가 썩고 있었다.     


“공부는 안 할 거냐?”

“공부? 하기야 하는데 그렇게 점수가 잘 나오지는 않네.”

“그게 안 한다는 증거 아니겠냐. 시험 기간인데 일 나가지 말고 공부나 해라.”     


우찬은 우성과 함께 일을 하면서 공부와는 조용히 멀어졌다. 이제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더 재밌고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우성의 눈에는 우찬이 철이 없고 걱정이 될 뿐이었다.

한편 연숙은 중학교에서 상위권 학생으로 분리되며 우성의 작은 자랑거리가 되었다. 물론 그런 동생을 우찬 역시 이뻐했다. 육지에서는 이미 우성과 우찬 형제가 유명해져 연숙을 건드는 아이들은 없었다. 작은 놀림 하나 없이 연숙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모처럼 삼 남매가 저녁에 시간이 남았고 우성은 동생들을 데리고 동네 볼링장으로 향했다. 평소 우성이 당구장을 다닌다는 걸 안 우찬은 무슨 볼링장이냐며 불평을 늘였다.     


“최근에 동기들이랑 쳐봤는데 재밌더라. 너희도 좋아할 것 같아서.”     


사실 우성은 실력이 하나도 없었다. 교과서처럼 모범생적인 자세만 있었을 뿐 점수는 언제나 두 자릿수에서 멈췄다. 형제는 닮는다고 당구로는 동네에서 유명한 우찬 역시 볼링에는 재능이 없었다. 오로지 막내 연숙만이 볼링에 재능이 있는 듯하였다. 어느새 연숙만 볼링을 치고 있었고 우성과 우찬은 뒤에서 구경만 했다.     


“형님, 당구가 좋지?”

“숙이가 그래도 잘하니까 나도 보기 좋네.”

“저런 걸 보면 난 생각을 잘한 것 같아.”

“숙이를 데리고 오자는 생각?”

“그치. 그래서 말인데 형, 나 하나 더 생각한 게 있어.”     


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얘기가 있다니까?”

“너 담배 피지? 숙이 저렇게 집중할 때 한 대만 피고 오자.”     


밖으로 나온 우성과 우찬은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팔을 털며 추위를 탔다. 곧바로 대화가 시작하지는 않고 우찬이 우성에게 담배 피는 걸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먼저 물었다.     


“우연히 버스에서 내리는데 친구들이랑 피는 걸 봤다.”

“아따, 그걸 들켜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렇게 길 한복판에서 피면 누가 모르겠어. 그나저나 냄새 안 나게 하느라 바빴겠어?”

“친구 녀석이 좋은 탈취제가 있길래 열심히 뿌리고 다녔지.”     


우성의 입에서는 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바람이 불자 언제 있었냐는 듯 금방 사라졌다.     


“하고 싶은 말이 그래서 뭔데.”

“고등학교 안 다닐라고.”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말한 거냐.”

“그니까 한 번 들어 좀 봐봐.”     


우성이 대학을 가면서 원래 일하던 곳에는 우찬만이 남았다. 우성이 그만 다녀도 생활비가 나온다고 했지만 우찬은 학업과 일을 계속 병행했다. 그러던 중 그곳의 사장이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찬은 고민했고 사장은 고등학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월급을 내세우며 열심히 영업했다.     


“형이 허락해 주면 일 배운다고 그랬어. 형도 거기서 일해 봐서 알잖아. 나쁜 곳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고등학교 어떻게 갔는데 그걸 그만두냐. 너, 너 평생 중졸이라고 사회에서 손가락질받으면서 살 거야.”

“그거야, 나보다 못 사는 사람들이나 그럴 텐데 뭐.”     


우성은 다시 담배 연기와 한숨을 함께 내쉬었다.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한 동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20살인 우성은 머리가 아팠다. 몸은 말리려고 안절부적 못하고 있지만 머리로는 동생을 믿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아버지께 한 번 말하고 답 줄게.”     


그다음 날 우성은 용진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짧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없이 난처한 편지였다. 사실 용진이 읽고 바로 안 되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 우성이 일부러 그렇게 쓴 것이었다.     


『아버지께

우찬이 이 녀석이 자퇴하고 기술을 배우겠답니다. 고졸도 아니고 중졸로 남게 되면 사회에서 고운 시선으로 우찬이를 보지 않을 게 뻔합니다. 제 판단으로 동생 녀석의 인생을 결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어 편지 씁니다.

우성 올림』     


우성은 편지를 붙이면서 고민이 싹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용진에게 올 안 된다는 편지를 받을 거라는 확신에 어깨에 가득 쌓인 짐을 내려놓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강 선생님, 육지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3개월만인가요?”     


우체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섬의 용진과 육지의 자녀들이 주고 받는 편지를 옆에서 함께 확인하는 것이었다. 왜 보냐는 용진의 물음에 무협지 느낌이 나 매우 흥미롭다는 대답을 한 우체부를 용진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평소처럼 그와 함께 우성에게서 온 편지를 꺼냈다.

편지를 빠르게 훑어 읽은 우체부는 용진의 얼굴과 편지를 번갈아 봤다. 용진은 편지를 내려놓은 뒤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체부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용진에게 물었다.     


“둘째 아들이 중졸로 남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성과 우체부의 예상과는 달리 용진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오히려 더 잘 됐다는 것 같았다.     


“우찬이 그놈이 늘 생각은 없어 보여도 속이 깊어요.”

“네? 강 선생님, 그래도 중졸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고등학교야 본인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다시 다닐 수도 있으니까. 우체부 양반,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편지도 좀 가져가시오.”

“네? 편지를 어느 틈에 쓰시려고요?”     


용진은 우성이 사준 편지지에 빠르게 무언가를 적은 뒤 봉투에 담아 우체부에게 건넸다. 우체부는 어떤 대답을 썼는지 물었지만 용진은 말하지 않았다.     


“잘 좀 전해주시오.”

“우체부 양반은 모르겠지만 그 녀석 중학교 1학년 올라가기 전에 여동생과 육지로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어요. 그때 내가 알던 둘째 그 녀석은 믿으면 안 됐지만 벌써 4년, 내게 믿음을 줬죠.”

“그래서 둘째 아들이 기술을 배우는 걸 허락하겠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하고 싶은 걸 시켜야지 하기 싫은 거 시켰다가 엇나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우체부는 편지를 가장 앞주머니에 넣은 뒤 용진에게 인사를 한 뒤 곧장 다른 집으로 향했다. 용진은 우성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지만 한 번이라도 우찬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답장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우체부 역시 이 뒷이야기가 궁금한 탓에 밤 늦게 우성의 집을 찾았다.     


“편지요!”     


우성은 신문을 읽다가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이 시간에도 편지를 온답니까?”

“오늘은 특별 서비스요.”     


편지를 받은 우성은 내용을 보려는 우체부를 슬그머니 밀어낸 뒤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당연한 답이 적혀 있을 거라는 용진의 편지를 열었다.     


『그래.』     


“그래? 뭐가 그래?”     


우성은 곧장 다시 문을 열어 아직 가지 않은 우체부에게 다른 편지는 없었는지 물었다.     


“강 선생님께서는 곧장 편지지에 뭘 적더니 바로 붙여주셨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었는데요?”

“그래. 겨우 두 글자인데요? 편지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강 선생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인데 둘째 아들을 응원해 보고 싶으시답니다.”     


그때 마침 일이 끝나고 퇴근한 우찬도 문앞에 섰다.     


“우체부가 이 시간에 우리 집에 있어?”

“아버지가 너 자퇴한다는 말에 답장이 왔다.”

“뭐라셔?”

“그래. 널 응원하고 싶으시다는데?”     


우찬은 우성의 손에 든 편지지를 낚아채 읽은 뒤 기뻐서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는 우성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이들을 본 우체부는 재미를 얻었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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