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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원 Sep 25. 2024

4화. 섬의 가족 (4)

섬에서 나온 가족은 새로운 가족에게 충실해하며 살았다. 전처럼 함께 사는 게 아닌지라 매일 볼 수는 없었지만 한 달의 한 번은 서로 얼굴을 비추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을 먹는 시간도 가졌다. 그사이에는 늘 용진과 화선도 함께였다.     


“성하는 왜 안 왔더냐.”     


용진은 식당을 가기 전 우성에게 물었다. 우성은 핸드폰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 용진에게 보여주었다. 작은 폴더폰 안의 갤러리에 있는 사진이었고 그 속에서는 우성의 첫째 딸 성하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성하 맞네, 고운 우리 손녀 봐요.”     


옆에서 화선도 사진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그러나 용진의 가장 첫 번째 의문점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성하는 왜 안 온다고?”

“지금 피아노 대회가 있어서 못 오는 거예요. 아버지.”

“그래도 애들도 오랜만에 고기 같은 걸 먹여야지.”     


오늘의 메뉴는 소갈비구이지만 용진은 먹지 못하기 때문에 돌솥비빔밥을 먹는다. 자신이 먹지 못하더라도 손녀는 어떻게서든 챙겨주고 싶은 게 할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급하게 나가기 전 책상 서랍에서 5만 원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뒤 화선과 함께 집을 따라나섰다.

식당에 도착해 밥을 먹기 전 우성은 삼 남매가 모두 결혼한 축하의 의미로 용진과 화선에게 한 말씀을 부탁했다. 때는 연숙의 막내 아들이자 집 안의 막내 손자, 용준인 내가 태어났던 해였다.     


“명절은 용준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섬에서 지내자.”     


그 말에 우찬은 먹던 반찬이 목에 걸려 사례들렸다. 여지껏 용준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딱 3년만 더 있으면 명절을 육지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다. 용준이도 엄연히 이 집의 가족 아니냐. 적어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살고 너희가 살았던 섬이 어떤 곳인지 느껴봐야 할 것 아니냐.”     


용진의 말에 우성은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찬은 섬에 들어가기 힘들어진 걸 얘기하며 무리라고 말했다.     


“우찬아, 곧 섬이 사라진다는 말이 나오더라. 네 고향이 사라지는 거라고.”

“아버지, 갑자기 송도 그 섬이 왜 사라져요.”

“재개발한다더라. 공단에 자리가 더 없어서 주변 섬들도 함께 매립할 모양이다.”     


고향이 사라진다. 그 누구도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찬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우찬의 머릿속에는 높낮이가 다양한 섬이 평평한 평지가 되는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고향이 곧 사라지는데 오는 길이 멀다고 안 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용진의 말이 끝나자 식사 메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가족에 몰두할 때 자신들의 고향의 소멸이 다가온다는 걸 몰랐던 우성과 우찬, 연숙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고향이 사라져서 아쉬운 감정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용진과 화선이 드디어 육지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최근 용진의 건강이 급속히 안 좋아져 육지인 순천 역전 집에서만 살 것을 부탁했다. 그때마다 용진과 화선은 왔다 갔다 하며 산다고 거절했지만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다행이네요. 이제 어디 아프면 바로 병원 갈 수 있어서.”     


우찬의 말과 함께 앞으로의 7년 동안 명절은 섬에서 보내기로 했다. 섬의 재개발이 1년, 2년 만에 이뤄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넉넉하게 잡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들 무거운 얘기는 뒤로하고 함께 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즐겼다.     



송도로 향하는 길 사이에 생긴 여러 공단 때문에 도로가 잘 개편되었다. 8차선으로 쭉 늘여진 넓은 도로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가로등들을 세워져 있다. 고개를 내밀고 아무도 안 다니는 8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머리 위로 가로등들이 빠르게 지나가며 어린 아이의 눈에서는 멋진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 머리 위로 스쳐 가는 가로등들이 지나고 나면 아주 작은 샛길이 보인다. 정식 도로에서 벗어난 수풀을 조금 깎아 만든 작은 샛길이었다. 아주 잠깐 덜컹이고 나면 비로소 작은 선착장과 송도가 보인다.

연숙네 가족이 차에서 내리고 얼마 안 지나 용진과 화선을 모시고 온 우성네 차도 도착했다. 선장은 가늘게 눈을 뜨더니 차에서 내리는 용진을 보고 소리쳤다.     


“이보쇼, 강씨! 배가 안 뜨오!”     


뱃사람 김씨의 말에 용진은 뒤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설날을 맞이해 가족을 데리고 섬의 집으로 들어가려던 용진은 김씨에게 한 번 더 부탁을 했다.     


“물 때가 안 좋은데 꼭 오늘 들어가야겠소?”

“오늘이 설인데 집에 안 들어가면 어디 가겠소.”     


김씨는 한숨을 내쉬더니 배에 올라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용진은 먼저 아이들부터 배에 오르게 한 뒤에 나머지 사람들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얘, 우성아! 우찬이는 언제 온다냐?”     


용진의 첫째 아들 우성은 배의 엔진에 안 들렸는지 용진 쪽으로 걸어와 되물었다. 용진은 헛기침을 잠깐 하고 큰 목소리로 우성에게 다시 물었다.     


“우찬이 오늘 일이 늦게 끝나가지고 좀 늦게 온답니다. 오전쯤 오면 아마 바람도 멎고 괜찮을 거예요.”     


우성의 말을 들은 용진은 손을 저으며 김씨가 배를 출발하게 했다. 용진은 그사이 김씨를 대신에 뱃삯을 거두며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의 얼굴을 이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용진은 화선을 부르며 애들이 많이 컸다고 말하며 웃었다.     


“요즘 애들이 우리랑 같대요, 요즘은 훌쩍 큰다던데.”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올 때마다 크니 시간이 빨리 지난갑소.”     


그때 우성이 나와 용진의 말에 덧붙였다.     


“애들은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는 거죠, 아버지.”

“그치, 애들은 자라는 거고 우리는 늙어가는 거지. 요즘 일은 잘 되냐.”

“늘 똑같죠. 이러다가 평생 의자에만 앉아 있다가 죽겠어요.”

“남들은 그 의자에 앉으려고 난리를 친다더라. 좋은 줄 알아.”     


우성은 점점 가까워지는 섬을 보며 용진에게 물었다.     


“요즘도 섬의 집에서 계속 계시는 건 아니죠?”

“요즘은 섬의 잘 안 오지. 누가 우리들을 여기까지 뎃고 온다고.”

“올해 설날은 날씨도 안 좋다고 한 만큼 그냥 역전 집에서 보내시지.”     


용진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우성을 바라보았다. 우성은 그런 용진의 얼굴을 보고도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약속은 약속이다.”

“아무렴 그렇죠, 아버지.”     


우성은 배 난간에 몸을 기대고는 용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할 거라는 아는 우성은 섬으로 들어갈 때까지 더 이상 집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김씨는 헤드폰으로 곧 섬에 도착한다고 말한 뒤 배의 속력을 줄였다. 배의 앞에 달려 있는 타이어들이 완충제 역할을 하며 배는 곧 섬에 정박했다. 집안의 막내인 용준은 선착장과 배 사이의 좁은 틈이 무서워 울었고 연숙은 그런 용준을 들어 올려 섬에 올려주었다.     


“김씨! 뱃삯은 받고 가야지.”     


용진의 갈라진 목소리에 김씨는 손사래 쳤다.     


“됐네, 새해 복이나 많이 받으쇼.”     


그럼에도 용진은 김씨의 주머니에 억지로 돈을 구겨 넣은 뒤 똑같이 새해 인사를 건넸다.     


“원래 새해 인사는 돈으로 하는 거랬어. 자네가 거절했지만 내 새해 인사니 받아주게.”     


그렇게 말하니 김씨는 거절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용진의 돈을 받고 다시 육지로 향했다. 용진은 기다리고 있던 용준의 손을 섬으로 들어갔다.     

집에 도착하자 연숙과 우성의 아내인 주하는 섬의 집 냉장고부터 정리했다. 너무 오래된 음식들은 곧장 밖에 빼고 새로 가져온 음식들과 명절 선물들을 정리했다. 연숙은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아버지께 소리쳤다.     


“드시라고 가져왔는데 이렇게 냉장고, 냉동고에만 넣어두면 어떡해요!”     


화선은 냉장고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며 웃으며 까먹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맑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연숙은 말문이 막히면서 집어넣는 음식들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한편 우성과 연숙의 남편인 석현은 섬의 집에 자라난 풀들을 베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깨끗하게 베어져 있었다. 우성은 용진을 계속 불렀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 거야?”

“아버지, 섬의 집 잘 안 오신다면서 여기 풀들은 왜 정리가 되어 있는 거예요.”

“앞집이 좀 해줬을지도 모르지.”     


우성은 그런 용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속이겠는가. 역전 집에 계셨던 시간보다 섬의 집에 계셨던 시간이 더 많았던 걸 숨길 수는 없었다. 용진은 끝까지 모른 척 했고 우성은 알면서도 역전 집이 더 좋은데 어째서 이 집에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용진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우성의 잔소리는 결국 자신과 화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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