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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iter Sep 01. 2023

10. 학생들과의 첫 만남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정식 출근을 시작하고 고작 1주일 후였는데, 한 한 달을 기다려서 만난 느낌이었다. 그 일주일간 다양한 워크숍, 미팅 등을 통해 전문대 학생들에 들은 얘기가 소복이 눈이 쌓이듯 쌓여갔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보다 학업 수준이 심각한 학생들이 많다는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4년제 대학에서보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힘들 것이라는 충고 아닌 경고를 여러 번 들어서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학업 태도에 대한 얘기는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한 교원 소집회의의 기조연설의 내용–학생들이 수업 중에, 학기 중에 사라지지 않고 학업을 마칠 수 있게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이 전문대의 현실을 더 잘 반영한, 선생님들의 실천이 필요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개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기 도중에 사라지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이 시작한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가방을 싸서 나가버리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고, 성적을 잘 받아야 4년 제로 편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는 안 하지만 성적에 집착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공포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마음속의 두려움을 키웠고,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첫 강의는 희망차게, 으쌰으쌰,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생각한 것보다 더 싸늘한 시선으로 날 바로 보는 듯했고, 8시 수업이 아님에도 8시 수업을 할 때보다 많은 학생이 하품을 했고, 그 하품을 가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관성 있게 없었고 앞으로 한 학기 동안 이 학생들과 수업을 어떻게 하나 싶던 찰나에 이번 학기에 수업을 몇 개 듣냐는 수업에 학생들의 냉랭한 가면이 좀 벗겨진 느낌이었다. 여전에 말로 대답은 안 해줬지만 다들 손가락으로 몇 개를 수강하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적극성에 무한한 희망이 샘솟았다. 아, 아 학생들은 관심이 없거나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마땅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수줍은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서로 좀 익숙해지면 표정이 좀 풀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첫 강의를 다섯 번 마무리했다.


첫 주말에는 학생들에게 이캠퍼스에 올려놓은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설문지에는 학생들의 신상을 좀 파악할 수 있게 어디에서 왔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고등학생인지 (간혹 고등학생들이 미리 대학준비를 위해서 전문대 강의를 듣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래의 계획이 뭔지, 4년제 편입을 목표로 하는지, 취업을 할 것인지, 앞으로 꿈이 뭔지, 오늘의 걱정은 뭔지, 오늘 신나는 일은 뭔지 등의 질문을 했다. 4년제 대학의 학생들과는 배경이 많이 다를 것이라는 얘기는 주워들었는데, 그게 어떤 뜻인지는 정확히 파악을 못한지라, 학생들에게 직접 묻고 싶었다. 125개의 설문지를 읽을 생각에 좀 아찔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걸 읽음으로써 학생들과 좀 친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생각에 답안을 기다렸다.


가장 자주 나온 이야기는 이런 느낌이다. 멀지 않은 어느 시골마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교적) 큰 도시로 대학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했고, 이 동네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인 A대학에 편입할 예정인데, 가장 흔한 이유로는 전문대에서 교양수업 학점을 이수하고 4년제에 편입을 하면 학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학비와 용돈을 대주는 학생들도 있고, 장학금을 받는 학생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학생도 있었다. 간혹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학생들도 있었고, 고등학교 친구와 집을 얻어서 생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로는 4년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사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고 싶다는 학생이 가장 많았고, 신기하게도 법과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학생도 많았다. 코로나 때 CSI와 같은 드라마를 많이 시청한 결과일까? 한 반에 이렇게 법과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A대학에 수의대가 크게 있어서 그런지 수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도 꽤 많았고 공대를 가겠다는 학생도 많았다. 


위의 질문들 외에도 지금까지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경험은 어땠는지도 물었는데, 한 반/반 정도의 학생들이 좋았다/좋다와 싫었다/싫다로 나뉘었다. 근데 그게 생각보다 좋다는 학생이 많아서 내심 만족스러웠다. 나는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필수과목이라 어쩔 수 없이 듣는 학생이 99%라 거부반응이 셀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작문수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이번 수업이 필수과목임에도 신난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싫었다/싫다 쪽 학생들은 또 반으로 나뉜다. 싫지만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면 글쓰기가 중요할 것이라 열심히 하고 싶다는 학생들과 남은 반은 진짜 싫다, 긴장된다, 하기 싫다, 못한다 등의 다양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래도 싸늘한 시선들 뒤에는 이렇게 개별적인 생각들과 감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한결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125개의 이름과 얼굴이 언제쯤 다 매칭이 될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이들이 그냥 무섭게 쳐다보는 얼굴들일뿐 아니라 모두 개인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알아야 좀 더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이들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 듣고, 나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어려우면서도 조금이라도 되면 그 학기 수업이 매우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학기 초에는 항상 시도하는 일이다. 


그리고 물론 다들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도 있었다. 글쓰기란 결국 그런 것이니까. 모두가 엇비슷한 생각들을 하면서 엇비슷한 삶을 살고 뭐 대단한 할 말이 있겠나 싶어서 글을 쓰길 망설이거나 글쓰기 수업에서나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하나 너무 독창적이고 소중한 이야기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시선으로 그들만의 생각을 풀어낼 수 있게 기초를 탄탄히 세워주고 싶다. 각 과제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들을 어떻게 풀어내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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