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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riter Jul 27. 2023

3. 작문을 가르친다는 것










대학원에 진학해서 대학원생 강사로 맡아서 가르쳐 본 수업은 꾀나 다양하다. 영문과 전공수업으로는 이전 포스트에서 이야기했듯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읽는 포스트콜로니얼 문학 수업도 있고, 초국가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시대의 문화와 문학에 대해 배우는 트랜스내셔널 문화와 문학 수업,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글을 읽고 그들이 포착한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여성작가 수업도 맡은 적 있다. 이렇게 3-4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꽤 수준 높은 class discussion(수업시간에 토론하는 것)이 가능해서 내가 많은 걸 배우기도 한다. 예전에는 주어진 주제에 알맞은 고전 혹은 대표작이라고 생각되는 자료를 고민해서 고른 후 강의 계획서를 만들기도 했으나, 학기가 갈수록 내가 읽어보고 싶었으나 바빠서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수업의 취지와 맞는 것 같은 글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 나도 읽고 싶었던 새로운 작품을 읽고 학생들과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보람차고 즐겁다. 내가 대학원에 처음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교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게 바로 이런 것이다. 파릇파릇 갓 어른이 된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사회와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평생 업으로 삼아도 아쉬울 게 없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문학 수업보다는 글쓰기 수업의 수요가 더 높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필수 교양으로 글쓰기 수업을 하나 들어야 하는 것도 있고, 취업 준비를 위해서 비즈니스 라이팅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있다. 내가 맡은 과반수 이상의 수업은 1학년 글쓰기, 2학년 문학에 대해 글쓰기, 그리고 비즈니스 글쓰기 수업이다. 지금 박사학위를 하는 학교는 이공계열 전공들이 전 세계 10위안에 드는 학교여서 대학별로도 전공 특성상 필요한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한다. 그렇게 글씨기의 중요성은 학교에서 여러모로 강조되고 있으나 학생들은 필수 과목이라는 이유로 정성을 들여 수강신청을 하기는 하나, 막상 개강을 하면 전공수업을 듣기 바빠서 글쓰기 수업은 항상 뒷전이다. 의욕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성적만 잘 받고 싶은 학생들과 수업을 할 때는 나도 같이 힘이 빠진다.


그래도 열정이 불타던 2년 차에는 ‘이번 학기에는 내 한 몸 불살라 학생들이 글쓰기에 모든 걸 마스터하게 해야겠다!’하는 욕심과 야심이 있었다. 강의계획서를 빼곡하게 리딩과 소과제로 채우고 숙제도 많이 내줬다. 글쓰기는 계속해야 실력이 는다는 믿음에. 그러나 한 학기 한 학기 경험이 쌓이면서 깨달은 것은 한 학기에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모든 걸 배워 갈 수 없을뿐더러, 수업시간에 하는 말을 다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숙제를 많이 내주면 그걸 다 채점하는 나도 너무 힘들뿐더러 강의 평가에 학생들이 테러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갈수록 학생들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티칭을 그저 하나의 업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스킬들, 그리고 효과적인 글을 쓰기 위한 기초 지식을 전달해 준 후 글쓰기 연습을 해 볼 수 있는 과제들을 내준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조금씩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는 것뿐이고 지난가을 AASI 행사에서 만난 학생처럼 깨달음과 배움을 얻어 갈지에 대한 결과는 내 손 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저 시간이 지나서 학생들이 전공수업에서 리포트를 쓰면서, 그때 글쓰기 수업에서 어떻게 하는 거라고 했더라? 하면서 수업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성공한 것일 거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꾼 것은 전혀 티칭에 대한 회의감이나 포기의 자세는 아니다. 5-6개의 수업을 들으면서 알바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내 기대를 낮추는 게 가능해졌다. 막말로 내가 학부 때 들은 수업들의 내용이 거의 생각이 안 난다. 분명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그래도 나는 믿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강의를 듣고 책을 보고 과제를 하며 20살, 21살이던 나의 정신적 성장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된 것이고, 그렇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갈 수 있는 힘이 키워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생각한다. 학생들이 의욕 없이 수업을 오는 와중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있다고. 수업 시간을 할애해서 내가 가르치는 글쓰기 수업의 과제를 조금씩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매일 숙제를 계산적으로 내는 것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은 숙제를 낼 때 많은 고민을 하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숙제로 내준다. 학생입장일 때는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 입장에서 보니까 숙제를 내준다는 것은 수업 시간 이외에도 학생들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학생으로서 해야 할 준비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이해가 있기는 하나, 순위에서 밀리는 수업에서 내주는 숙제에 대한 반발은 언제나 거세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부가적인 리딩, 그래서 내가 수업시간에 시간이 없어서 커버 못할 내용을 숙지해오라는 방향의 숙제보다는 그 학기 수업에서 다루는 양이 적더라도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자신감을 갖고 갈 수 있게 예습과 복습 위주의 숙제를 내준다. 그리고 복습 위주의 숙제는 수업 도중에 시작할 수 있게끔 강의를 계획한다.


이렇게 복습위주의 숙제를 강의실에서 시작하면 학생들이 잘 못 이해하고 숙제를 잘 못해와서 점수를 못주는 나도 난감하고 한다고 했는데 막상 연습해야 하는 것은 연습하지 못한 학생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전공 수업 듣는다고 바쁜 학생들은 충분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글쓰기 실력도 향상하고 숙제는 충분히 하되 강의실 밖에서 글쓰기 수업 준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한 학기 거의 매주는 그렇게 적은 숙제양으로 승부를 했다면 리서치 페어퍼는 타협을 본다. 리서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다른 숙제를 내주지 않는 대신에 집에서 리서치를 하고 찾은 자료들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것, 그리고 피어리뷰를 하는 법과 글을 고쳐 쓰는 것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후 자신의 글을 고쳐서 제출할 것. 보통의 나의 글쓰기 수업은 그렇게 끝난다.


하지만 이제 전문대에서도 비슷한 수업을 하게 되었는데 기대 반 부담 반이다.


내가 일하게 된 전문대에는 아직 대학 갈 준비가 덜 된 아이들과 4년제 대학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이 90%인 학교다. 그래서 대학 진학/편입 시 필요할 기초 글쓰기 실력을 키워주는 것이 주된 임무이자 목표가 된 것이다. 4년제 대학에서 가르칠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나의 어깨는 무겁다. 여기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대학에 진학/편입했는데, 왜 아직 글을 못쓰냐는 핀잔을 들을까 지레겁이 난다. 그래서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5년간 가르쳐 본 결과, 1학기 동안 학생들이 내 수업에서 얻어 갈 수 있는 건 제한되어 있다. 학생들이 내 수업만을 들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의 꾀 재미나고 기대에 부풀어 있을 시간을 보내는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있는 것도 많을 사람들에게 글쓰기에만 신경을 집중시킬 것을 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개강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고민할 것은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리딩과 숙제를 내주고, 너무 많은 내용을 커버하려는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도 학생들이 나중에 글을 쓸 때, “아, 맞아, 이런 게 있었지? 어떻게 하는 거더라?” 하면서 자료를 찾아보고 스스로 글을 고쳐 쓸 수 있는 정도의 이해도와 글쓰기 실력을 키워 갈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소셜미디어와 함께 코로나시기를 보냈을 학생들에게 앞으로 호흡이 긴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글을 쓰는 상황에 맞게,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행위는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이건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게 되든 바로 취업을 하게 되든 같은 얘기다. 대학에서는 교수님들이 글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생각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이색 과제를 많이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 과제는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는 있겠으나,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행위의 기본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매체를 통해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소통하는 것을 글쓰기 수업에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은 걸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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