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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담 Jul 22. 2022

산은 산, 물은 물. 뜰앞의 잔나무는 잔나무!

명상 1609일째

디만큼 왔나?

얼마만큼 더 가야 하나?


목을 길게 빼고 가야 할 길을 보려 하니, 조급증이 인다.


조급증을 느낀다는 건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반증. 명쾌하게 목표점(깨달음)을 보여준 석가모니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가 있으니 의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곳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가는 길을 또한 의심하지 않는다.      


강남 00선원에서 두 번째 집중수행을 하면서 몇몇 도반들을 알게 됐다. 나름, 수행 전력이 만만찮은 분들이었다. 그중 70대 보살과 퇴원 길을 함께 했다. 

다음은 그때 나눈 대화.


많은 수행 경력을 지닌 70대 보살이 말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계율을 잘 지키면서 수행해야 합니다.”


“계율요...? 꼭 지키려 노력해야 하나요? 노력이 아니라 그냥 마음이 알려주는 대로 하면 될 거 같은데요?”


생각해 보니 계율을 지키려는 마음을 버린 지 오래였다. 콕 찍어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으나, 살면서 엮인 인연들을 통한 연마는 옳고 그름의 구분선이 아닌 상대의 상대를 살피고, 반응하는 나의 마음을 살피는 일로 행동의 기준점을 삼았다. 마음의 고통은 언제나 욕망에 휘둘릴 때,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때, 부족한 나의 감정대로 움직였을 때 찾아왔다. 


삶의 파노라마에는 한순간도, 한 상황도 ‘똑같지’ 않으니, ‘두 눈 똑띠 뜨고’ 살펴야 하는데, 어디 그게 맘처럼 쉬운 일인가.     

축서사 큰스님에게서 받은 화두 참선을 일 년 여쯤 했다.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답이 이내 찾아졌다. 성철스님이 오도송으로 했다는 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와 같다는 답은 쉽게 찾아왔다.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듯이 뜰 앞의 잣나무 또한 잣나무이다. 세상 만물은 그렇게 스스로 있고, 또 모두 함께 있다. 


‘더하기 빼기’


이건 내 나름의 세상 표현방식이다. 


일체가 서로 관계 맺고, 연결된 세상, 지구 위 온갖 생명체들뿐 아니라 광대한 우주의 수많은 별, 그 별들을 품고 있는 광대한 우주 공간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원자 분자들까지, 모두 긴밀하고도 평등하게 연결돼 있다. 비록 인류가 우주의 탄생과 우주 별의 모든 것까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도.      


이런 답을 얻었음에도 스님께 확인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용기를 낼까,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화두 참선 대신 호흡을 바라보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으로 되돌아갔다. 


늘도 오전,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들어와 명상했다. 남편 출근을 배웅하고 화장실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 살림을 하고 다시 앉아 명상했다. 


끼어드는 잡념은 어김없는데, 잡념을 가만, 들여다보는 조금 강해진 마음의 힘이 느껴진다. 


사진 ; 2019년 여름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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