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 명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담 Oct 19. 2022

깨달음, 토론하다

명상 1698일째

얼마 전, 내가 몸담고 있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온라인 공간(네이버 카페)에서 카페지기(나는 ‘스승’이라 부른다)와 회원 간이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깨달음’이란 주제를 두고서다. 


‘공(空)’

‘절대 선(善)’

‘깨달음’

‘분별심’

‘사랑’

‘자비’


오가는 말들에는 내가 그토록 알고 싶은 세상의 근본, ‘진리’에 대한 갈구가 충만했다. 


스승은 말했다. 


“공부 거리입니다. 각자의 생각을 드러내 보세요.”


나는 답하였다. 


내용 감사히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선생님의 말씀을, 본질은 같으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동물로 분류되는 '사람'은 '인류'라는 종족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사람 개개인으로 초점을 맞추면 참 다양하고 개성 있는 개개인인 것처럼요. 

부처님의 팔만 법문 또한 이처럼 개성진 많은 이들을 위한 개별 처방으로 나온 것이라 여기고 있구요. 

제가 지금 느끼는 건 마주한 장벽입니다. 

'공'으로 넘어가는 길에 마주한 장벽으로 느끼고 있는데, 과장된 느낌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장벽은 매우 단순한 듯한데, 구별할 수 없이 얇은, 투명 종잇장 같은 벽인 것처럼 느껴지도 합니다.

분명한 건 깨달음이 무겁거나 멀거나 대단한 것으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깨달았든, 그렇지 못했든, 우주는 그저 우주일 테니까요. 

우주의 '사실'은 사실로 그저 그렇게 있는 것일 테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 이것이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이고

나 또한 그런 인연으로 ‘지금’ ‘여기’ 살아있다.

나를 지탱하는 인연들이 끝나 연결이 사라지는 날, 나를 이루었던 요소 각각으로 흩어질(되돌아갈) 것이다. 


이 과정(죽음)은 너무 자연스러워, 슬퍼할 일도 괴로워할 일도 아님을,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사진 : (위로부터)2004 중국 환인 오녀산성. 고구려 첫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픽사베이

                       2001(?)년 네팔 강가의 장례의식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더 가까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