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의 신 가라사대
재활성서 1장 1절 : 허리 수술 하지 말고 생각 수술 하세요
Of the health, by the health, for the health.
몸을 회복하기 위해 숨을 쉰다. 들숨에 허리, 날숨에 허리. 오로지 '허리'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5년은 단지 몇 줄로 요약된다. 단순한 삶이다. 수술 후 부작용으로 3개월 동안 누워만 있다가 수영장까지 이동할 수 있게 몸을 만들었다. 이후로는 수영장을 다니면서 수험생활을 했다. 수영장에서 걷다가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다시 아파, 무위의 삶으로 돌아왔다.
아픈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3시간 이상 활동하는 게 두렵다. 그마저도 활동을 위해 3일은 확보해야 마음이 놓인다. 전날은 에너지를 비축하고 당일에 다녀와서 다음 날 하루는 쉬느라 3일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운동 이외의 모든 일정을 자제하고 있다. 즐거움보다 견뎌야 할 괴로움이 앞서서 새로운 일을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매일 혼자 집에서 누워있다가 간신히 일을 나가거나 운동을 가는 삶을 60년 동안 지속할 수는 없다. 더 좋아지고 싶었다. 살아있는 삶을 느끼고 싶다. 작년이 일을 위한 '존버의 해'였다면 올해는 몸을 위한 '재활의 해'로 삼고 오직 재활을 위해서만 살아보기로 했다. 충분히 몸을 위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미뤄왔던 최후의 수단인 뼈를 깎는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절망적인 다짐이었다. 부작용을 두 번이나 겪었기에 수술 또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수술을 한다고 해도 통증 경감 효과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는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잘하면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일지 절망일지 모르는 50% 홀짝의 길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 순간 뜻밖에 행운이 찾아왔다. 재활의 신과의 만남이었다. 재활을 위해 교수님이 계시는 지역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처음에 난 그녀를 믿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수많은 병원을 거쳐 한의사, 물리치료사, 필라테스 강사, 트레이너를 만나며 다양한 치료를 했지만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금세 좋아질 것처럼 말하곤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나 희망이 쉽게 생기지 않았던 데다가 재활 첫날에 생뚱맞게 손가락 운동을 하였다. 허리가 아픈데 손가락 운동이라니 알쏭달쏭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재활의 방식이었기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나를 낫게 해 줄 거라는 데에는 여전히 의심의 물음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데 선생님과 첫 만남 이후 코로나가 발생했다. 이사까지 왔건만 꾸준히 운동에 매진할 시기에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세상을 공포로 내몰았고 대면 접촉이 불가한 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교에 위치한 재활센터가 6월까지 문을 닫아서 선생님을 한 달에 한번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재활을 하고 나면 통증이 심해져서 아팠다. 디스크 환자에게 취약한 자세를 권하기도 했다. 재활을 다녀와 집에 누워 쉬면서 '이 길은 맞나' 의구심이 스멀스멀 솟구쳤지만 딱히 대안은 없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요구한 자세를 제대로 구현해낸 적이 있었다. 그때 신기하게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딱 1초였다. 아무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단 1초의 경험은 내 마음속에서 그녀를 재활의 신으로 탈바꿈시켰고 곧 숭배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검은 바다 위 북극성이었다. 그 별을 따라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올 길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몸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결국 수술을 한 것이다. 허리디스크가 아니라 뇌를. 선생님과 운동을 하며 내가 그동안 허리를 위해 했던 행동의 잘못된 점을 샅샅이 파헤칠 수 있었다. '허리 대혁명'이었다. 경험으로 축적한 나만의 허리 매뉴얼을 아예 뒤바꾸는 행위였다. 이 과정을 피, 땀, 눈물이 지켜주었다.
재활-바른자세=0.
기본적으로 허리를 아프지 않게 하는 방법은 바른 자세뿐이었다. 바른 자세를 배우는 것이 재활의 주된 목적이다. 바른 자세의 핵심은 어깨, 가슴, 목, 팔, 다리 등의 신체 부위를 올바른 위치에 고정시킨 후 적절한 힘을 유지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내 몸의 잘못된 점이 기인한다. 첫째, 어떤 게 바른 자세인지 인지하지 못했고, 둘째, 어떤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아픈 기간이 길어지면서 태어날 때 자연스럽게 터득한 몸의 올바른 위치와 움직임을 다 잊어버린 신생아가 되어있었다. 오로지 힘을 빼고 누워있는 법만 기억했다. 수술 부작용으로 장기간 침상 안정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서 있어도 누워 있고 앉아서도 누워 있는 몸이었다. 언제든 힘을 빼고 쉴 준비를 하는 몸으로 5년 동안 훈련한 결과였다. 허리가 아프면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힘들면 무조건 누울 곳을 찾았다. 서있기 조차 힘든 디스크 초기 단계에서는 옳은 행동이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잘못됐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늘어진 용수철이었다. 좋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몸에 힘을 줘야 하는데 언제든 쉴 생각만 했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괴상한 자세로 버텼다. 되는 대로 산 결과 내 몸은 언제든 힘을 빼고 눕는 몸으로 재설계되었다.
차라리 누워만 있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걷지 않아야 될 때에 걸으려고 했던 것도 화근이었다. 누워만 있기가 힘들어서 밤에는 걸어보려고 했다.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허리에 토르 망치를 휘두른 것처럼 통증이 느껴졌지만 병원에서도 걷는 건 허리에 좋다고 권했기에 걸을 수만 있다면 허리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판단 착오였다. 오히려 아플 때 오기로 걸었던 것이 잘못된 걷기 습관으로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땅에 제대로 발을 딛지 않고 걸었다. 살짝 스쳐만 가도록 땅을 대충 디뎠다. 땅을 디딜 때 통증을 줄이기 위한 내 몸의 방어기제였다. 이 행위는 지금까지 허리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발이 온전히 땅에 있어야 충격을 흡수하며 허리를 보호해줄 수 있지만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해 땅을 대충 디뎠고 발이 흡수하지 못한 땅을 딛는 충격이 고스란히 골반과 허리에 가중되었던 것이다. 5년 동안 그 걸음걸이가 습관이 되었다. 몸에 새겨진 통증의 뒤틀린 저주였다.
초등학교 때 샬레에 휴지를 적셔놓고 그 위에 싹을 틔워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싹이 올라왔을 때 제때 화분에 옮겨주지 않으면 그 싹은 죽어버린다. 싹이 자라기 위해서 때마다 해줘야 하는 것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난 그 적절한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허리라는 새싹이 다시 자라나야 될 시기에 누워만 있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허리를 죽이는 일이었다. 상체는 항상 누운 것처럼 뒤로 넘어가 있고, 발은 언제나 바닥에서 뗄 준비만 하고 있었다. 몸은 힘을 빼고 쉴 생각만 하고 있다. 이제 이 굳은 습관을 깨야한다. 이 관성을 끊어내야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이제는 아파도 제대로 땅에 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올바른 행동을 쌓아가야 한다. 조금만 몸을 신경 쓰지 않으면 예전의 몸처럼 힘을 빼고 누워있다. 몸에만 신경 쓸 때는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지만 딴 일에 집중할 때면 몸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 있다. 너무 오래 아팠다. 아픈 상태로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다 보니 모든 게 잘못된 상태가 되었고 안타깝게도 내 몸은 그것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을 깨부수어야 한다. 무의식 상태도 지배할 수 있도록 올바른 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몸은 생각의 부속물이다. 이전의 생각을 불태워 날리고 다시 새싹을 피우겠다. 서른이 넘어 다시 걸음마 연습이라니, 늦어도 한참 늦은 늦늦늦늦깎이 학생이다. 쉽지 않은 공부일 테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 몸을 짊어지고 또박또박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