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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Sep 16. 2022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무슨 날이긴, 그냥 허리를 위한 날이지. 허리디스크 환자의 하루 루틴

쏴아 - 수도꼭지를 빨간색 쪽으로 끝까지 돌린다. 처음에 미지근한 물, 뜨거운 물 그리고 아주 차가운 물. 번뜩. 몸이 고양이가 털을 세우듯 깨어난다. 허리를 위한 기상 루틴을 시작되었다. 습기가 차오른다. 거울에 점점 내가 사라다. 거울도 샤워를 시켜준다. 그리고 눈바디. 내 몸을 하나씩 뜯어본다. 팔, 다리, 어깨, 배.  눈바디는 살이 빠졌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몸의 위치를 살피는 것이다. 어깨가 돌아갔나,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이 맞나, 팔이 너무 앞으로 나와있지는 않은지, 횡격막이 내려와 있는지 등등. 상체가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골반, 무릎, 발목, 엄지발가락의 위치를 조정하고 하체에 힘을 준다. 아주 뜨거운 물과 아주 차가운 물을 교차해가며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동시에 뇌를 깨운다. 부르릉. 허리에 엔진을 켜고 주행 준비 완료.


이제 연료를 넣는다. 2시에 든든히 밥을 먹는다. 운동 가기 3시간 전에 식사를 한다. 그것보다 일찍 먹었다면 중간에 빵이나 바나나, 두유 같은 간식을 먹는다. 먹는 것도 운동의 일부다. 단백질을 너무  안 먹었다 싶으면 계란이나 두부를 보충해 먹고, 그 외에는 자유롭게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허리 아픈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므로 먹을 것만큼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식후 커피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는 운동 전에 마시면 좋다고 해서 오전이나 이른 오후 재활에 갈 때에는 그전에 먹고, 수영장에 갈 때에는 점심을 먹고 바로 마신다. 허리디스크 환자는 카페인도 주의해야 한다. 너무 늦게 먹으면 잠이 안 올 수 있을뿐더러 카페인은 신경을 깨우는 물질이므로 디스크 환자라면 아예 안 먹는 게 제일 좋지만, 전에 말했듯 먹을 거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을 못하니 정신을 위해서라도 커피는 끊지 않는다. 수술 후 진통제를 하루에 3번 먹어야 해서 카페인을 먹는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을 때에도 양을 조절하여 '소주잔'에 라테를 만들어서 1년 동안 마셨다. 진통제 때문에 너무 힘든 날에는 커피를 입에 물고 있다가 마시지 않고 뱉었다. 억울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다른 것은 허리에 좋은 거 할 테니까 먹을 거는 내 맘대로 먹을 거야!!!!!!!'라는 반항심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커피 하루에 한잔씩으로 제한한다. 최근에는 디카페인 원두가 맛이 괜찮아져서 일리 머신으로 내려 먹기도 한다.


밥 먹고 애벌 세척하면 3시 30분. 이후 수영장 출발 시각인 5시까지 쉰다. 말은 쉬는 거지만 사실 운동을 가기 위한 준비다. 수영장에 가는 시간, 수영장에서 걷는 시간, 다시 돌아오는 시간까지 하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를 위해서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보통 누워서 사용할 수 있는 독서대를 이용해 유튜브보는데, 허리 상태가 조금 괜찮다 싶으면 누워서 30분 정도 책을 읽기도 한다. (수험생활할 때는 이 독서대를 생각하지 못했나 다. 그랬다면 목디스크까지 얻어서 이중으로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지저귀 지저귀. 누워서 쉬다 보면 새소리가 들린다. 4시 50분 수영장에 갈 준비 하라고 알람이 울린다. 어제 말려둔 수영복, 물통, 로션 가방을 챙겨 나간다. 지금부터 운동 시작이다. 재활 시간에 배운 자세를 유지하 걸으려 노력한다. 5시 30분 수영장 도착. 일어나서 했던 샤워랑 똑같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 허리에 쏴준다. 다리에도 쏴준다. 쏴아-

팔, 다리, 배, 어깨. 나의 모든 신체부위에 말을 건넨다. ‘너네들, 이제 또 잘해야 된다. 이거 못하면 미래도 없는 거야. 나는 앞으로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거거든. 나 좀 도와줘. 정신아, 정신 차려. 네가 제일 중요해. 다른 애들 움직이게 하려면 네가 일어나야지, 뭐 하고 있어. 컴온!’ 쏴아. 머리에 차가운 물을 쏜다. 주르륵 얼굴로 차가운 물이 내린다. 정신 차리고 숨에 집중한다. 허업. 쓰업. 숨을 마신다. 몸에 힘이 들어오는지 빠지는지 집중한다. 5시 50분, 수영장 두둥등장. 킥판 챙기고 팔 운동을 시작한다. 그 후 ‘다리야, 움직여라. 힘줬니? 이제 발차기 들어간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50m를 왔다 갔다 한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무한 반복한다. 통증의 세기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20분은 걷고 물 위에 조금 누워있다가 상태가 괜찮으면 자유형으로 딱 한 바퀴만 돈다. 물 위에 몸이 뜨는 정도, 팔이 물을 당기는 힘, 어깨가 돌아가는 정도 등에 따라 오늘 운동을 얼마나 제대로 이행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마지막 과정인  자유형을 마치면 7시. '오늘 운동, 제 점수는요' 나름 평가를 하며 수영장 퇴장하며 몸이 가벼운지 무거운지를 살핀다. 다시 샤워 루틴을 시작한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 번갈아 맞기. 신경이 뜨거운 물에 반응했다가 차가운 물에 반응했다가 정신 못 차리고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8시 30분. 장을 보지 않으면 이 시간 집에 도착저녁을 먹는다. 역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점심때보다 많이 먹는다. 저녁에는 적게 먹고 싶지만 소식하면 결국 12시 넘어서 또 먹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해서 12시보다는 덜 늦은 9시에 충분히 많이 먹는다. '그래, 몸, 네 맘대로 해라.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2시 넘어서 먹으면 취침 시간이 늦어져서 새벽에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새벽일 수록 통증 더 많이 느껴져서 고통스럽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택한다. 식사를 마치11시까지 침대에 눕는다. '허리야, 고생했어. 버티느라 힘들었지. 이제 좀 쉬어.' 하얀 침구가 허리를 쓰다듬어준다.  


회사를 쉰 지 1년이 지났다. 내 하루는 수영장에 가는 것이 전부다. 유일하게 집 밖에 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영장 가는 것을 삶중심에 두고, 식사 시간, 기상 시간, 쉬는 시간을 정했다. 허리가 안 좋은 날에도 수영장에는 간다. 정말 가기 싫은 날도 있다. 그런 날에 샤워만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미세먼지가 많아도, 비바람이 불어도, 쉬고 싶어도, 수영장에 갈 시간을 알리는 새소리가 들리면 에어백이 튀어 오르는 것처럼 침대에서 탈출한다.


다시 회사에 가게 되면 몸을 위해서만 살지 못한다. 지금 이 시간을 정말, 내 몸을 위해서 소중하게 잘 쓰고자 한다. 운동선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아니, 나는 운동선수다, 재활운동선수. 수영선수 펠프스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오늘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날짜도 몰라요. 전 그냥 수영만 해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농구선수 허훈도 운동하고, 밥 먹고, 운동하고, 냉탕 온탕 왔다 갔다 하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 또 내일 운동하기 위해 . 나는 프로가 아니다. 하지만 자세만큼은 프로처럼 하고 싶다. 나도 언젠가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처럼, 농구선수 허훈처럼,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처럼, 운동뚱 김민경처럼, 아니, 그 누구도 아니고, 허리 안 아픈 운동 잘하는 사람이 될 거다. 그렇게 믿으며, 여전히 운동하고 또 운동한다. '허리야, 난 널 기다려. 돌아올 거라 믿어.' 기도를 하며 눕는다. 눌려있던 디스크가 펴지며 다리방사통이 온다. 쏴아- 다리가 허리 대신 대답을 한다. "이 통증은 네가 오늘 열심히 산 증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언젠가 네 말대로 될 거야."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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