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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Sep 30. 2022

저에게도 반려식물이 생겼습니다

허리디스크 환자의 일상 찾기

큰 창문과 그 너머 보이는 풍경, 지방에 내려와 살 집을 구할 때 단숨에 여기라고 마음을 정한 이유다. 시멘트 색의 건물 숲에서 벗어나 낮은 산과 나무 앞에 있는 구옥 빌라로 이사를 왔다.


처절하게 혼자였고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었다. 연고 없는 도시로 과감히 내려온 이유 중 하나다. 버티느라 고생한 몸과 마음을 재활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요함이 절실했다. 통증은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내 곁에 누군가를 둔다는 자체가 부담이었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바빴기에 누군가를 신경 쓰는 게 힘들었고 옆에 있는 누군가를 신경 쓰지 못한다는 것도 신경 쓰였다. 모든 걸 다 버리고 싶었다. 나조차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직장과 오랜 거주지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왔다. 허리가 아프지만 통장도 아팠기에 1톤 트럭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들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무게로 각종 물건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사 온 첫날. 정리 안 된 방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각종 물건, 쓰레기봉투 더미, 쌀쌀한 집안 공기, 가까스로 들어오는 창밖 가로등 빛 그리고 나. 적막감이 맴돌았다. 집안에 살아있는 거라곤 나뿐이었다. 사흘을 꼬박 침대에 누워있다가 사부작사부작 짐을 정리할 즈음 창문 밖 나무는 내게 조금 늦은 집들이 선물을 선사했다. 길을 지나가는 연인들도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며 머물다 가게 하는 아름다운 복숭아꽃이었다. 복숭아꽃의 꽃말은 좋은 예감일까. 환영의 인사로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조금 외로웠던건지 길을 가다가 마주친 주황 플라스틱 화분 속 조그마한 식물에 자꾸 이 갔다. 세번째 만남에서 '그래! 나도 다시 무언가를 돌봐보자.' 결정했고 그렇게 세 친구를 데려왔다. 그런데 웬걸. 한 친구는 이름 짓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랬다. 사실 난 알아주는 식물 킬러였다. 식물을 좋아했지만 가까이할 수 없었다. 눈에 반했지만 세번이나 고심했던 까닭이다. 화원에 가비주얼센터급 식물을 봐도 "얘 안 죽나요?"라고 물어보기 일쑤였고 생명력이 강하다고 해서 데려온 아이들도 내 곁에서 살아남은 적이 없었다. 한 아이를 보내고 나니 어쩌자고 이 조그맣고 귀여운 생명데려온 걸까 싶었다. 처음부터 다시 배야했다. 이 아이들의 기역, 니은, 디귿... 히읗을 알아만 살 수 있었다.


식물을 키울 때는 왠지 모호함이 가득했다. 물이나 햇빛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적어도 안됐다. 적당히는 너무 어려운 명제였다. 잘딱깔센. 그대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관리해야 했다. 서도 물 주는 것은 극악의 난이도였다. 화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하루에 한 번, 물 주는 주기를 알려줬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는데도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화원의 안내는 마치 한 달 안에 식물 저승이를 만나러 가는 사용설명서 같았다. 반육십 인생 내내 식물을 죽이면서 배운 것은 날짜를 세서 주기마다 주는 것은 식물에게 아주 곤란하다는 거였다. 방법을 바꿔서 화분을 살펴보고 흙이 말랐을 때 주기로 했다. 사실 바뀐 것은 관심이었다. 예전에는 주기에 맞춰 AI처럼 다짜고짜 먹으라고 들이댔다면 이제 차분히 식물을 관찰했.  상태가 어떤지, 흙이 마르거나 너무 축축하지 않은지를 살피고 해소개팅할지 물소개팅할지 결정했다. 식물마다 물과 친한 정도도 외향이 있고 내향이 다. 이번에 하며 알게 된 사실은 식물은 물과 햇빛만큼 바람이 필요하단 것이었다. 내 일과는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올리고 화분을 창가에 놔둬 바람과 햇빛을 만나게 해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아이들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고 내 곁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무럭무럭 자라는 기특한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잎이 하트 모양인 몬스테라는 사랑이, 잎을 무지하게 많이 피워서 우리 집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 테이블야자는 초록이라고. 초록이와 사랑이를 매일매일 보고 또 봤다. 하루하루 자라는 게 느껴졌다. 새 잎도 폈다. 시간이 간다는 것을 사랑이와 초록이를 보며 느꼈다. 아이들은 금세 큰다더니 3개월이 지나니 주황색 플라스틱 화분이 비좁아 보였다. '엄마가 큰 집으로 옮줄게.' 곧 아이들을 하얀 도자기 화분으로 이사해줬다. 조용히 쑥쑥 크는 초록이와 사랑이를 보며 내 재활 운동 실력도 못 본 사이에 한 뼘씩 자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보며 가 성장하는 것 같았고, 그들과 함께한다고 각하니 외로움이 옅어졌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돌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돌보며 내 몸에게도 물을 주고, 햇빛을 보여주고, 바람을 쐬어주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실문실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 9월이 되어서는 훨씬 더 큰 화분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제 물을 주고 옮길 때도 한손은 부족했고 두 손으로 공손히 안아서 옮겨야 할 정도로 무게감이 생겼다.


1년이 지나 하려고 다시 살던 곳으로 온 날, 난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몇 년을 살던 도시인데도 싫었다. 다시 내려가고 싶었다. 밖에 한발짝도 나가기 싫었지만 운동하려면 수영장에는 가야 해서 억지로 나갔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건물이 나에게 쓰러질 것 같았다. 지나고 나면 그게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아서 즉각 그 자리에 주저앉아렸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화장실 갈 때 이외에는 거실 밖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이때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던  초록이와 사랑이 뿐이었다.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초록이와 사랑이를 바라봤다. 든 것 낯설하며 부정 때에도 사랑이와 초록이만은 오래전부터 여기에 살았던 아이처럼 보였고 어디에 있든지 어울렸다. 심지어 그 공간 자체를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괜찮아질거라다독였다. 회색 벽지로 가득 찬 이 집이 싫었다. 창문을 열면 동서남북 건물이 붙어있다는 사실도 싫었다. 복숭아나무가 보고 싶었다. 창문을 열 수 없으니 식물로 채워야겠다 싶었고 수영장에 다녀오면서 집 주변 가게에 들러 화분을 하나씩 야금야금 사모으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야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이번에도 주황색 플라스틱 화분의 아이들을 입양했다. 한그루, 한그루, 모으다 보니 10개가 넘어갔고 더 이상 화분의 숫자를 세지 않게 되었다. 어린 친구들을 돌보느라 초록이와 사랑이에게 예전보다 소홀했는데도 그들은 마치 우리 집 맏이처럼 홀로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식물 덕분인지 한 달이 지날 쯤에는 더 이상 건물이 나에게 쓰러지지 않았고, 차츰 방  거실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들과 지내면서 자연스러움을 배운다. 새 잎을 위해 비켜주는 오래된 잎들이 보였다. 사랑이가 새 잎을 피우며 위로 자 때에도 아래에 있는 오래된 잎은 생기를 잃으며 노란 잎이 되어 누워갔다. 이전의 잎들이 비켜주지 않으면 새잎은 더 자라나지 못하고 탈락해버렸다.  

아이들이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방향은 위로 향한다는 것을 알았다. 계절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봄과 여름에는 연둣빛 싹을 피웠고, 햇빛도, 물도, 더 많이 필요할 때였다. 물을 준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흙이 말라있었다. 겨울에는 여름에 비하면 이렇게 물을 안 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을 적게 줬다.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알맞은 환경을 제공해야 했다. 그들처럼 내 스스로에게도 적절한 환경이 무엇인지 찾으려 했다. 그 작디작은 플라스틱 주황색 화분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 잎을 피우는 그들을 보며 어떻게든 자라고자 하는 생명력을 느꼈고 나또한 그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가꾸고 사랑하고 살피는 것처럼, 나 자신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사람, 자연 같은 사람, 자연이 되고 싶다. 계절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힘차게 자라고 새잎을 피워내며,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의 위치를 조정하며 살다가 사라지는, 자연이 되고 싶다. 인위적으로 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알아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내버려 두고 싶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었던 내 차가운 마음도 이들로 인해 조금씩 녹았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운동장을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눈길에 새겨진 발자국 혼자였다. 내 발자국 옆에 또 발자국을 그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발자국만 보면 둘이다. 사람의 온기를 바라지만 앞에서는 망설이고, 진심을 들어도 쉽게 믿을 수 없었던, 어둠을 웅얼거렸던 시간이 지나, 제야 다른 이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이 생긴 듯했. 록이와 사랑이는 내 안의 겨울을 새살이 돋는 봄, 싱그러운 여름으로 었다. 길냥이가 집사를 택하듯 길가의 초록이와 사랑이가 날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기꺼이 마음을 치유해주는 의사가 되어주었다. 은 화분 안에서 꼬물꼬물 자라는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천 마디의 말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마웠다. 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고 싶고, 이사하다상처 나고 아플까 봐 내 집 마련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으로 했다. 함께하는 삶을 그들을 통해 그려봤다. 이 아이들이 있다면 회색 벽지도, 까운 건물과 건물 사이 문제 되지 않다. 만의 벙커가 생겼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어느 새부터 그런 얼룩덜룩한 생각도 안 하게 되었다. 무도 혼자가 아닌 시간이 내게도 기여코 찾아왔다.


허리로 인해 없어졌던 것들을 내내 맘 속에 두었다. 청춘, 직업, 꿈, 열정, 친구, 외출, 카페, 술, 극장. 몇 해를 괴롭게 지냈다. 내게 사라질 것들만 남은 것 같았다. 잘 가던 단골집 내가 먹던 메뉴사라지는 것도 서글펐다. 시간만 정처없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마 나는 초록이와 사랑이를 보며 사라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새로 생긴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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