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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Oct 07. 2022

허리디스크 행성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_1

허리 단어 사전(1)


가면 : 필요 이상의 에너지 소모. 나를 보고 위로하는 사람에게 보이는 괜찮다는 허세.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썼던 가면을 벗는 순간, 돌이 되어 버린다.

가위 : 요리를 할 때 칼보다 선호하는 도구. 칼질은 허리를 굽혀야 하지만 가위질은 바른 자세로 서서 할 수 있음. 설거지 감도 줄여주는 효자템.

감옥 : 통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7년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무기수. 착하게 살겠습니다, 모범수 가석방을 요청합니다.

공감병 : 큰 좌절에 빠진 사람에게 비슷한 작은 좌절을 빠져봤다고 공감하지 말자. 어설픈 공감은 픔에 허덕이는 사람을 더 큰 수렁에 빠지게 하는 길이다. 것을 감히 '공감병(病)'이라고 칭하고 싶다.

거절 : 행하면 마음이 불편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것. 제어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적인 일에 절대적으로 행해야 할 수단. 약속 거절! 인간관계 거절! 잘하고 싶은 욕심 거절!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괴로움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 사람과 멀어질 각오는 탑재 필수. 실망감에 무뎌져야 전문적으로 이행가능.

계단 : 를 미어캣으로 만드는 장벽. 허리디스크 환자는 평지를 선호하며 높이의 차이가 있는 길 쥐약. 경로재탐색 활성화. 계단을 마주했을 때는 엘리베이터나 휠체어 경사로를 찾기 위해 좌우로 고개를 돌리거나 위로 들어 파란색 표지판 탐색하며 경로를 새로고침. 빙 돌아가도록 만드는 다른 의미의 운동 유발자. 내가 선호하는 길에는 늘 장애인과 할머니가 계신다.

계절 :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것.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래도 변하고 있는 것. 목련꽃이 피고, 에어컨을 틀다가 가을바람을 맞고, 눈이 오는 순환의 사이클. 다시 피어오른 목련꽃의 몽우리를 보며 통증도 어서 저물어서 내게도 봄이 오기를 기도한 지 7번. 봄아, 어서 돌아와.

계획 : 물거품. 허리디스크로 처맞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기본값. 5분 후 정도만 계획 가능. 시간 계획 의미 없음, 오로지 삶의 방향만 신경 쓸 뿐.

균형 : 몸의 목표이나 삶의 목표. 통증 경감 제1법칙. 왼쪽과 오른쪽의 각각 신체부위(예. 고개, 어깨, 팔, 다리 등)를 같은 힘으로 유지하는 것. 왼쪽으로 치우쳐있는 몸을 대칭으로 고르게 만들어 평형 상태로 맞추어 나감.

글쓰기 : 건강하지 못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는 일. 가능성.

꼬리뼈 : 지진이 올 때 동물이 먼저 알아채듯이 무시무시한 허리 통증이 다가오기 전 내 몸은 꼬리뼈로 무전을 친다. 허리가 보낸 편지를 꼬리뼈 비둘기가 전해주는 것처럼.

꾀병 : 겉으로 볼 때 멀쩡해 보이는 데다 웃음이 많은 내가 인사팀에 상태를 말했을 때 받은 오해. "여기서 일하는 사람 중에 허리 안 아픈 사람 없다""업무시간이니 올라가서 업무나 하라"는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인식.

 : 다 나았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를 첫 번째 단어. 지금은 다가서는 것조차 힘겨운 말. 헛된 기대. 과거에 나를 움직이게 한 마법사이며 현재 나를 아프게 만든 주동자, 그리고 젠가 나를 살릴 구원자. 어릴 때만 갖는 게 아니고 나이가 지나서도 가질 수 있는 것. 그리고 변할 수 있는 것.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떠오를수록 현되는 것. 내가 죽을 때 이뤘다고 말하고 싶은 것.



나이키 : 허리가 안 좋으면 바꿔야 할 물건 중 하나는 신발. 수많은 신발 예쁜 쓰레기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터줏대감. 적당한 쿠션감과 인체 공학적인 신발 깔창은 땅바닥의 충격을 완화시켜 허리가 안 좋은 나에게도 안성맞춤. 하물며 빈지노도 찬양한 나이키 슈즈.  

너무 : 때로 아프다 라는 단어 앞에 백만 번 붙이고 싶은 부사. 혹은 [너~~~ 어~~~ 무]와 같이 길게 늘여 발음하여 감정을 실을 수 있음. 속으로만 시뮬레이션 중.

노을 : 내게 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아름다운 스승1.

눈물 : 피부가 쓰라리고 퉁퉁 부어 눈이 안 떠질 정도로 본 염도 0.9%의 물. 물의 총량 법칙이 있다면 30세에 50% 할당량을 당겨 써서 50세까지는 순탄할 거라고 자기 위로 중.

(雪) : 팜므파탈. 너무너무너무 좋지만 너무너무너무 위험한 존재. 걸을 때는 자꾸자꾸자꾸 미끄러질까 봐 발에 힘이 들어가 몇 배의 집중력을 요함. 특히 눈을 밟은 신발로 대리석 위를 걸을 때는 리가 삐-끗할까 초초초긴장상태.




독서대 : 고개 숙이지 마라, 당신이 허리디스크 환자라면. 읽을거리를 놓을 수 있는 받침대로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권장하는 물품. 른 자세 유지 도우미. 워서 쓰는 독서대는 제일 많이 이용하는 물건 중 하나.

 :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럽다고 하지만 사실 돈이 없으면 서러움. 수술, 운동, 물리치료할 때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에도 끊임없는 걱정거리를 제공하는 1등 공신. 아파도 일해야 하는 이유. 치료비 벌려다가 다시 치료하러 병원 가는 이상한 순환. '통(無痛)'으로 가는 길 서행하도록 만드는 원인. 아픈 나 때문에 일하는 엄마를 백수 만들고 싶다.




래시가드 : 영장 재활 유니폼. 수영장은 본래 수영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물의 온도가 따뜻하면 수영할 때 쉼 쉬기가 힘들어 적당히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데, 나처럼 수영장에서 걷는 사람에게는 추움. 특히 겨울 수영장은 더함. 래시가드를 입어 방한뿐만 아니라 겨드랑이 보호에도 만전을 기함. 때로는 내복으로도 쓰임.

라디오 : 허리 수술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백색 소음. 자장가. 책이나 유튜브, TV를 보는 것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어 허리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시각 콘텐츠보다 청각 콘텐츠를 추천. 매초 오는 통증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듣는 심리적 안정제. 김영하 작가님! 몇 년간 밤에 제가 자는 동안 책 읽어주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루틴 : 정한 일을 하기 위해 복되는 행동이나 과정. 삶의 루틴은 다다익선. 소한 루틴으로 점철된 하루는 안정감 있는 안전한 하루를 보장함.

리리카 : 유일하게 내게 효능이 있었던 마약성 진통제 이름. 술을 안 마셔도 소주 2병 마신 것처럼 만드는 약. 일부 통증과 정신이 동시에 사라져 현실 속에서 안드로메다 체험 가능. 걸을 때 호랑나비춤을 출 수 있으니 주의 바람. 리리카, 다시는 만나지 말자.




 : 뿌듯한 무지개. 재활 훈장. 활 중 힘이 들어와야 할 곳을 선생님이 눌러주실 때 생기는 피부조직 손상. 재활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 몸에 새겨진 재활 체크리스트로 멍자국이 있는 위치에 힘이 들어가는지 혼자 쉽게 연습 가능. 멍이 무지개가 되어 아름답게 사라져 갈 때, 다시 그리운 무지개.

멘소래담 : 무인도에 가져갈 3가지 중 하나. 고통 완화제. 잠 자기 전 허리와 다리에 바르고 침대에 눕는 것이 수면 루틴.

무알콜맥주 : 가끔 즐기는 나만의 만찬. 술은 염증 유발, 근육과 인대 약화, 수분과 혈액 공급 차단을 유발하여 폭발적인 허리디스크 통증을 촉진. 수술 후 술과 완전하게 절교. 금주 생활 유지 중 찾아온 조용한 파티플래너. 무알콜 맥주로 안전하게 유지되는 내적 흥분. 재활을 다녀온 토요일 밤, 치킨, 맥주면 극락정토. 이네켄, 카스, 칭따오, 호가든 외에도 아직도 맛 볼 세상이 많다는 것에 신이 남.

미드필더 : 축구경기에서 경기장 가운데에서 공격 및 수비 역할을 하는 선수로 흔히 '허리'라고 불림. 미드필더의 경기력에 따라 기사에서는 허리 부실, 허리 강화 등으로 묘사.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미드필더, 즉 허리 싸움. 축구를 보면서도 '허리'의 중요성을 느껴버리는 나는 허덕(허리 덕후). 축구선수를 보며 좋은 움직임과 몸의 밸런스를 배우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뛸 날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도. 축구에서도, 인생에서도, 건강한 허리가 승리 방정식.



바깥 : 시간의 바깥, 가족의 바깥, 시스템의 바깥. 소외된 존재의 상태. 로움의 흔적. 통증은 온갖 종류의 바깥을 경험하게 한다.

발톱 : 가장 먼 거리. 발톱을 제거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래서 피하게 되는 일. 발톱이 자라 옆 발가락을 피가 나게 할 때 낑낑대며 겨우 하는 일. 발톱 내어준 거면 다 준거다.

버스 : 웬만해서 이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교통수단. 무게중심을 잡으며 서서 가는 게 힘든 자동차. 지역마다 도로의 상태가 천차만별이라 쿵쿵 대는 버스보다는 조금 걸어가더라도 지하철을 이용. 한 번에 가는 직행버스보다도 환승이 많은 지하철이 서서 가기에 편리함.    

벼락치기 : 예전에 즐겨했지만 이제는 할 수 없는 것. 도의 집중력을 요하며 늘상 신체의 무리를 동반하 위험한 의 방식. 가끔 한 번에 몰아서 하는 쾌감을 느끼고 싶지만 허리디스크 환자는 모든 일을 꾸준히 찔끔찔끔해야 하는 것이 숙명.

변수 : 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통증의 세기를 다스리기 위해 조절되어야 할 가변적 요인.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허리에는 불리하게 적용. 모든 것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변수에 좌절하기 일쑤. 재활 운동을 하려고 회사를 쉬었으나 코로나 거리두기로 운동 센터가 문을 닫아버리는 천재지변이 이에 해당함.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그 안에서 다시 최선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음.

 :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내 앞에 있는 벽을 스스로 넘은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손을 잡아서 넘겨주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벽을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니면 벽을 허물 수 있는 사람이거나. 이 글이 그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병원 : 소독약 냄새. 하얀 벽과 하얀 조명, 하얀 뼈, 까만 디스크*, 하얀 가운, 하얀 미소. 얀 머릿속.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 마약성 진통제 처방전. 확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던 곳. 희망과 함께 방문해서 좌절과 함께 귀가하게 만든 곳. 돈 먹는 차가운 하마. 그래도 의지하고 싶고 내 몸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싶은 곳. 절실함이 가득한 곳. 답을 찾아줄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이 있는 곳. (*탈출된 허리디스크는 MRI상으로 까맣게 촬영됨)

불면 : 주호민 작가 저리 가라 하는 파괴왕. 무엇보다 가장 먼저 치료되어야 할 상태.   

 : 빚으로 빚어진 내 집과 몸.

삐끗 : 제일 싫은 단어.




세수 : 손과 얼굴을 씻는 행위. 빈도수로 따지면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은 불편함을 선사함. 허리를 굽혀야 하므로 얼굴만 씻는 행위는 불가능하며  샤워를 통해서만 얼굴을 씻을 수 있음. 매일 2번 샤워는 필수. 손을 씻을 때 화장실 세면대 높이가 낮으면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어정쩡하게 굽히는 행위를 유발. 허리를 굽히지 않고 물이 튀는 것을 감수하므로 세수 후 내 옷은 항상 젖어있음(빨리 마르는 재질의 옷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함). 세면대 높이가 낮은 3층 회사 화장실보다 높이가  높은 1층 화장실이 더 좋은 이유.

소설 : 마음의 해독제. 에 좋은 소설. 가 모르는 인의 선의. 프고 나서 더 많이 손이 가는 800번대 장르. 투병 기간 동안 나와 함께 해준 든 주인공들아 고마워, 내가 스스로 나아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줘서.

손가락 : 모든 신경이 작되는 곳. '손가락 힘이 없으면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다'는 선생님의 지론에 따라 재활할 때 가장 먼저 강화를 시작한 신체 부위.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제일 먼저 힘을 쓰는 위치.

수영장 : 틴의 결정체이자 잠으로 이끌어준 수면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의 장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숨을 쉬기 위해 물밖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내게 아직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곳. 눈물이 날 때면 물속에 들어가 울곤 했지만 물과 물이 섞여 표가 나지 않음. 많이 울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장소. 낫지 않아도 수영장에 꾸준히 가면 언젠가 나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강력한 주문을 되뇐 곳.

숙면 :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세상 최고의 안정제. 통증으로 잠 못 이루던 시절, 3시간 동안 한 번도 안 깨고 자면 축복. 생활에 지친 허리를 재생하는 시간. 통증에 곤두섰던 신경과 안녕하는 시간. 매일 만나는 행복. 

스트레칭 : 목에 칼이 들어올 때만 하는 것.  허리디스크 환자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동작이 다수 포진되어 있는 위험한 행위.

시시콜콜 : 구구절절한 행위. 왜 내가 당신과 커피를 마시러 갈 수 없는지, 왜 내가 점심시간에 누워있어야 하는지, 왜 내가 집에만 있어야 하는지, 시시때때로 바뀌는 허리의 상태를 타인에게 시시콜콜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기 거로움. 가끔은 내 몸에 버튼이 있어서 자질구레한 상태가 낱낱이 영수증처럼 발행됐으면 좋겠다고 생각. 통증의 위치와 수치 정확하게 기입되는 '시시콜콜' 통증 기계가 미래에는 발명되기를 기도함. 타인과 타인이 아픔을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신호등 : 기다려주지 않는 것. 너는 15초, 너는 22초, 너는 19초, 너는 26초. 횡단보도 길이도 제각각, 신호등 잔여 시간도 제각각. 보통의 사람이 건너는 속도는 몇 초일까. 허리디스크 환자는 뛰면 아프기 때문에 항상 초록불로 바뀌는 동시에 출발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음.

실패 : 고양이만 좋아하는 것. 허리로 인해 모든 게 다 망가졌다. 약해질 줄 알아야 강해질 수 있고 실패해보아야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내려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덜 실패해본 것. 아니, 성공의 맛은 봤던 사람. 성공하기 전 실패는 어떻게든 포장되지만 실패를 위한 실패는 무시당하기 일쑤. 실패에서 쉽게 빠져나는 비법은 음. 그저 홀로 견딜 뿐.

씩씩 : sicksick할 때 씩씩거리지 말고 씩씩하게 살다 보면 씨익 웃을 날이 있겠지 :)



다음 편에 (ㅇ~ㅎ)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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