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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Mar 14. 2024

아름다운 선택

소년이 온다를 읽고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어두워집니다.         -소년이 온다 본문 中


지금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울분이 휘발하듯 쉽게 사라질 것을 알기에 두렵다. 아주 잠시 슬퍼하다 금방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그렇다. 이러니 내 마음에 화가 나고 슬프다.


선거철이다. 길가는 중간중간 조그마한 사각형 종이 한 장을 내밀며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한 표를 나에게 주세요!'다. 그런 걸 알기에 그 행동 하나하나가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드러나는 것이 있다.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가 가진 현실이 색깔 논쟁과 이념 논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세태가 많이 변해 철 지난 논쟁이라등한시하는 듯하나 여전히 분단국가로서 겪을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탓에 대중들에게 먹힌다.


특히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됐으나 군홧발로 짓밟아 빼앗은 그때의 권력과 다르지 않은 현 정부는 노골적으로 더 새빨간 색깔 논쟁을 표면화한다. 거기에 합세하듯 5.18 민주화운동을 훼하는 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최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북한군 개입설과 전두환이 평화적인 새 시대를 열었다 주장한 어떤 이는 22대 국회의원 후보로 당당히 공천받았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고 입술이 수시로 들싹들싹 하다 끝끝내 오열이 터져 나왔다. 이유도 알 수 없이 죽음을 맞은 나와 그런 나의 죽음을 쫓다 만난 또 다른 나를 위해 초 하나 밝히던 너의 죽음. 여기에 죽음보다 더 지옥 같은 삶을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생존자와 유가족. 모두가 그날의 아픔이고 공포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절대 뱉을 수 없는 막말은 아픔과 공포에 차가운 총을 다시 겨누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기다 이 책은 5.18 민주화운동을 슬픈 날, 아픈 날로 뭉뚱그려서 기억하는 나 역시도 그들 앞에 죄인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다. 이미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그날의 아픈 성과를 기념하고 있으나 여전히 얼토당토않은 막말을 뱉는 양심을 찾을 수없 이들에게 화가 난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그러니 제발 이번만큼은 진정 사람에게 투표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선택이 되길 희망한다.


책을 읽고 함께 본 영화 <화려한 휴가> 속 선주의 마지막 말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가 더 이상 아픈 외침이 되질 않길......



*이 글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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