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끼 Feb 25. 2022

박찬국, 현대 철학의 거장들

강한 인간 

 근래에 다시 현대 철학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현대 철학 중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을 제대로 파 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난해함을 몇 번 맛본 적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명제를 다루는 수리적 방법론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나 그것을 읽으려면 머리를 풀가동하고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읽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독서는 정신을 이완시키고 소일거리를 하는 용도라고 생각하기에 비트겐슈타인에게 제대로 들어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현대 철학 관련 도서 중 가성비 좋다고 하여 이 책을 추천받았다. 저자가 박찬국 교수고 비트겐슈타인도 들어있어 큰 고민하지 않고 주문하였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철학자들은 마르크스, 키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포퍼 총 8인이다. 철학사에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을 다 모아둔 기분이다. 책 자체도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고 그걸 철학자마다 파트를 나눴으니 한 사람당 분량은 적다고 하면 적은 수준이다. 저자가 관록이 있어서 그런지 적은 분량에도 철학자의 핵심 주제들을 다 담아내었다. 8명 대부분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키르케고르, 니체,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퍽 좋아하는 철학자에 속하며 푸코도 최근에 본 영상이 있어 반가웠다. 책을 빨리 읽어내는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일도 많고 진득하게 책을 잡을 기회가 잘 안 생겨서 의외로 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그래서 키르케고르나 니체  파트를 읽으며 고양되었던 부분들이 많았던 기억은 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키르케고르는 1단계 2단계 3단계로 늘 나누는 익히 알던 내용이었고 키르케고르의 실존이 내 취향에 맞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읽은 거 같다. 니체 파트에서는 내가 처음부터 한 오해는 아닐 것이고 아마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오류가 생겼을 것이다. 니체가 말한 능동적 니힐리즘, 즉 가치의 전환에 대해서 최근 들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었다. 니힐리즘에 낭만주의를 더한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계속 뒤이었다. 그 질문에 완전한 해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니체가 말한 '가치의 전환'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부분은 해소할 수 있었다. 모든 가치의 전환이란 기존의 가치들 대신에 새로운 가치들을 정립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들의 본질에 대한 규정이 변화된다는 것, 다시 말해 가치 정립의 원리가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형이상학적인 가치 정립을 반복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의미한다.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서도 개념을 더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 무엇일까 해서 착안한 개념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희미해진 거 같다. 철학적 사고도 계속 날카롭게 해줘야겠다는 것을 절감했다. 니체에게서 들은 나 자신을 강하게, 고양시켜라는 말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거 같다. 그리고 저자가 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를 운명으로부터의 도피, 헤겔을 운명을 합리화하는 운명과의 타협,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를 운명과의 무망한 대립으로 비유하고 니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운명과의 화해를 꾀한다고 말한 점도 철학사를 꿰뚫는 인상 깊은 대목이었다. 말하다 보니 니체 파트에 관한 감상이 분량을 많이 차지했는데 개인적 호감에 따른 것이니 이해 바란다. 

하이데거는 8명의 철학자 중 가장 읽기 지루했다. 오염된 언어가 많다고 언어부터 새로 설정한 사람이니 각오는 했지만 무척 잘 읽히지 않았다. 푸코는 퍽 흥미롭게 읽었다. '광기의 역사'와 관련해서 영상을 봐서 그런지 이해가 퍽 잘 되었고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이 재밌었다. 동일한 시대에 서로 다른 에피스테메들이 경합할 수도 있는 것에 대한 예시로 저자가 우리나라의 의학 분야에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공존하고 있다고 밝혀 반갑기도 했다. 비트겐슈타인 파트도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다. 과학철학이어서 수리적 개념만 난무할 거라는 걱정도 하였으나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한, 참 거짓을 따질 수 없는 지성을 연마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더 높게 평가한 대목에서 약간은 안심했던 거 같다. 실천적 윤리를 추구한 점도, 지성에 기반한 과학에 인류가 매몰되는 것을 경고한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초기에는 언어의 엄밀성을 주장했으나 후기에 가면 맥락을 더 중요시하는 대목은 과거에 읽었던 기억이 나서 그렇게 새롭지는 않았다. 

포퍼는 신입생 시절 들은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과학의 조건으로 반증을 제시한 것도 어디서 본 기억이 난다. 추상적인 선의 실현을 위하여 힘쓰지 말고 악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대목이 새로웠고 기억에 남을 거 같다. 행복이란 불분명하며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다. 고통은 의식주의 부재같이 명확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나는 악을 제거하는 것도 선의 실현이라고 생각해왔기에 이것을 분리하여 제시할 수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워낙 방대한 내용에 관해 감상을 남기려다 보니 일목요연하지는 않은 거 같다. 그만큼 책이 적은 분량에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가성비 좋은 책이다. 현대 철학의 요점을 훑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