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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Feb 12. 2023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기한을 정하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겠소.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주문한 책이다. 그동안 너무 비문학을 읽어서 그런가 독서에 대한 회의도 들어서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볼까 생각을 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톨스토이의 중단편을 모아둔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그래도 톨스토이니 기본은 하겠지 생각을 하고 주문을 했다. 첫인상은 겉표지가 손상되어서 별로였다. 처음 나오는 단편도 그저 그랬으나 중편으로 넘어가니 상당히 좋았다. 감명 깊게 읽은 것들이 꽤 되었다. 올해가 많이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읽은 책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톨스토이의 청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한데 모아둔 것이기 때문에 주제의식이 퍽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특유의 문체는 일관되어 보인다. '캅카스의 포로'부터 흥미를 읽고 읽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같은 소설은 익히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사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중단편 중 최고를 하나 뽑아볼 생각이었다. '크로이처 소나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악마' 이 3개가 최종 후보군이었는데 끝내 선택하지는 못했다. 다 너무 매력적이다. 


톨스토이의 심리묘사는 도스토옙스키와 다른 분야에서 탁월함을 발휘한다. 애욕과 관련된 부분의 심리를 참 잘 파고든다.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서 그른가 아주 실감 난다. 사실 계몽적인 농촌운동 면모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보다 애욕을 다룬 작품이 더 흥미진진했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실제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틀어놓고 읽어보기도 했다. 상당히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주인공 '포즈드니셰프'가 모든 섹스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포즈드니셰프라는 인물로 위선을 풍자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가 섹스로부터 비롯된다는 진지한 열변은 톨스토이의 금욕 사상에서 조금 비롯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처럼 모든 작품에서 작가의 사상이 은은히 들어가 있다. 하지만 절대 거북할 정도로 많이 첨가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래서 대문호라고 하는 거겠지 


'악마' 또한 애욕에 관련된 소설인데, 톨스토이의 실제 경험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심리묘사가 정말 탁월했는데 결말이 좀 아쉬웠다. 아내 눈치를 봤다고 주석이 달려 있었는데 정말 그렇다면 참 애석할 따름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죽음을 마주하는 인간 심리를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세 죽음'에서도 그렇고 죽음이 다가온 병자의 심리를 캐치하는 것에도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는 거 같다. 마지막 단편인 '알료사 고르쇼크'는 러시아 전형의 성스러운 바보를 형상화한 걸로 보인다. 이름 또한 알료사여서 도스토옙스키가 많이 생각났다. 물론 도스토옙스키식 성스러운 바보와는 많이 달랐다. 


꽤나 추천하고 싶은 중단편선이다. 하나하나 흡입력 있는 작품들이다. 순수 재미로 본다면 톨스토이의 장편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수위가 세다. 출판하는데 어려움이 있던 작품도 몇몇 있으니 예상해 보는 것도 재밌을듯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역시 톨스토이란 생각을 굳히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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