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랑하는 마당에 가을 소식이 한창이다. 석류, 사과 대추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가지각색의 꽃들이 애정에 보답하듯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엄마와 딸, 우리 모녀는 좋아하는 게 극명하게 나뉜다. 엄마는 산과 들을 오가며 자연에서 행복을 찾고 딸은 틈만 나면 널브러져 활자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이고 예뻐라, 딸아 이것 봐라 화원에서 다 죽어가는 거 얻어와서 정성을 쏟았더니 꽃을 보여주네"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내 시야에 불쑥 화분이 들어찬다. 이것뿐인가, 마당에 심긴 꽃들을 하나하나 꼽기 시작한다. 페튜니아, 하와이무궁화, 낮달맞이꽃, 흰사프란, 천일홍, 만데빌라, 덴파레... 이 어려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저마다의 기특함에 감탄을 연발하는 엄마. 같은 레퍼토리를 30년쯤 듣고 있지만 엄마에게 마당 꽃들은 처음 보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고 새로운 아이들인가 보다.
본가에 방문하는 날이면 저 멀리서부터 알록달록한 꽃들이 어서 오라 내게 손짓한다. 계절마다 넘치는 꽃들 덕분에 본가는 동네 '꽃(많은)집'으로 불린다.
사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취미는 고상과 거리가 멀다. 이건 노동이다. 중노동. 계절마다 쓸고 닦고 치우고. 해야 할 일 리스트엔 마침표가 없다. 보통 부지런함으론 마당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
가을엔 구근을 마당 곳곳에 심고(작년에는 라넌큘러스를 심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곧 있을 입동 맞이를 해야 한다. 나뭇가지를 꺾어 정리하고 화분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깨끗이 닦아 각각 창고와 방으로 들어간다. 겨울에는 겨울꽃들이 있어서 또 바쁘다.
엄마는 사계절 모습을 그리는 것이 너무나 기대되고 기쁜 일이라고 했다. 취향이 확고한 마당 디자이너라 내가 가져간 꽃이나 다육이는 문전 박대당하기 일쑤. 꽃이 나보다 더 좋다고 했던 우리 엄마.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렇지 자식이 꽃보다 못하다니,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는데 씩씩거리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얘네들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꽃들이 보여주는 모습만큼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엄마 그래도 건강 하나는 자신 있으니 자식 농사 잘 지은 거 아닐까. 겨울 오면 또 가서 열심히 화분 나를게. 키우고 싶은 꽃 있으면 원 없이 키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