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더 많이 얻을수록 행복해진다는 믿음이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는 믿음은 이뤄질 수 없다. 왜냐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를 얻으면, 또 하나를 원하고, 그다음 것을 원하게 된다.
물질세계에서 소유는 어느 시점을 지나면, 한계에 부딪힌다. 더 이상 소유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져,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행복한 상태라기보다는, 포화된 상태라고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할 것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소유가 아니라, 내려놓기를 실천해야 된다. 그렇다고 해서 소유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소유를 통해 자아를 실현시킨다. 우리의 영혼은 소유함으로 목소리를 낸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에서 살지, 어떤 사람과 사귈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소유하겠다는 욕망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의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빼앗고 탐욕을 부리는 것은 문제가 되겠다. 남의 것을 파괴하는 것도 큰 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즐기기 위해 태어났지, 서로 싸우자고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은 언제나 조화롭게 움직인다. A와 B가 각자의 본성과 특성에 맞게 움직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역할에 맞게 살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인간만이 자신의 본성대로 움직이지 않고, 억지로 애쓰며 살아간다.
당신은 원이다. 그런데 네모라는 틀에 머문다면, 괴롭지 않겠는가? 당신이 원이라면, 네모가 아니라, 원에 머물러야 올바르다. 일단 우리가 원인지, 네모인지 형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별인데, 네모들 사이에서 행복할리 만무하다.
별은 별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밝은 빛을 내뿜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형태와 본성대로 조화롭게 욕망한다면, 서로 싸우고 경쟁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되고 싶은 형태가 있다. 누군가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는 자영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자의 형태가 있고, 그 형태에 맞게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률적인 행복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가 주입하고 세뇌하는 행복의 형태는 가짜이다.
진짜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함이 아니라,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형태일 것이다. 나의 모습, 나의 꿈, 나의 사랑, 나의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신이 우리에게 원하는 조화와 평화이다.
쇼펜하우어는 젊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것만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 젊은이들에게 행복에 관하여,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 더 많이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가난하게 살지 않는 방법을 찾아라 '이다. "
우리는 궁핍을 피해야 한다. 또한 지루함과 권태와도 싸워야 한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이 뚜렷한 사람은 외부의 편견과 시선에 질질 끌려다지니 않는다. 스스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삶의 의미로 삼을지 고민해야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 삶의 의미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재밌게 살아가면 됩니다. "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삶의 의미가 없는 사람은 그 어디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없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는 흥미를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가 없다면, 재미와 흥미도 없다. 진정한 재미와 흥미는 지속되어야 하며, 일시적이지 않아야 한다.
일시적이라면, 그것은 쾌락에 가까운 현상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쾌락보다 더 심오한 것이다. 쾌락이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대가를 제공해야 된다. 어느 정도 헌신이 필요하며, 지속되어야 한다.
쾌락이 일시적이라면, 인간은 금세 실망감을 느낀다. 책임이 필요 없는 쾌락은 불행과 피곤함, 불만과 불평을 끌어들인다.
만약 당신이 책임이 있는 쾌락만을 삶에서 영위한다면,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영혼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쾌락에는 뭐가 있을까? 바로 성장이다.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에서 우리는 진정한 쾌락을 맛볼 수 있다.
자기 충족감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즉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행복의 척도인 것이다. 자부심을 많이 느낄수록, 자기 충족감을 많이 느끼게 될수록, 능력은 상승되고 부와 명예가 조금씩 축적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보고 오해를 하는 것이다.
"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지는구나. "
아니다. 반대로 생각해야 된다. 행복한 사람이 돈도 많이 벌게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즐겁게 인생을 향유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소유에 행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유는 성공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 증거로, 성공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창조적인 활동을 평생 동안 지속한다.
그들은 몇 대가 먹고 살만큼의 재산을 축적하고도 끊임없이 일한다. 그들에게 일이란, 하나의 창조적 놀이이다. 일하는 시간에 가장 즐거운 것이다. 자기 지신이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만 알 수 있다면, 행복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행복은 우리 가까이 있다. 바로 당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당신을 위한 길은, 당신만이 안다. 당신을 위하는 존재는 당신 스스로 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괴물과 싸우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말라고 했다. 탐욕과 집착은 괴물이다. 그것들을 추구하고 살아가다 보면, 진짜 소중한 존재들을 잃어버린다. 진짜 중요한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 사랑 '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사랑을 이뤄내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라. 가짜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해야 된다고 유혹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는 허무함, 분노, 허탈감, 비참함만이 남을 것이다.
가짜 행복을 내려놓고, 진짜 행복을 추구하라.
진짜 행복은 따뜻할 뿐만 아니라, 행복하고, 포근포근하며, 아름답다. 또한 경쟁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한다. 조화로우며, 자연스럽다.
당신답게 살아라. 남들이 추구하는 가짜 행복이 아니라, 진짜 당신의 모습대로 살아라. 그것이 진짜 행복의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