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당신을 다른 무언가로
만들려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는 것이 가장 큰 업적이다
- 랄프 와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대기업의 구성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어 안정적인 급여와 복지 속에서 평온을 누리기를 원한다. 분명 사회가 정해준 범위와 틀 안에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락함과 '실패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안락함의 이면에는 '나'라는 존재의 상실이 숨어 있다. " 나는 무엇인가? "라는 답을 회사에서는 찾아낼 수 없다. 예를 들어 회사에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일요일 저녁부터 설레서 잠 못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스스로의 가치관보다는 집단의 논리에 나를 맞추게 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살다 보면 문득 자신의 삶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점차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말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는 생각보다 인간을 좌절에 빠트리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조직이 제공하는 안락함 속에서 서서히 삶의 의미를 잃고 마모될 것인가, 아니면 거친 들판으로 나가 고통스럽더라도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될 것인가를 말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자유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소극적인 자유이고, 두 번째는 적극적인 자유이다. 두 자유는 대립하며, 서로 상충한다. 소극적인 자유는 집단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고, 안락함과 편안함,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다.
반면에 적극적인 자유는 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용함으로써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가난해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첫 번째 소극적 자유는 편안한 감옥과도 같다. 두 번째 적극적 자유는 고독과 고통을 의미한다. 안타까운 점은 두 자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극적인 자유를 선택하면 삶의 통제력을 잃고 좌절할 수 있다. 물론 안락한 환경과 충분한 재산을 일궈낼 수는 있겠다. 반대로 적극적인 자유를 선택한다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심한 압박감과 가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정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이를 '자유의 딜레마'라고 부른다.
소극적 자유는 자신의 자유를 일부 희생시키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극적인 자유를 추구하면, 넓고 따뜻한 집, 충분한 재산, 안정적인 삶, 희망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안정된 직장'이나 '높은 사회적 지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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