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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쪼 Aug 19. 2024

아이들에게 자유를 달라

<주제 글쓰기-학교가는 길>

중학교 때 버스맨이라는 말이 있었다.

버스 타고 학교에 올 때마다 만나는 근처 학교의 멋진 남학생을 일컫는 말...

난 학교에 걸어다녔으니 버스맨은 없었고 워킹맨이 있었나?

같은 시간에 항상 마주치는 고등학교 오빠들..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지만 말은 해보지 않은 멋지게 자란 동창들..

싸움 좀 한 것처럼 보이게 손에 붕대 감고 다니는 허세 쩐 중학생들..

여중이라 아침에 학교에 오면 늘 오늘 아침에 본 버스맨과 워킹맨에 대해 이야기했다. 각자 애칭이 있었고 오늘은 무슨 일이 없었는지 서로 물어보았다.

살짝 달랐던 헤어 스타일에 대해,

나를 바라보던 우수에 찬 눈빛에 대해,

만나지 못해 아픈 게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학교 가는 길 10분이 몇 부작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근처 남녀공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얼마나 좋을까...너무 부러워서 교육 제도가 잘못되었다 소리 높여 외치며 우리의 신세를 한탄했다.


언니들의 부진한 성적 원인이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아서라는 결론을 내린 엄마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우리 형편에 맞지 않는 시내에 있는 비싼 학원에 날 보내기 시작했다. 

시내, 비싼 학원이라는 느낌 때문인지..

처음 학원에 간 날  그곳을 지나가는 아이들은

다 부티나 보이고 공부 레벨도 나와 차원이 달라 보였다.

사춘기 절정에 이른 중학교 2학년인데 친구 한명 없는...

우리 동네와 한참 떨어진 곳으로..

혼자 버스 타고 수업을 들으러 다녀야 한다니..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엄마가 미웠다.

언니들 성적이 잘 나왔다면 내가 여기 오지 않아도 됐을텐데.. 

언니들마저 원망스러웠다. 


선생님과 상담 때문에 일찍 학원에 와서 혼자 교실에 덩그러니 앉아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동그랗게 마주보고 공부하는 소수 정예 학원이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한참 지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늘 처음 온 친구야."라고 날 소개하실 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엄마를 원망한 날 질책했다. 

'엄마가 너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학원을 골랐는데,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다니, 너 왜 그렇게 못됐니?'

너무 잘생긴 남자 아이가..

그것도 둘 씩이나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할렐루야~~


수업이 끝나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 아이 둘도 정류장에 왔다. 그리고 같은 버스를 탔다.

지난 <집>주제에서 이야기했던 우리 동네 좋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었다.

같은 정류장에서 내렸고 우리집에 도착하기까지 난 온몸이 긴장되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엄마에게 학원이 너무 마음에 든다, 선생님이 공부를 정말 잘 가르친다, 

확실히 시내 학원은 다른 것같다며 엄마가 날 절대 그만 두지 못하게 하도록 학원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학원을 잘 선택한 스스로에게 만족해하시는것 같았다.


여전히 워킹맨들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아침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소재는 온통 학원 남자애 2명으로 압축됐다.

그 두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얘는 키가 커. 진짜 대박 얼굴은 왜 그렇게 조막만한거야."

"얘는 얼굴이 너무 잘생겼어. 눈빛이 배용준이야 뭐야."

내 설명을 들은 친구들은 이 애가 좋겠다, 저 애가 좋겠다 의견을 내놓았다.

하루 하루 원픽은 바뀌었지만 결국 배용준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 누구도 그 애의 우수에 찬 눈빛을 이기긴 쉽지 않았다.


시험 기간이 되었다. 학교와 학원 시험이 겹쳤다. 

학교 시험 준비가 우선이 되어야했지만 그건 그 아이를 내가 좋아하기 전의 일이다.

나에겐 당연히 학원 시험 준비가 중요했고 결국엔 1등을 했다.

"미쪼가 온지 얼마 안됐는데 1등을 했네. 잘 했다."

그 아이는 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박수를 쳤다.

아...이런 맛에 학원에 다니는 거구나. 


아이들이 공부 안하고 생활 지도에 문제가 된다며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을 갈라놓는 학교 교육제도는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었다.

남녀 공학을 갔다면 난 분명 전교 1등을 했을거다.

이런 사정을 몰랐던 엄마 아빠는 고등학교 선택 시 내가 새로 생긴 남녀 공학을 가겠다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며 안된다고 했다.

내가 남녀 공학을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이유를 들어 설득해보았지만 

아빠는 사회에 나오면 선배가 중요하다. 이름 있는 고등학교를 나와야 한다.

남녀 공학 가면 헛바람 든다 등등...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전년도 서울대를 많이 보낸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썼고 난 그 학교에 다니게 됐다.

다른 학교는 머리를 기르고 묶는 것을 허용했지만

악명 높은 우리 학교는 귀밑 1cm를 강조했고 긴 머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찾아볼 수 없는 파란색 희귀템 교복에 무엇보다 희고 두꺼운스타킹을 신어야했다.

운동 부족으로 엉덩이와 종아리가 튼튼해진 우리는 흰 스타킹으로 무다리가 부각되었다.

인근 학교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면 우리 학교에서 내노라하는 미인들도 오징어가 되었다. 


난 가끔 내가 그 남녀 공학 고등학교를 갔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본다.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남자 애들과 같이 경쟁해야 해서 내신 따기가 더 어렵진 않았을까?

오징어로 3년을 다닌 덕분에 남자 애들에 대한 마음을 포기하고 공부에 전념한 걸까?

그 학교에 같이 가자 설득하던 경은이가 아나운서가 되어 유재석의 부인이 되었는데 그럼 나도 유명인이 되서 김원준이랑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빠의 말이 틀린 건 확실했다.

사회에 나와도 고등학교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대에 많이 보내는 학교라고해서 그 다음에도 서울대에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건 환상이다. 우리 학년에 딱 한명 서울대에 합격했다.


귀밑 1cm를 지키지 않으면..

정해진 구두를 신지 않으면...

교복을 입지 않으면 불량 학생이 될까 그 시절 어른들은 전전긍긍 했다. 

남녀 공학이 되면 연애에 정신이 팔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고 

중학교 때부터 반으로 갈라 놓았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참 부럽다.

염색도 하고 펌을 해도 된다.

중학교는 대부분 남녀 공학이다.

남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하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

공부는 그 시절 우리보다 더 열심히, 악착같이 한다.

생각보다 그렇게 자유를 억압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잘 성장한다. 

나도 그런 자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학교 가는 길 잠깐..

학원에서 겨우...이성을 보며 설레며 사춘기를 보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안쓰럽다. 

"미쪼야..그 안에서 어찌 어찌 재미 찾느라 고생 많았다."



<에필로그>

아뿔사..내가 성적이 잘 나오자 엄마는 그 학원보다 더 좋은 학원을 보내려했다.

학원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 변명을 들어보았지만 엄마를 설득하지 못했다. 

남자를 좋아했으나 엄마도 너무 좋았으니까..

엄마한테 졌다. 

새로운 학원은 시험까지 봐가며 아이들을 뽑았다.

테스트를 받으러 온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수험표까지 있었다.

한반에 30명 정도씩 여러 개의 반에서 동시에 시험이 진행됐다.

흡사 수능 시험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은 흔한 레벨 테스트가 없던 시절이라,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그 학원의 분위기에 압도 되었다.

내 자리를 찾고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저 문앞에서 배용준을 닮은 아이가 들어왔다.

그 아이가 빛을 뿜으며 한발 한발 다가올 때

나과 그 아이 외에 모든 것은 정지된 것 같았다.

나를 향해 걸어와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내 뒤에 앉았다.

성씨가 임씨라 수험 번호가 바로 내 다음이었나보다.

그리고 2년을 그 아이와 또 같은 학원에 다녔다.

우리 엄마의 학원을 고르는 선구안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에 만난 워킹맨이 고개만 살짝 내쪽으로 돌려도 하루 종일 마음이 몽글거렸던 내가..

같은 동네, 같은 학원을 두번이나..

그것도 바로 뒤 수험번호로 그 아이를 만난 아이와 어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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