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 몇달 동안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드디어 끝났다.
아니..드디어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내? 결국? 아니..
기어이....그래 기어이가 낫겠다. 새드엔딩이냐 해피엔딩이냐가 중요하지 않았다..
엔딩이 온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초울트라 새드엔딩이다..
기어이..'기어이 엔딩'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는데...
가만히 서 있어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지금의 희도와 이진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처음부터 둘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백씨가 아닌 희도의 딸 김민채의 등장으로...
응팔에서 어남택이냐 어남류냐로 들끓었을 때처럼...
수많은 뇌피셜이 난무했다.
이진이가 아빠 때문에 성을 바꾸어서 김이진이네, 민채는 고유림의 딸이네 등등..
그런 뇌피셜이 혹시나 맞아 해피엔딩으로 가면 어떨까 기대를 해본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 완벽했던 둘이 헤어진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아서..
하지만..스토리도 연기도 연출력도 완벽했던 이 드라마가..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위해
여러 장치들을 만들어냈었다면..난 결말을 보고 바로 놓아버렸을 지도 모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드라마였다.
나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같은 느낌..어떻게 내 취향을 알고 이렇게 딱 맞게 준비해주었을까??
첫째...
난 학원물을 좋아한다. 순수하니까..뭘 해도 용서되니까.. 이것저것 재지 않으니까..
하나에 미칠 줄 아니까..별 거 아닌 거에 목숨 거니까..
둘째...
처음 보고 바로 알아보았던 내 배우..날로 성장하는 그의 연기력과 외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남주혁은 <스물다섯 스물하나> 전과 후로 배우 인생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남주혁이 아닌 이진은...상상할 수 없다..
거기다 김태리가 여자 주인공이라니....
<스물다섯 스물하나> 성공 요인에 김태리의 캐스팅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인공 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가 참 좋았다.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들도...연기력도...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았다.
딱...좋았다.
셋째...
가장 좋았던 것은...유머를 꾸며내지 않고 대사와 행동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게 했다는 것....
이건..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연출가의 힘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넷째...
어쩔 수 없는 공감...나와 희도는 동갑이니까..시대가 나를 추억하게 하니까..
다섯째...
모든 드라마에서 가장 큰 역할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검블유에서도 반했지만 이번엔 첫회를 보고 더더더 작가님을 좋아하게 됐다.
이진과 희도의 사랑을 온 시청자가 응원하고 싶게 너무 예쁘게 만들어주어서..
새드엔딩이어도..해피 엔딩이어도...상관없었다.
누구보다 이진과 희도를 사랑할 작가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말 많았던 그 결말이..난 ...참 좋았다...
아...결말을 이야기하려니...심장이 저려온다.
맨 마지막 어른이 된 희도가 그곳에 세워 둔 이진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별을 말하러 가는 장면에서...
조카들이 자주 말했던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이럴 때 하는 말인가?? 심장이 커지면서 터질 것만 같은?
굴다리 앞에서의 희도의 모습이..이진의 표정이...
얼마나 그때를 후회했을까..얼마나 고치고 싶었을까..
희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던 모습이 이진은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졌을까..
아직은...겨우..스물 다섯...
실수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많을 나이....어른으로 보였지만..생각해보면 이진도 참 어렸다..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상상은 해보지도 않은 사이니까..그 사람은 당연히 나를 기다려 줄 거라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건 몰랐으니까..
그리고 내가 계속 힘들게 할 거란 걸 아니까..
역시 희도는 희도다...
실은 스물다섯 이진보다 스물하나 희도가 훨씬 어른스러웠다.
여전히 씩씩하고 즐겁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희도가 참 좋다.
희도가 결혼해서..아이가 있어서 더더욱 좋다. 나도..그런 희도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왠지 나를 응원해주는 것만 같아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며..나의 학창시절...그때의 물건들...학교.. 친구들..노래...순수했던 내 모습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다시 돌아가고 싶고..고치고 싶고...되돌리고 싶은 수많은 날들이 생각나 괴롭기도 했다.
나이가 많이 든 지금..그때보다 덜 실수하고..덜 후회하며 살지만...
그때의 뜨거웠던 여름은 이제 나에게 없다.........
한동안은 문득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로 마음이 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기분도 점점 무뎌지겠지..
뜨거움은 항상 식으니까.. 내 여름처럼...
하지만 또 새로운 여름이 다가 올거다...뜨겁진 않아도..뭉근하게 진한 맛을 내는 여름이...
그때가 되면 난 지금 어딘가에 있을 이진과 희도를 희미하게 떠올릴 수도 있겠다...
스물 다섯 스물 하나..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