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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니 Mar 28. 2022

마이너스로 향하는 복리 효과

원인미상의 알러지가 시작됐다

밤새 열꽃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온 지 6개월,

손바닥은 요즘 내 성적표다.


건강하게 잘 먹는지, 잠은 충분히 자는지, 스트레스를 잘 해소했는지 보여주는 수행평가 성적표. 상승과 하강 곡선을 따라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는 동안 나는 금방 낫겠거니 하며 제법 오랫동안 평정을 유지했다. 이렇게 뜨겁고 가렵고 따가운 밤이 찾아오는 몇 날을 제외하곤 말이지.


한밤중 화끈한 열기에 잠에서 깬 시간은 새벽 3시. 간지러움을 달래기 위해 파리처럼 손을 비비며 지난 하루를 복기했다. ‘오늘 내가 뭘 잘못 먹었지? 어제 먹은 디저트 한 입인가? 설마 지난 주말에 못 참았던 맥주 한 모금?’ 꼬리를 문 생각은 마치 웅덩이로 모여드는 물처럼 무의식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내가 나 자신을 회초리질하는 자책의 수렁이다. '몸에 안 좋을 걸 알면서 내 자제력은 왜 이모양일까.'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끊임없이 낮은 에너지를 맴돌다가 이내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워진다.


  나한테만,   시간에,  이런 일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는 피부에 나타나는 자가면역반응의 일종이다. 즉, 나를 지켜야 하는 면역 체계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죽을 병은 아니다. 따갑고 가려운 두드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몹시 건조해져서 피부 표면이 일어난다. 지문 인식이 안될 정도로 건조한 시기가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래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첫 해에는 피부과에서 약을 처방받았고 금방 나았다. 문제는 그 다음 가을이었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다시 시작된 두드러기는 6개월째 내 몸을 떠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다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문득 원인을 찾아 이리저리 들쑤시고 자책하는 내 마음이 면역 반응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랬다. 나는 내 몸이 아픈 순간에도 내 탓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잠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 생각과 거리를 뒀다. 어쩌면 손바닥에 난 불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SOS 신호일지 모른다. 이제 스스로를 공격하는 모든 것을 멈춰 달라고. 너무 지쳐서 더 이상 방어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도와달라고 외치는 신호인 것만 같았다.



은행에 넣어둔 적금만 복리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삶의 모든 것은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쌓인다. 작은 습관이 반복되면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어떤 습관은 죽음을 앞당긴다. 질병이 그토록 괴로운 것은 죽음의 미니 버전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몸의 생명력이 다해가고 있다는 시그널이니까. 나의 경우 질병으로 향하는 복리 효과는 사랑의 결여에서 시작됐다.

   

내 질병의 뒤에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모든 선택이 있었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몰아세웠던 날들. 채우고 성취해도 온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해 밤늦게 잠을 쫓으며 무언가에 몰두한 날들. 누군가 채워 주길 바라며 빈 껍데기 같은 만남을 이어간 날들이 그랬다. 물론, 별생각 없던 습관도 있었다. 오후 4시, 피곤이 몰려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았던 커피와 과자. 늦은 밤 소화 불량인지 허기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끓였던 라면. 힘든 하루에 대한 보상이랍시고 몸에 들이부었던 맥주 한 캔. 그 모든 것이 착실히 쌓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복리로 돌아왔다.


한 순간의 선택은 큰 생채기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내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나를 살리기 위해,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제 몸의 일부를 단단한 방패로 바꾸면서. 장은 딱딱해지고 오장육부 곳곳에 결절이 생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패는 어느날 돌연 암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천천히 진행된다. 복리 효과처럼 그 끝에 가서야 지금까지의 행동의 결과를 마주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완벽을 갈구하던 30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더 이상의 노력을 멈춘 순간 나를 지탱해줬던 건강이 제 순서가 온 것을 알았나 보다.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나를 공격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갈림길에서 나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나의 행동에 성적표를 매겨가며 또다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칠지, 아니면 내 몸과의 연결고리를 꼭 붙잡을지. 진심으로 나 자신을 향한 사랑이 필요한 때다. 뜨거운 손을 꼭 맞잡고 여러 번 다짐했다. 이번에는 꼭 낫게 해 주겠다고. 다시는 혼자 두고 가지 않겠다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이 지난한 과정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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