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리멤버'가 원작 못지않은 걸작인 이유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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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은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입니다. 미생부터 남산의 부장들 그리고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실망시키는 작품이 한 편도 없습니다. 그리고 다 다른 빛깔의 연기를 펼쳐냅니다. 진정한 팔색조죠. 작년 연말에 개봉돼 최근 티빙에 올라온 리멤버를 이제야 봤습니다. 리멤버는 그동안 충무로가 국뽕 영화에 빠져 일제 강점기 시절만 다뤘던 것과 달리 일제 강점기 이후의 일본 소위 친일파 청산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다룹니다.

영화는 치매가 걸린 80대 노인이 자신의 가족을 파멸시켰던 친일파와 일본 자위대 간부 등 4명을 사적으로 복수를 하면서 놀라운 반전(실은 그 자신도 관동군 출신의 친일파여서 자신이 처단하고자 하는 대상이었음을)을 깨닫게 되는 건데, 사실 이런 놀라운 반전은 한국에서도 2020년 공개된 캐나다 미국의 합작 영화 리멤버‘에서 따온 겁니다.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며 유대교 회당에 다니던 주인공이 치매가 걸려 죽기 직전 복수를 이루려고 한 명 한 명 처단해서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아우슈비츠에서 괴롭히고 가족을 죽였던 인물을 만나 복수를 하려고 했을 때 자신이 실제는 아우슈비츠에서 SS로 근무했던 나치였음을 깨닫고 가족(실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되죠.)이 보는 데서 자살하는 충격적인 영화였죠. 아마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한국을 무대로 바꿔 일제와 친일파를 단죄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듯합니다. 영화는 맥베스를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거미의 성이라는 제목으로 완벽하게 일본화했듯이, 아톰 이고시안의 명작 리멤버를 정말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잘 리메이크했습니다. 실제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반일을 선동하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일제와 관련된 모든 이를 처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파멸시킨 사람들만 처단하려고 했고 대한민국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일제 자위대의 행사장에서 주인공은 불특정 다수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테러극을 벌이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누이를 능멸한 일제강점기 일본군 한 명을 척살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서 복수는 어찌 보면 반인륜 범죄에 대한 정의구현이라는 측면이 분명 있죠. 그런데 이게 다 영화라는 게 이 영화의 약점입니다. 아마 극장에서 본 60만 명의 관객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제 친일파 청산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고 영화로만 볼 수 있는 그런 소재가 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그동안 한국 영화들이 잘못한 게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유대인 자본이 독일 나치를 다루듯이 섬세하게 일제 문제를 다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냥 대중이 좋아하는 국뽕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했고 영화에서 악역은 일제 그 자체고 일부 친일파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공격의 대상은 일본(물론 지금의 일본은 아니고 군부가 지배했던 시절의 제국주의 일본)이었지, 같은 동포인 친일파가 아니었습니다.

왜 일본 관련 영화들은 그렇게 많은데 친일파 청산을 다룬 영화는 거의 없었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 이슈가 정치적으로 너무 이용되면서 변색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현대사는 거칠게 요약하면 친일파 vs 빨갱이의 대립의 역사입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 이름으로 부르면서 속으로는 표 계산만 한 전통이 45년부터 2023년까지 죽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친일파라는 소재를 택하는 순간 정치적으로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고, 이번 정부는 바로 이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상황인지라 지난 정부도 아닌 현 정부에서 이런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기가 대단히 민감했을 겁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 말기 때 만들어진 영화고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에는 포스트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작은 영화사로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죠.

또 한 가지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청산이 되었어야 할 친일파 문제 해결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 문제입니다. 이미 친일파는 다 죽었죠. 그냥 비유적으로도 실제적으도도 친일파 청산은 역사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살아 있을 때 재판을 받은 적도 없고, 먹고살기 바빠 다들 잊고 살다가 이제 죽고 나서 그 후손들에게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로 책임을 묻기가 대단히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일파라는 불리는 세력이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집단이라는 점을 반대 진영도 인정하는 분위기라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내세운 변명들을 반대 진영도 논리적으로 완전히 반박하지는 못했던 상황이죠.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친일파라고 불리는 진영의 반대편도 이들을 단죄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여론전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정도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관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러 가신 관객들 중에 상당수는 자신을 비롯, 친일파를 개인적으로 단죄했던 주인공이 죄인으로 감옥에 들어가고 마지막 장면에서 범죄와 얽혀 버린 젊은 세대가 아무 생각 없이 할아버지는 나쁜 죄를 저지른 건 맞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한 부분에서 강한 아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30대들은 40대 이상의 세대가 일제와 친일파 문제에 치를 뜨는 정도로까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들 세대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도 세대 간의 온도차의 증거겠죠.

그리고 이 영화는 원작 영화와 최대한 결을 비슷하게 가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일이 발생했는데요. 아무리 친일정권이 들어서도 서울 시내에서 일본 자위대 환영 횅사가 열리며 그들이 전쟁찬양가를 벌일 일어 벌어질 확률은 사실상 0이고요, 전쟁 영웅이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인물이 살아 있을 때 동상을 짓는 일도 우리 사회에서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와 관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현대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원작도 함께 보시면서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감상하시면 어떠실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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