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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Jun 18. 2024

순방


'나라와 도시 따위를 차례로 돌아가며 방문함'


이 몸이 어느 나라나 도시를 향해도 순방이 아닌가. 그러나 그 도시 그 나라의 사람들은 그 자를 몰라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중국 국가주석이 오자 엘리제궁 일대 지하철과 버스 운행을 모두 중단시킨 일을 경험한 적 있다. 그 정부에서 행한 그 일은 많은 시민들 관광객들을 불편케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여 웅성댈 뿐이었다. 저 큰 도로에 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누가 온 거지? 중국 국가주석이라는데? 나는 그때 샹젤리제 주변 어딘가에 있었다.

그때는 시진핑이 중국 주석이 아닐 때였다. 내가 있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했다. 나는 그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우리 대통령이 온다는 게 왜 그리 반가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한국인은 오직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순방은 꼭 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목적이 단순 외교일지라도. 

나는 외교를 위해 떠난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런 일을 파고들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까? 그러면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대답하던 방식이 의례적 인사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강남스타일 알아?"

"응, 알지."

"난 한국에서 왔어."

그때는 전 세계적으로 '강남스타일'이 유행할 때. 에펠탑 앞 광장에서 어느 백인 꼬마가 강남스타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박수 치고 웃던 모습도. 하지만 그는 한국을 잘 모른다고 했다. 

이 나라를 강남부터 배운 자에게 한국이 어떻게 비칠지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는 국적에 큰 관심 없어 했다. 진정 자유 프랑스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난 그 술집에서 한국을 알렸다. 어떤 주는 매일 같이 찾아가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인조차 오지 않는 술집에서, 오직 프랑스인 뿐이던 그 세계에서 난 새로운 길을 찾은 듯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더 신비스럽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일본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일본인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면 다시 생각하게 될 거야 하면서도 나 또한 일본을 좋아했으니. 아프리카와 중동 여러 나라들을 지배했던 프랑스에 매료된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았는가. 우리는 국경의 벽을 허물려 했다.

담배 연기와 같은 낭만일지라도 그들과 나는 함께 그것을 피워올렸다. 내가 추억하는 것은 기댈 곳 찾던 내게 다가온 그들의 삶, 그리고 그속으로 섞이던 내 삶이었다. 

"언제까지 파리에 있을거야?"

곧 떠날 것을 알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없었고, 떠날 날이 되어 나는 말했다. 꼭 돌아와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언론에 실리지 않는 수많은 만남 관계들이 여기저기서 이어지고 끊긴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런 일을 할 때 우리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처럼 기쁜 것이 있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대통령 중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따른 비용을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외교적인 성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만 국가 구성원의 사기 또한 중요한 것이었다. 내가 영국 맨체스터에서 박지성을 보았더라면 그 순간 나는 코커 스파니엘이 되었을지 모른다. 런던에는 지금 손흥민이 있다. 바스티유의 어느 술집 발랑시엔이라는 도시에서 온 남자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발랑시엔에 남태희라는 선수가 있어."

그건 나도 모르던 일이었다. 

"추격자를 정말 재밌게 봤어."

'황해', '설국열차'가 파리에서 개봉하고 거리 곳곳에서 그 포스터들을 마주했을 때의 자긍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삼성과 LG, 현대 KIA의 제품 차들은 너무 흔해 별 감흥이 없을 정도였고. 그런데 도시 외곽 어느 외딴 동네 한구석에서 대우 에스페로를 마주쳤을 때 놀라 입을 벌리고야 만다.

한인마트에서 일하면 북한 외교관의 가족을 마주하기도 한다.

"저 사람 북한 분이에요?"

먼저 일하던 사람이 내게 알려 주었고 나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보름 잘 보내시라요."

정월대보름 콩나물 한 봉지를 사가며 한 문장 던지고 가던 그 여자의 말에 나는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우리는 왜 이곳에 있고 당신과 나는 왜 그런 관계에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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