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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b Jun 21. 2024

희수


아이는 배가 불러왔고 어느 날은 고통스러워했으며 난 가만히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닿아 전해지며 차가웠던 마음이 녹는다. 추운 나날들을 보내던 내게, 그만큼이나 슬퍼하고 힘들어했던 아이는 환한 빛이 보인다고 했다. 드디어 꿈을 이룰 것 같다면서 말이다.

내 아이가 딸을 낳았다. 딸의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고민하던 딸이 행복해 보였지만 그 뒤편 해 들지 않는 방을 알았다. 꼭 잠가 열리지 않기도 했던 것을. 여전히 감춰 두는 걸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은 그곳에 있고 싶지 않은 걸까. 극심한 통증이 찾기 시작할 때 더는 미소를 보이지 못했지만 더 슬퍼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뭘 하고 있을까. 내 아이의 배에 새 생명을 잉태시킨 그는 지금쯤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임신은 자신만이 원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말만 남긴 채로 떠났다. 그 녀석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 딸은 그 아이를 사랑했던 것이 분명하기에.

어느 날 그렇게 물었을 때 딸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사랑은 있지만 운명은 없는 것 같아."

내 눈동자는 흔들렸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놀란 것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평온한 바다처럼, 그 안에서 어떠한 격정이 일었더라도.

"난 그 아이를 사랑했어."

이내 눈물 떨어뜨렸음에도, 그러나 나는 더 할 말 없었다. 그들에게 난 해줄 말 없는 어른이었던 것이다. 우린 왜 그들 삶을 계획했던 것일까.

왜 이름 지으려 하고, 이웃 대학교수 어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던 일은. 빛날 희에 빼어날 수, 그로부터 며칠 후 그 선생에게서 전해 받은 종이 한 장 위에는.

"그런데, 결혼식은 언제 올렸나요?"

한 살, 그리고 두 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 조금씩 크고 자라면 우린 기쁠까. 결혼이란 너무도 무거운 책임이기에. 왜 단둘이 그리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사람들 앞에 약속해야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 열어야 하는 것인가.

대답할 수 없었음에도 끝내 입을 떼어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선생은 흠칫 놀란 듯 했지만, 그럼에도 그 여자는 따스한 미소로 등을 토닥였다.

"그래요, 두 사람의 사랑이 중요한 거지. 결혼이 뭐 중요한가요"

나는 더 힘차게 살 것이라던 그 아이의 말에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때 내 모습은 그랬던 것만 같다. 그곳이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곳이었는지도.

희수와 함께, 그 아이가 낳은 딸처럼 우린. 

"아빠, 부산으로 가고 싶어."

그곳은 늘 분주하지만. 때로 거친 파도가 밀려옴에도. 다시 잔잔한 물결이 일어 우린 그 풍경을 볼 것이라고.


https://youtu.be/nD1p_H3qo_A?si=5rcAaIlyJCerQM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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