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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윤범 Nov 13. 2024

일생을 파비오처럼


 내가 생각하는 이탈리아란. 그 국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세 가지를 꼽으라면 음식, 축구, 그리고 축구에서의 수비다. 패션 자동차도 무척 멋있고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며 몇 번 좌절을 느낀 적 있었다. 그 중 한 번은 AC 밀란의 수비수 알레산드로 네스타에 막히는 맨유 공격수들을 볼 때였고. 공격수들이 그의 앞에서 제대로 돌아서지도 못하는 걸 보며 저게 무서운 수비수의 힘이구나 느꼈는데.

 그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최고의 이탈리아 수비수 중 하나라면 역시 칸나바로. 그는 보다 터프한 유형의 수비수였는데 내겐 그저 멋있었던 선수.

 축구는 미드필더가 중요하겠지만 현대로 오며 수비수의 역할이 점점 커진다. 공격수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젠 수비수도 볼을 잘 다뤄야 하고 골도 넣어야 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축구는 언제나 볼을 차고 골을 넣어야 하는 스포츠. 이기기 위한 전술도 필요하고 감독의 용병술 또한 필요하며.

 그런데 이젠 그게 중요하지 않다. 축구는 거대한 산업이 됐고 문화적으로도 이 스포츠의 영향력이 무척 커졌다. 오죽하면 난 옷 살 때마다 선수 영입하듯 옷을 고를까.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뭐고 또 무얼 보강해야 하나 하면서 말이다.

 거리에는 멋있는 사람이 많고 비싼 옷 입는 사람도 많지만 그런 거 없이도 그냥 커보이는 사람이 있다. 파비오 형 쯤 되면 어디서도 기죽지 않겠지. 그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한 적 있는 전설적 수비수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수비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그게 야구든 축구든 난 공격력이 떨어져 그나마 그걸 내세우는 수준이었다. 자신감이 없었다고 할까. 그런데 왜 수비는 자신 있었던 거지?

 사실 공격도 수비도 모두 중요한 건 공격성 그리고 참을성이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실은 기회란 게 흔했다. 그걸 기회로 못 보는 게 함정이지.

 기회 놓치고 후회하면 뭐 하나, 그 기회 또 놓치느니 새로 한 번 만드는 게 낫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함정에 걸려들고.

 축구란 그랬다. 그게 정말 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한 실수들, 그 실수가 상대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고.

 그게 함정이란 생각을 했다.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 잊는다. 그러나 잊지 못하는 건 사람들이다. 내 머릿속에 삭제 기능이 있다면 그 모든 언어들을 지우고만 싶다. 잘못 전달된 패스 하나에 왜 죄책마저 짊어져야 하나. 그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공격수들은 한 경기 실수를 수십 번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골 하나로 용서받는다. 수비수를 압박하지 못한 책임, 뒤로 돌아 뛰지 못한 책임, 골키퍼 시선을 흐트러트리지 못한 책임 그 모든 실수들을 스스로 만회한다. 공격수들은 골을 넣어야 한다.

 수비수는 그런 공격수를 막아야 하는데 이젠 골까지 넣으라니. 지금 바뀐 흐름이라면 그런 것이다. 패스들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오고 가며 전술적 완성도는 완벽에 가까워지니. 여기서 수비수 하나가 나타나 슛을 때리면 상대는 혼란스러워진다. 너무 간단한 이론이지만 위험 부담이 큰 전술일지도.

 그러는 동안 감독은 뭐 하나? 선수들이 원망하는 단 하나의 인물이 있다면 그일 것이다. 누군 자기를 적극적으로 써줘 은인으로 생각하는 등 관계가 복잡해진다. 그는 전술을 짜고 선수들을 요소요소에 쓰며.

 지금 그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 중 하나라면 언론 대응일지도. 클럽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그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안을 들여다보려는 자들, 그들을 상대하는 일. 그건 쉽지 않다. 그런 일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난 이탈리아 수비수들을 보며 배웠다. 수비는 공격적으로 해야 하고 상대가 움직이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배웠다. 손을 써야 하는 것도 배웠?

 또 라자냐가 피자나 파스타보다 매력적인 음식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 번 해 볼 수 있었고.

 파비오 형은 어떻게 그런 상까지 받을 수 있었을까. 나폴리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 같다. 멋진 사람들과 멋진 언어들, 그리고 음식들.

 그런 곳에 살면서도 왜 위험한 일을 해야 했던 걸까. 김민재는 왜 한 번씩 공을 몰고 올라가기까지 하며 위험성을 키우나. 비니시우스를 막으려 한 발 먼저 움직이려다 토니 크로스 패스 한 방에 당한 건. 그건 걔들이 너무 잘하는 애들이란 것도 있으니 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이 세계에서 최고가 되려면 마피아처럼 굴어야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자를 위협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건 모든 죄 지을 자들이 써야 했던 악행의 예고서일지 몰랐다.


https://youtu.be/-CVvWNwjU48?si=HL14vGE2glxCitz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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