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가문에 발을 들인 첫 번째 외부 디자이너. 그 이름은 라프 시몬스다.
돈 없던 시절에도 옷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던 난. 폰 갤러리에 폴더 하나를 만들어 이 옷 저 옷 사진을 저장해놓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도를 두는 정책을 폈는데. 돈 주고 사지 않는다고 무작정 수집하지는 않았는데. 돈이 있다는 상상 속이었으니. 그때 난 꿈의 시절에 있었다.
그 꿈을 아주 조금은 이룬 지금. 그러니까 알렉산더 맥퀸의 높은 스니커즈 한 켤레를 품고 최고라 할 만한 검은 코트 한 벌을 갖고 실은 그 정도가 꿈의 전부일지 모르지만. 실수라 생각하는 건 별 쓸모 없는 옷 신발도 이리저리 사 모았다는 것이다. 아직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그 시절 알게 된 혹은 관심 가지게 된 디자이너는 마틴 로즈나 안태옥, 그리고 아더에러 같은 브랜드였다. 한국 브랜드인지 알고 더 관심을 가진 K-way는 알고 보니 역사와 전통의 프랑스 패션 브랜드였지만. 아더에러가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브랜드 팀이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잘 만들어진 검은 코트 한 벌 수집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럭셔리 브랜드 코트들 중 심혈을 기울여 한 벌 고르면 되는 것이었으니. 가장 어려운 일은 파카 한 벌을 수집하는 일이었는데.
패딩 혹은 파카는 절대로 예쁠 수 없는 옷이라 결론지었다. 인간 몸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 선을 살리는 게 진정 멋있는 일이라면. 그러면 꼭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들이 있기에. 자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되레 화내는 일처럼. 먼저 맞지 않으려 먼저 치는 인간들이 있듯. 난 사람들이 모두 청개구리라 생각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부피 또는 라인의 옷을 만들어 내보여도 사람들은 결국 받아들이고 말 것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거꾸로 더 크고 이상한 선을 그린 옷을 내보이는 게 아니었나.
난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예를 들면 발렌시아가 신발이 인기 끌었던 건 여전히 의문인 것이다. 헨리 코튼 아웃렛 매장에 갔다 디자이너 안태옥과 함께 작업한 파카 헨리 코튼 이름으로 만든 파카 두 벌을 놓고 고민할 때 판매원이 저 옷은 좀 과하다 했듯, 그래서 속으로 웃었던 것처럼.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그런 신을 신을 만큼 부자인가 난 아직 알지 못하겠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 아직 느껴 이해한 적 없으니까.
찾고 또 찾다 그마저도 완전하다 할 수는 없는 옷 한 벌을 콕 짚게 되는데 템플라라는 브랜드의 옷이었다. Templa, 호주의 패션 브랜드였다. 그런데 X Raf Simons라 돼 있었다. 디올 디렉터 직을 거친 그를 난 모를 리 없었는데.
모를 수도 있지만. 다시 그 시절 그 순간을 쫓는다. 코오롱 헨리코튼과 안태옥의 브랜드 스펙테이터가 함께 만든 파카 한 벌을 살 계획을 하며 그래도 더 낫고 더 싼 게 있나 한 번 더 보게 되는데. 역시 패딩은 답이 없다로.
라프 시몬스 패션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 한 개가 있다면 하나는 저항일 것이다. 그가 도시 게릴라 테러리스트 모습 일부를 자기 패션 일부로 만든 것은 유명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복면 같은 걸 뒤집어쓰는 일인데 프라다에서도 이제 그 비슷한 걸 선보인다. 내가 동경하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미우치아 프라다 그 여자의 선택을 받은 단 한 명의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언젠가 어느 날엔 2, 3, 4, 5, 6, 7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그 파카를 살 순 없다. 그 정도로 시간 쏟아부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 옷은 잘 없다. 디자이너 안태옥을 좋아하는 건 옷도 옷이지만 글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블로그에 옷의 제작 과정이나 의도 등을 꽤 자세히 글로 적어 옮기는데 그걸 보는 기쁨이 있다. 그리고 옷을 본다. 더 파고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멈추는 건 그런 그마저도 자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말하는 라프 시몬스 같은 자가 만든 옷을 더 입고 싶기에.
그는 지금 Raf Simons 06SS 'Icarus Surquit' Parachute Bomber Jacket을 천 칠백 오십만원에 내놓았는데. 먼저 인스타에 그 재킷 사진을 올리자 외국 바이어들이 수도 없는 편지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오래도록 리바이스를 좋아해 그 브랜드를 패러디하듯 올비스라는 작은 브랜드를 내놨는데 김앤장에서 연락이 왔다는, 리바이스는 특허 깡패라며 조금만 비슷한 걸 해도 소송을 건다는 그런 재밌을 수 없는 재밌는 이야기도. 리바이스 코리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그 흥미진진한 사실 실화를.
안 살 수도 있지만 올해도 안태옥 디자이너 옷 한 벌을 살 꿈을 꾼다. 덕분에 헨리 코튼에 대한 호감이 커졌고 안태옥이라는 이름도 더 널리 알려질 테지만. 아닐 수도 있고.
얼마 전 서울에 가서 직접 매장에 갔을 때 그 추억을. 이젠 인터넷에서는 팔지 않는 그 독수리 벨트가 지워지지 않는 건 왜인지. 올겨울에도 올리브 드랩 서비스 코트를 입고 걷기를. 그러나 더 따뜻하기 위한 희망이 끝내 자신을 그 거위털 속에 집어넣으려 한다.
https://youtu.be/sCz5y84dwuA?si=bmihX7ozY-lsz0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