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Jun 24. 2024

손이 발이 되도록

 내 글의 인기가 전환점을 맞은 것은 약 세 달 전쯤이다. 그전까지는 몇몇 친절한 구독자가 가끔 들러서 잘 읽고 간다는 흔적을 남겨줄 뿐 전혀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는 날이 오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 밤낮으로 매진했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소외된 작가의 삶은 우울했다.


 더 좋은 글, 더 재미있는 글, 더 감동적인 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 틈바구니에 발을 들여놓기에는 실력이나 재능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적절한 홍보도 없이 그저 내 글을 찾아봐 주길 마냥 기다리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그런데 우연히 쓴 글이 마침내 대박이 난 것이다. 달콤한 인기의 맛에 중독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보잘것없는 무명작가가 현재 최고의 진행자가 출연하는 토크쇼에도 나갔으니 말 다했지. 길에서도 알아봐 주는 것은 물론이고 간혹 사인을 해달라거나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받는다.


 평소에 투명 인간 취급하던 가족들의 태도도 180도 변했고, 만나자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만 대던 친구들은 자리를 마련했으니 바쁘지 않다면 꼭 와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한다.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있다. 대작가다운 풍모를 풍기기 위해서 너그럽게.


 딱히 글의 소재가 바뀌거나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쓰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 비록 집필하는데 두 세배 정도 더 걸리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니 괜찮다. 게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니까 오히려 편한 점도 많다.


 이쯤 읽었으면 세 달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궁금해할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뭐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고 그냥 흔히 벌어지는 사소한 사고였다. 만취한 상태로 글을 쓰다가 진도가 나가지 않자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욱하는 기분에 키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손가락뼈에 금이 갔다.


 깁스를 한 손으로는 키보드를 칠 수 없었고, 펜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지금 와서 떠올려봐도 정말 어이없는 짓이었지만 그게 바로 신의 한 수였다. 집에서 쫓겨나듯 매일 방문하는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이 내 모습을 보더니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잘 알고 있는 카페 주인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은 내 주변을 연신 맴돌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으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발로 글을 쓰는 작가’가 내 필명이 되었고, 그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내 글은 급격하게 유명세를 탔다.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는 중이다. 물들어 온 김에 배에 성능 좋은 모터를 달았다.


 나도 바뀌지 않았고, 내 글도 바뀌지 않았음에도 세상이 나를 다르게 바라봤다. 그저 발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을 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그거면 됐다. 이제는 발가락에 펜을 끼우고 종이에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곧 있을 출판 기념회에서 선보일 예정이라. 손가락의 뼈는 이미 다 아물었지만 깁스를 풀 생각은 없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이런 인생 역전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아...... 발이 저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장 난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