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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06. 2024

Fragile

 싸늘하게 식어 있는 내면과는 달리 한여름의 낮은 세상을 구워버릴 의도인지 그 열기를 더하고 또 더했다. 속마음을 들키고 싶아 불투명을 유지하려 했지만 덜그럭 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각진 쓸쓸함은 주변에 파동을 일으킨다.


 냉정과 열정 사이 그 명확한 경계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미끌미끌하고 축축한 피부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이 부담스럽다. 내가 가진 것을 탐하려는 상대방은 찝찝하지도 않은지 연신 나를 강하게 움켜쥐기도 하고 뜨거운 입술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럴 때면 나만의 가치가 훼손되고, 그에 따라 점점 자존심을 잃어가며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 같아 잘 담아뒀던 냉정함을 잃어버린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몸 곳곳을 훑으며 떨어지던 땀이 발밑에 고이기 시작한다. 내가 있었다는 흔적을 고작 이런 식으로 밖에 남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나는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래봤자 정해진 운명은 피하지 못한다. 나의 발자국은 둥글게 둥글게 올림픽의 오륜기처럼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스며들며, 타인의 입술이 가져다주는 거부할 수 없는 강박에 굴복할 때가 되면 나는 모든 것을 비울 준비를 하게 된다. 미친 듯 달궈진 세상을 향해 잠시나마 반항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내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뜨거운 시절이 끝나고 혹시 차가운 시기가 도래한다면 나는 또 그에 맞는 역할에 충실하게 되겠지.


 가끔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허무한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도 않으며 제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게 썩 부럽지는 않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불편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좋다. 언제든지 살을 갈라 상처를 만들고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는 무기로 변할 수 있으니 그렇겠지만. 


 이제 잠시 쉬어야 할 시간이다. 정해진 형태가 없는 것을 내 마음의 모습으로 담아내는 동안 더러워진 몸을 이제는 정화해야 한다. 오롯이 내가 되어 안과 밖이 투명해지기 전까지 아마도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몸에는 희미하게 잔향(殘香)이 남겠지만 그건 추억의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작은 얼음마저 드디어 녹아 사라지자 손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동시에 카페에 'Antifragile'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역시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야. 그런데 이 잔은 주문한 곳에 반납하면 되는 건가? 여기 살짝 이가 나갔다고 이야기해 줘야겠어. 이제 그만 버려야 할 것 같다고.”


 마지막 남은 냉기를 타고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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