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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Jul 25. 2024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냉장고 지박령 고양이

네 번째 계절이다. 지난해 가을, 우리 집의 막내가 된 아기고양이는 겨울과 봄을 보내고 여름을 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웃음이 끊이질 않던 밤들과 몇 번의 가슴이 덜컹- 했던 순간들, 생각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질 만큼 위안이 되었던 시간들이, 함께 해온 계절의 두께만큼 켜켜이 쌓였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 F인 집사의 시각에서 돌아본 세 계절.


루루도 비슷하려나? 그 속내를 알 수 없지만 네 번째 계절을 맞는 동안 자기의 영역인 집구석구석과 집사들, 집고양이가 사는 법 등에 대한 정보들을 촘촘히 쌓아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시시각각으로 구미가 당기는 식빵 굽기 최적의 장소를 찾아 지그 놓은 문이나 머리로 들이 밀고 들어가는 것쯤은 루루에게 식은 죽 먹기 되었다. 안전한 이동 경로를 탐구하여 비교적 높은 장소에도 가뿐하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고, 어린이 집사나 아빠 집사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어떻게 아는지 그 시간 즈음 계단 앞에 자리 잡아 무심하게 식빵을 구우며 집사들의 귀가를 반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인가. 가전들의 쓰임에 대해서도 깨달아 에어컨 밑에 자리를 잡 흡족한 표정으로 더위를 날리거나, 냠냠이들을 보관하는 냉장고를 인지하여 무궁무진한 고양이의 학습력에 대해 감탄하게 한다. 특히 자신의 간식인 츄르와 까까를 원하는 타이밍마다 냉장고로 집사를 불러와 본인의 의사를 냥냥하게 밝혀대는 모습은 참 귀엽지만 그 횟수가 잦아져 참 곤란한 요즘이다.


"냐~~옹, (집사, 나 지금 츄르 마려워요.) 냐옹. (어서 주세요.)"


"야옹, (집사, 출출한데) 야옹.(까까 세 개만 주세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집사를 호출하여 냉장고 한 번, 집사 눈 한 번, 다시 냉장고 한 번, 집사 눈 한 번 바라보며 주야불식으로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는 루루. 냉장고의 쓰임과 더불어 집사의 모질지 못한 성정까지도 잘 간파하여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을 장착, 촉촉하게 읍소한다. 건강 상의 이유로 하루 할댱량을 지키고 있지만 이 눈을 마주하고는 방어력 만렙의 수비수도 못 당해낼 것, 도저히 안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문제다. 마음 약한 집사는 습식 사료를 대체해 주거나 유산균이나 까까를 쪼개어 주는 등 무가를 주게 된다. 어찌 되었든 루루 입장에선 콩고물이 확실히 떨어지니 자꾸 자꾸만 냉장고 앞에 집사를 부르고, 이러니 루루는 점점 냉장고가 좋아질 수밖에.



"뭐야, 루루 냉장고 지박령이야 뭐야?ㅋㅋㅋㅋ또 저기 있어?"


급기야 루루는 냉장고 앞에서 자고, 냉장고 앞에서 놀고, 냉장고 앞에서 먹는, 냉장고 지박령이 되어 있다. 얼마 전 냉장고의 영면을 목도한 바 있는 루루가 기꺼이 우리 가족의 건강한 식생활을 책임지는 냉장고 지박령이 되려는 것일까. 루루바라기 집사는 또 주특기인 꿈보다 해몽의 자의적 해석을 하며 조그만 고양이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에서 유영 중.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함께 할 수많은 계절 동안 더 속속들이 서로를 알아가며 행복할 것을 기대한다. 서로에 대해 알았다는 것이 살이 찌면서 가끔 코를 골거나 꼭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난 뒤에 일을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웃고 또 그 사소함이 그리워질 것을 안다. 함께 하는 네 번째 계절을 맞아 서로에 대해 알아 가며 스며들고 있는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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