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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Jul 17. 2024

밥 잘 먹여주는 예쁜 집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는 못 살아도,


아무래도 우리 집에는 '눈'과 뭐가 있다. 나의 피로함은 여지없이 눈으로 드러났으니,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래끼가 올라와 고생을 하곤 했다. 첫 아이 역시 이유식 알레르기 반응이 눈두덩이로 와 알레르기 음식을 눈두덩이 반응으로  알 수 있었고, 자라면서는 엄마의 몹쓸 유전자로 인해 눈다래끼로 고통받고 있다. 년에 한 번은 다래끼 째는 수술을 받는 십 대라 이제는 덤덤하게 수술대에 오르는 모습이 짠하기까지 하다. 둘째는 그나마 괜찮아 다행이지만 이제 가슴으로 낳은 루루까지 약한 눈의 숙명을 짊어지는 것인가.


루루의 오른쪽 눈은 태생에 약해 스트레스 반응이 눈으로 오곤 했다. 꽃선물을 깜빡하고 집안에 들인 날이나, 낯선 손님의 방문으로 자기 영역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루루는 눈이 빨갛게 붓거나 눈곱이 덩이째 흘러 눈을 뜨기 어려워한다. 


지난 연주회의 꽃다발들을 꽁꽁 숨겨둔다고 화장실에 잘 두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이었나, 루루의 눈이 말썽이다. 급기야 건강하 왼쪽 눈까지 붓고 눈을 잘 뜨지 못하니 철렁하는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시더니, 다행스럽게 상처가 생긴 것이 아니고 결막염이 의심된다고 말씀하셨다. 5일 치 항생제 먹는 약과 넣은 안약 2개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는 길, 축 쳐져 있는 루루의 모습을 보니 역시 건강이 최고지 싶다. 건강 삶의 목표로 살고 싶지는 않지만, 건강을 잃고는 삶이 흔들릴 수 있기에 가벼이 생각할 수 다. 이제 회복을 위해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잘 쉬고, 잘 잘 일만이 남았다. 문제는 쓴 약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고양이는  생존을 위해 쓴맛을 느끼는 감각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470개의 미뢰를 가져 9000개인 사람에 비해 굉장히 적은 편이고, 단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상한 음식을 판별할 수 있도록 상한 고기에 포함되어 있는 트립토판이나 가르기닌 같은 특정 아미노산의 쓴맛에 예민하게 반응한단다. 약을 잘 먹어주어야 빨리 쾌차할 수 있을 터인데, 예민보스인 루루가 쓴맛을 잘 못 느낄 것 같진 않다?


병원에서 판매하는 투약보조제 습식캔과 츄르의 도움을 받고자 야심 차게 구매해 왔다. 역시나 루루는 습식캔의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다가오더니만 몇 번 할짝할짝, 이내 기가 막히게 습식캔 속 약의 쓴맛을 알아차린다. 뒤도 안 돌아보고 팽~ 자리를 떠나는 루루. 안돼... 루루야... 약을 먹어야 눈이 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묘책을 고심하다 떠먹여 주기 권법을 써보기로 결정다. 냠냠 잘 먹다가 약이 있는 부분에서 도리질을 하며 팽!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뜬다. 약해약해, 어떤 전술이 좋을까.... 


이번에는 미각 교란 작전에 돌입해 보기로 한다. 루루가 좋아하는 냥치츄르를 하나 준비해, 투약보조 습식캔에 약을 섞어 다가간다. 이미 냥치츄르를 보고 고릉고릉고르릉 골골송 시동을 걸고 다가와 등을 동글게 말아 꼬리로 툭툭 치며 애정공세를 퍼붓는 녀석. 츄르 한 입을 먹이고 약을 섞은 습식을 한 숟가락 준다. 쓴맛이 느껴지기 무섭게 좋아하는 냥치츄르를 쭉 짜서 주니 냠냠 맛있게 잘 먹는다.


(츄르) 맛있다, 음냥음냥,

(약탄숟가락) 냠냠 헉 쓴 거 같은데?

(츄르) 음냐음냐 정말 맛있다.

(약탄밥숟가락) 냠냠 헉 쓴 거 같은데?

(^ ^ ) 반복 ( ^ ^) 


미각교란작전이 통했다. 다행이다. 습식캔을 반으로 갈라 한쪽은 약을 섞고 한쪽은 그대로 두어 한 숟갈 한 숟갈 교차로 밥을 먹이고 있다. 밥을 일일이 떠먹여 주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약을 잘 복용해서 눈이 다시 건강해지기한다면야 이런 번거로움쯤은 집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저녁 약 한 봉을 남겨 둔 상태. 하루 두 번 먹는 약과 하루 세 번 넣는 안약 덕에 눈곱도 깨끗하고 눈도 잘 뜬다.


뒤늦게 이번 결막염약복용 작전의 부작용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루루가 스틱형 가루 제품을 보기만 해도 흥분한다는 것이다. 맛난 밥을 잘 먹여주는 (루루피셜)예쁜 집사를 응시하다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먹으려 믹스 스틱을 부시럭, 꺼내면 루루가 골골송부르며 다가온다. 아마도 하루 한 포의 스틱형 츄르를 즐기고 있는 루루가 모든 스틱형 제품들을 츄르로 믿고 싶은 것이겠지?


아이들 픽업에 한 잔씩 들려 마시게 할 미숫가루 제조하려 스틱형 제품을 뜯을 참에도 부담스럽게 골골송을 부르며 다가오는 루루. 마음 같아선 별도 달도 따다 주고 싶어, 루루가 행복하다면야 집사가 뭘 못 해주겠니. 근데 루루야 츄르도 적당히 먹어야 건강하대...


루루야, 흥분하지마~ 츄르 아니야, 언니 오빠 미숫가루라규


집사가 한 숟갈 한 숟갈 먹여주는 (약 탄)밥도 배 뻥하게 잘 드셨겠다 안약도 잘 넣었겠다 눈도 잘 보이고 잘 떠지겠다 루루는 행복한 오후 낮잠 중이다. 요즘 자다가 잠꼬대를 하곤 하는데 그 모습이 집사는 그리 귀여울 수가 없다. 무서운 꿈을 꾸는 건지, 재미난 꿈을 꾸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다가가 쓰담쓰담해 주면 다시 쿨쿨 자는 녀석.


루루를 사랑하고 아끼는 내 마음이 고작 이런 것들이다. 불편해 보이면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때맞춰 먹이고, 심심하다고 하면 낚싯대를 흔들어주고, 무서운 꿈을 꾸고 있을 땐 쓰담쓰담하며 집사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는. 고작 이런 것들에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루루가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밥 잘 먹여주는 예쁜(다시 한번 강조, 루루피셜) 집사가 있는 행복한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존재로 항시 행복한 집사의 행복을 나누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TV동물농장성우아저씨버젼) 루루야,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잠꼬대는 "츄르 쥬떼여~"인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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