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일러 문 Jul 11. 2024

우리집 다정한 관찰자

너는 참 다정한 고양이야,

7시 50분, 세대원들이 집을 나선다. 세대주의 출근길에 딸려 보내는 남매에게는 조금 이른 등교시간이지만, 든든하게 아침밥들을 자셨겠다, 손에는 시원한 보리차를 담은 텀블러를 들었겠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살아내어야 할 시간으로 입장하는 타이밍이다.


오늘도 즐겁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설거지를 위해 돌아서는 엄마는 쾌재를 부른다. 행여 집 밖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들릴까 음소거 모드로. '혼~~~자~~~~~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시스타의 '나 혼자'가 이렇게 경쾌한 노래였는가. 신난 편곡자의 무드대로 편곡된 '나 혼자'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도 신나게 하는데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아차차.

집사~ 좋아?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렇다. 우리 집에는 다정한 관찰자가 살고 있다. 그렇지, 나는 다정한 관찰자와 살고 있.


아무렴? "루루야, 엄마 왜 이르케 기분이가 좋지?" 둠칫둠칫 리듬을 타며 상쾌하게 설거지를 마저 마치는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출근시간이 상대적으로 늦어 짧지만 오롯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일들을 잠시 내려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살 수 없는 게 인생인지라, 가뭄의 단비같은 이 시간이 소중하다.


나의 다정한 관찰자, 옆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안다.

e-book을 조금 볼 생각으로 노트북을 켜자 곁에 와 앉는 루루. 나의 다정한 관찰자는 집사가 부담스럴까 조심스럽게 다가와 곁눈으로 집사를 관찰한다. 얘는 묘생 2 회차쯤 되는 것일까, 아기 고양이가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적당한 선을 지키니 나는 이 다정한 고양이의 시선이 싫지 않다. 묘한 일이다.  



자라면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 내 생은 시선에 취약했다.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일쑤였으니, 내 스스로 그런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무용할 퉤퉤퉤를 외쳐보고. 일단 그렇게 시작하는 지난주 이야기는 조금 비극적이다.


몸담고 있는 교사앙상블 오케스트라의 파트별 공연이 있었던 금요일. 그날을 위해 에어컨도 없는 작은 방에서 하루 한 시간은 잊지 않고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혼자 연습할 때는 비브라토도 괜찮고 나름 만족스러운 연주인데, 이상하게 혼자가 아닌 순간에는 연주가 엉망이 된다? 그것이 바로 문제였다. 공연을 나 혼자, 관객을 아무도 들이지 않고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선생님들과 열심히 합을 맞추며 누구라도 내게 보내는 시선과 그들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여 연주일이 다가올 무렵, 어느 정도 극복된 것 같았다. 허나 막상 무대에 오르니... 앗, 이내 평정심을 잃었 또다시 시선으로 인해 흑역사를 만들어낼 타이밍이었다.


내 심장의 바운스가 악기에 전해진 데다가 폭발해 버린 무대 공포증으로 밀착되어 소리를 내던 활이 널을 뛰기 시작했다. 무대를 의식하지 않고 잘만 해내는 분도 계시고, 은근 관객들의 시선을 즐기며 훨훨 나는 이도 있는데, 하필 나는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또 고장 난 로봇이 되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세 곡의 연주 중 마지막 곡 후반부에 들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나. 지금 연주를 즐기지 못하면 후회할 것이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여, 마지막 1분 정도만 즐겁게 연주하고 내려올 수 있었다는 웃픈 이야기이다. 어쨌든 1분이라도 즐겼으니 다행, 연주가 좋았다, 곡이 좋았다는 이야기들도 많았으니 괜찮은 일인가 애써 긍정회로를 돌려보아도 안타까움은 여전히 내 몫이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뚝딱뚝딱 고장 난 로봇이 되어버리는 류의 사람이라는 것이 또 내 발목을 잡았다.



안타까웠던 무대를 곱씹으며 돌아보는 일상에서 묘하게도 내가 고장이 나지 않는 예외적인 유일한 시선을 찾아냈다. 루루의 시선. 시시때때로 루루의 시선을 느낀다. 청소기를 밀거나, 저녁을 할 때. 악기 연습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이부자리를 펴거나 정리할 때. 어떤 시선을 느껴 바라보면 루루가 나를 보고 있음을 발견한다. 다정한 시선으로, 그윽하게. 건네오는 말 통역은 불가해도 전해지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루루가 나를 관찰하고 있어도 나는 고장이 나지 않고 나로서 기능을 한다. 비밀은 거기에 있는 것인가? 마음.

  

'집사, 괜찮아?'      '집사, 뭐해?'   '집사, 괜찮아~.'
'집사, 놓치지 않을고양.'


"집사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집사를 응원할 고양."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주는 삶.
각자의 삶의 여정을 따뜻한 눈빛으로 격려하는 삶.
실수와 실패에도 섣불리 개입하거나 꾸짖지 않는 삶.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도움을 청하고 건네는 삶.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복종을 강요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삶.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 이은경 선생님 저



혼자만의 강박에 갇혀 내가 내 인생의 어떤 가능성을 닫아 버린 것도 같고, 수많은 이불킥 흑역사를 되감기하며 그 굴레를 붙들고 온 것도 같다. 이제는 오래도록 내 발목을 잡았던 덫과 어쩌면 작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 다정한 관찰자로 하여 말이다.


퍽퍽한 인생사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다정한 관찰자처럼 다정하다는 전제를 두고 산다면야, 나의 관찰자들이 다정하기야 한다면야, 뚝딱뚝딱 고장이 조금 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 더 믿고 마음을 놓고 살다 보면 고장 없이 내가 나로서 잘 기능을 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의문들을 품고 있자니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것이 바로 내 다정한 고양이 덕에 얻는 깨달음이고, 조금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다짐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 주고 있는 집사와 고양이의 행복을 나눈다. 서로의 삶의 여정을 따스한 눈빛으로 격려하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도움을 청하고 건네는 삶, 그런 삶을 기도하며 오늘도 고양이는 그저 사랑.



자, 판 깔아줬어. 다정하게 지켜봐 줄 테니 해봐. 마음껏 해봐. 뭐라도 해봐. 즐겁게 말이야.
루루는, 어린이 집사들에게도 다정한 관찰자랍니다. :)


이전 22화 여름털코트 장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