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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Jul 04. 2024

여름털코트 장만

내 고양이의 여름맞이

여름의 신록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짙어간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푸르름과는 다르게. 여름의 태양과 바람, 물기를 머금고 폭풍성장을 하며 생의 절정 같은 푸르름에 가까워지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생명을 가진 것들도 달구어져 여름의 신록과 함께 더 짙어다. 도드라져 보이는 눈가의 기미도 그러하고, 내 고양이의 잿빛 털들도 무르익는 고양이의 청춘만큼이나 짙어졌다.


낮 시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루루의 용안을 볼 수가 없어 집사의 아쉬운 마음을 달랠 방도가 없다. 용안을 뵈러 굳이 몸을 숙여 루루의 숨숨집 의자 밑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수밖에. 여름의 열기에 녹초가 되어 있는 루루가 집사의 등장에 꾸움뻑 눈맞춤을 한다. 루루의 털을 쓰다듬자 털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뜨끈뜨끈한 루루의 체온. 우리 루루 되게 덥겠다.


가뜩이나 열이 많아 세 계절은 맨발과 민소매 차림으로 헐벗고 사는 나는 무더운 여름이 달갑지 않다. 하물며 온몸에 털옷을 입고 있는 우리 루루는 오죽할까... 날은 점점 뜨거워져 기온은 더 오를 것이고, 낮시간 집안 온도는 이미 30도를 웃돈다. 이러다간 우리 루루가 익어버릴 것 같 걱정다. 결심이 필요하다.





개언니로 살던 스물 초반의 시절에는 으레 강아지미용을 맡겼더랬다. 털이 자라 눈을 가리다 보니 당연히 미용을 맡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장군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몇 달에 한 번씩 장군이는 제 털을 잃었었다. 미용이 고역이었던 것인지, 털을 잃은 것이 스트레스였던 것인지... 미용을 다녀와서 한동안 내 베개에  웅크리고 앉아 세월을 관조하던 장군이의 모습은 십수 년이 지나도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 기분을 풀어줄 요량으로 맛난 간식 조공을 바치고 산책을 다녀와도 기분이 썩 나아지질 않아 미용을 앞두고는 긴장을 하곤 했던 기억.



고양이 미용이 강아지 미용만큼 대중화되어 있지는 않아 더 고민이 되었다. 굳이 고양이 미용은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고, 미용이 가져다 줄 일상이 과연 미용의 스트레스와 맞바꿀만한 것인지, 그리고 과연 그것을 루루가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었다. 루루야 덥지? 털코트 벗으면 시원할까? 미용이 엄청 스트레스일까? 루루야, 네가 원하는 것을 얘기 좀 해줘 봐...


무마취 고양이 미용하는 곳을 찾아 상담을 받았다. 그마저도 두 곳 밖에 없어 선택지도 없다. 사장님께서 친절하려 깊으셨기에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지만, 음에 걸리는 부분이 몇 있었으니,,, 미용 경험이 전무하여 루루가 잘 견딜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 미용 시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없기에 낯선 공간에 루루를 1시간 반 정도 혼자 두어야 하는 점, 냥이의 공격성에 따라 도중에 미용이 중단될 수도 다는 . 고민을 하다 셀프 미용에 도전하는 으로 마음을 굳혔다.


머리숱 부자로 태어난 아들 덕에 바리깡 미용 경력 십 년차. 연년생 애 둘을 안고 업어 미용실을 다니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와 용기 필요로 했다. 아들 녀석의 머리카락은 왜 그리도 빨리 자라는지... 달의 한 번 미용도 사치였던 시절 덕분에, 스타일은 보장 못하더라도 덥수룩을 정리할 정도의 이발실력을 갖추었다. 그 실력을 루루에게도 발휘할 때가 온 것인가.


아들의 이발기는 소리가 요란하여 청각이 예민한 루루에게는 적합치 않아 조용한 미용기기를 검색했다. 이발과 동시에 털을 흡입하는 기능과 함께, 털 빗기와 발톱 정리까지 여러 모로 쓸모를 가진 기기를 발견했다. 비용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1회 미용이 8만 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여 두어 번만 해도 본전을 뽑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었다.


빛의 속도로 배송되어 다음 날 도착한 미용 기기를 집구석에 꺼내어 두니, 경계하던 낯빛이 차차 관심으로 바뀐다. 기기 근처에서 까까를 주기도 고, 한 번씩 전원을 켜서 소리도 들려주고, 미용기기에 빗 툴을 달아 털을 빗겨 주어도 거부하지 않는다? 기기가 작동할 때의 소리가 에어컨 운전의 시작 시 들리는 소음에 묻힐 정도라 최종적으로 합격! 얼굴과 배는 예민한 부분이니 미용하지 않기로 하고. 어느 만큼 어떤 방향으로 이발기를 대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딸내미가 일찍 귀가하는 요일을 디데이로 정해 루루가 천천히 미용에 스며들도록 곡차곡 빌드업을 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끝내야 하는 만큼 몇 날을 더 상상미용을 한다. 완벽한 빌드업이었다. 



드디어 디데이. 집사들의 귀가가 반가운 루루는 문소리에 버선발로 냐~~옹, 마중을 나온다. 에어컨을 켜자 활기를 찾는 녀석, 루루의 최애 집사인 언니가 최애 간식인 냥치를 꺼내니 폭풍애교가 펼쳐진다. 엄마집사는 미용기기의 전원을 켜 슬쩍 등에 갖다 댄다. 루루의 등에 순식간에 오솔길이 생기면서 잘림과 동시에 후루룩 기기로 빨려 들어가는 털. 우아, 대박! 루루는 츄르에 정신이 팔려 제 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춥고 쌀쌀한 날동안 루를 따뜻하게 지켜주던 털 친구들도 사명을 다했기에 아름다운 이별행을 떠난다. 루루가 보 가볍고 시원한 이 기대가 되면서, 처음 뵙는 등때기가 새하얀 낯선 고양이가 귀여워 웃음이 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털, 네가 그렇다.


그렇게 여름털코트를 장만한 루루는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고양이들은 미용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로 오버그루밍을 하기도 한다던데, 용으로 인한 스트레스 징후 없이 오히려 어느 정도 더위를 떨쳐 활기를 되찾은 모습에 집사는 안심한다. 아마도 자기 시야의 제 몸이 그대로인 까닭에, 친애하는 언니집사와 맛난 츄르 타임을 가졌던 까닭에, 등이 요상하게 시원해져 기분이가 괜찮아진 등의 여러 까닭으로, 그날 일어 일은 루루가 감내할 수 있는 괜찮은 일이었던 것으로 짐작해 본다. 아니면 자신에게 일어난, 그날의 진실을 설마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낮 시간에 줄곧 의자 밑 숨숨집에서 나올 생각을 않던 루루 슬며시 곁에 와 있다. 냐옹 냐옹, 꾸륵꾸륵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을 건네오다 벌러덩 누워 집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루루에게 다가가 쓰다듬는다. 짧은 털도 보드라워 집사가 좋아한 잿빛의 털코트만큼 폭신한 맛은 없어도 여전히 힐링이다. 이어 놀아달라는 몸짓에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한 차례 하고 나니, 그렇게 기분이가 좋을 수가 없다. 새하얀 여름털코트를 입은 루루도, 집사도 말이다. 


냥빨에 이어 미용도 껌인 고양이라니, 어쩌다 네가 내게로 온 것인지. 루루만으로 나는 참 복도 많지 싶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루루의 첫 생일파티를 준비하며 여름털코트를 장만하여 신난 고양이와 그 고양이의 존재로 항시 행복한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여름털코트도 마음에 든다~ 기분이가 좋다냥




에~? 실상은 간절기용 털코트를 벗겨 간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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