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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Jun 14. 2024

냥빨데이를 아십니까

나 오늘 목욕하는 날이냥?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다. 타는 태양의 열기와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만물이 폭풍 성장을 하는 여름이 왔다. 루루는 여느 때와 같이 24시간 쉬지 않고 상영 중인 거대한 창밖 티브이를 직관하고 있다. 저마다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는 새들이 왔다 갔다 하고, 날벌레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테라스를 바라보는 루루는 심심할 틈이 없는 듯하다. 가끔은 재미있게 관람하다가도 급흥분하여 방충망에 냥펀치를 날리는 루루. 그 모습을 직관 중인 집사는 곧 구멍이 날 방충망의 운명 알기에 슬픈 운명 춰보려 흥분한 루루를 달랜다.


창밖티비 직관 중인 루루와 루루 직관 중인 집사는 도킹 중

날벌레들은 무미세방충망을 어떻게 통과하여 집에 들어오는 것인지, 불법가택침입을 응징하듯 루루는 날벌레 사냥한다. 스키터증후군이 심한 아들 녀석 덕에 여름마다 벌레와의 전쟁 중인 엄마집사는 루루의 뛰어난 사냥실력에 감탄하며 고마워하는 한 편, 루루의 심장사상충을 걱고 있다.


친구의 강아지 뽀삐가 심장사상충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사건은 십여 년이 지났어도 선명하다. 개, 고양이의 우심실과 폐동맥 내에 기생하는 사상충 감염에 의한 질병으로 모기가 중간숙주로 있, 나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매달 중순의 과제 심장사상충약을 잊지 않는다. 병원진료비를 조금 아껴보자는 심산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매하여 달마다 발라주는데, 목 뒤 털 가르마를 잘 타서 피부에 잘 흡수될 수 있도록 서서히 약을 떨어뜨려 문질러 주는 간단한 예방법이다. 루루는 잘 버텨주지만, 후각이 예민한 아이집사 둘은 두통이 오는 것 같다며 라벤더향이 나는 이 약의 냄새를  견뎌한다. 그렇기에 약이 흡수되는 48시간을 지나 루루는 곧 냥빨의 운명에 처하게 된다.



고양이들의 냥빨전쟁에 대해 익히 들어온 터라 루루의 첫 목욕을 앞두고 엄청나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엄청난 걱정에 김이 빠질 만큼 루루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목욕을 다. 낯설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제 몸의 한 부분을 집사의 다리에 대 도킹하고 의젓하게 버티는 루루를 나는 더 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한 번씩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크게 놀라는 듯하여,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수압을 약하게 하여 빠른 시간에 냥빨을 마는 것이 성공적인 냥빨의 법이었다.


비법이라 해도 사실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냥빨 순항의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닌,  루루가 을 싫어하지 않는 수속성의 고양이임 있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집사가 화장실에 갈 때 동행을 한다거나 냥빨을 거부하지 않는 걸  루루가 혹시 우리 루루가 수속성 냥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물그릇에 발을 담가 물로 찹찹 장난을 치거나, 빗에 물을 묻혀서 털을 빗어줄 때 골골송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루루는 그럭저럭 물을 좋아하는 수속성 고양이인 것으로 결론을 릴 수 있었다.


  수속성의 고양이 루가 캣타워의 우주선을 한가득 채 때마다 우리 가족은 적잖이 다. 증량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루루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사료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고, 집사들의 식사 시간에도 자기도 식사를 챙겨 달라며 냐옹, 냐옹 기척을 주었기에 가능한 폭풍성장이라며, 그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이 감개무량데....


 홀딱 젖은 루루를 보니, 작디작다.

우리 루루, 털 찐 거였구나.


루루는 살이 찐 게 아니라, 털이 쪘던 었나 보다. 작디작은 몸을 씻기며 더 부지런히 먹이고, 재미나게 놀아주고, 털도 더 정성스레 빗겨주어야겠다 집사는 새삼 다짐해 본다. 


샤워를 마치 몸도 마음도 말끔 루루에게 보상으로 까까를 준다. 집사와의 동거에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버티고, 좋아하는 것도 조금씩 참아가면서 집고양이의  삶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는 내 고양이가 참으로 기특하게 느껴진다. 다가오는 우리의 날들도 안온하길 바라며, 냥빨도 잘 해내는 고양이와 그 곁의 뿌듯한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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