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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May 31. 2024

털공 낳는 고양이

털갈이의 계절.

꽃가루 날리는 늦봄의 끝자락, 살랑살랑 털가루가 날려온다. 루루가 머물다 간 자리에 살포시 빠져 있는 털들이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을 타고 보드랍게 나부낀다. 여름을 준비하려 두꺼운 털코트를 벗고 있는 중인 루루, 존재 자체로 털화수분인 것 마냥 털을 뿜고 있다.


연달아 출산한 두 아이를 오롯이 길러내느라 체력과 면역력은 한 번씩 바닥을 쳤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원인 모를 소양증과 비염에 고생했던 시절이 거짓말 같다. 이 솜사탕 같은 털뭉치 녀석과의 함께 한 세 계절동안 더 건강해진 것은 필시 사랑의 힘 때문일 것.  





루루가 집에 오고 아이들과 그럭저럭 괜찮은 냥이 돌보기 딜이 성사되었다. 냥뒷간의 맛동산과 감자 담당, 두 개의 물그릇과 저녁식사 담당이 주마다 바뀌는 남매의 주 당번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있는 남매 덕에 오로지 엄마 집사일이 될 줄 알았던 수고들을 덜었다.


나는 매일의 식사제공과 냥치, 똥꼬 닦기- 격일의 털빗기- 주마다 손톱깎기와 격주의 발톱깎기- 달에 한 번 고양이 사상충약 바르기와 냥빨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덜어진 수고가 이 정도라니. 하나하나 꼽다 보니 웃음이 난다. 너도 되게 귀여운데 되게 피곤한 애였구나. 남매의 이닦기, 똥꼬 닦기, 목욕, 손톱깎기에서 해방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시다(바리)의 삶에 자발적으로 오르다니.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런 일들이 피곤하다거나 귀찮지가 않고, 되려 기쁨이 샘솟는다. 이것 역시 파워r 오브 러브인가. 최근 루루는 눈치가 아주 빤해졌다. 물티슈와 칫솔을 주섬주섬 챙기는 집사의 움직임에 삼십육계줄행랑을 치는 통에 냥치와 똥꼬 닦기 전 한바탕 전초전을 겪는다. 거품을 물고 찬사를 퍼부어온 고양이 항상성에 대한 집사의 무한 신뢰를 조금 흔들리게 했다는 점에서 살짝 아쉽게도 말이다. 그럼에도 엄마 집사의 품에서 끄-응, 한숨을 내쉬며 기꺼이 제 몸과 똥꼬를 내준다는 점에 여전히 감사하며, 집사는 기쁨과 감사를 끌어모아 위대한 사랑의 힘을 발휘한다.


털갈이 시기가 되니 격일로 해주던 빗질도 매일 해주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죽은 털이 집안 여기저기 날아다니지 않도록, 루루가 여름용 가벼운 털코트로 잘 갈아입을 수 있도록 집사가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 타이밍이다. 빗을 가지고 다가가면 눈치가 빤한 루루는 발라당 누워 자세를 잡는다. 다행스럽게 빗질을 아주 좋아하는 녀석이다. 스윽 스윽 빗어주면 골골고,고릉, 갸르릉, 갸r릉. 골골송으로 먼저 반응하며 집사, 여기도 빗어 줘라냥, 이리로 돌아 눕고 여기도 부탁한다냥, 반대쪽으로도 돌아 눕는다. 이 작은 일로 내 작은 고양이를 이리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집사, 빗질 좋아. 기분이가 좋아진다냥.


루루의 털을 빗어주다 보면, 내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햇님이가 항상 하는 말처럼, 마음이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달까.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꾸움뻑 꾸움뻑 아련한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루루에게 방금 세탁기에서 꺼내온 듯한 깨끗한 마음을 담아 꿈뻑 꿈뻑, 나도 좋아. 루루야 눈인사를 해준다.



오늘의 루루털은 솜사탕 같다. 'u '


샤워 후 줍는 집사들의 머리칼은 참으로 슬퍼 보이던데, 루루의 털들은 죽은 것마저 사랑스럽다. 보송보송하면서도 하얀 털들이 오늘은 솜사탕 같다. 루루의 구소한 체취를 품고 있는 구수한 맛이 날 것 같은 솜사탕털들을 한 가닥 한 가닥 소중히 모은다. 루루는 한 번씩 다가와 털뭉치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낯선 것에서 느껴지는 자기의 향기를 루루도 알 것 같다. 어쩐지 그것들 또한 버릴 수가 없어서 햇님이처럼 손바닥에 올려 동글동글 빚는다. 최대한 힘을 빼고 동글동글 굴리다 보니, 집사가 되어 가지게 된 동그란 마음처럼 보드랍고 둥근 오늘의 털공이 태어난다.


소행성 같은 루루의 털공들
엊그제, 어제, 오늘 차례로 태어난 털공이들. 오늘은 어느 공으로 놀까 루루야? 어느 공을 고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그렇게 태어난 루루의 분신, 털공이들이 집안 곳곳에 자리 잡아 있다. 여기저기서 이 털공들을 마주하면 루루는 때때로 손흥민 급 드리블 실력을 뽐내거나, 한 번씩 물고 와 루루가 좋아하는 공놀이를 하자고 한다. 털 빗기를 하고 털공을 탄생시키고 나면 의례 공놀이가 이어지는데...


굴려주고받고, 다시 보내고 잡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다고 계속해서 확인시켜 주며 주거니 받거니 교감하는 이 시간도 참 좋다. 집사는 고양이 루루와 티키타카가 꽤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하는 중, 오늘따라 되게 피곤해 보이는 루루. 되게 피곤한데 집사가 서운할까 봐 누워서라도 간신히 집사를 놀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쯤 되면 루루가 나를 돌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렴~


털 빗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와 고양이털공 만들기를 좋아하는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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