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러덩 누워 집사를 바라보는 루루를 보니 집사의 마음은 녹아내린다. 어쩜 저렇게 귀여울 수 있는지, 어쩜 저리 둥글둥글할 수 있는지, 어쩜 저렇게 보들보들할 수 있는지.맑은 날이나 궂은날이나, 바쁜 날이나 평온한 날이나 한결같이 세상만사를 천하태평 흘러내림으로 임하는 귀여운녀석 덕에 집사의 마음은 녹아내린다.
고양이는 집안 곳곳에 주르륵 흘러내리고, 집사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날마다 주르륵 흘러내리고 녹아내리는 통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질척임이 항시 집안 공기에 묻어난달까.여름날의 불쾌지수 높은 날의 그것과는 무언가 다른, 근질근질하면서도 달달하면서도 자꾸만 끌어당겨지는 기분 좋은 류의 질척임이다.
이 흘러내림-녹아내림,콜라보의 역사는 실은오래지 않았다. 아기 고양이 루루는 조심성이 많아 경계를 쉬이 풀지 않았으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 그 곁을 집사는 가끔 무심하게 녹아 질척였더랬다. 일방적이더래도 이것 또한 우리 관계의 일부로, 그것만으로도 집사는 참 행복하다며, 혼자만 녹아내려 질척였더랬다.
끼어또 루루 낑겨또
그러던 어느 날집사는 루루가쇼파와 벽 사이에 낑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조심성이 많은 우리 루루가어인 일로 우리 집 리모컨의 자리인 그 틈에 네 발을 비롯한 몸이 꼭 껴서, 흘러내리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집사는 필시 루루가 곤란에 처한 것이라 직감하고, 혹여나 구조의 손길에 루루의 살이 찝힐까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데......그러나 루루는 곧 다시금 그곳을 찾았다.꼭 알맞게 들어맞는 그 틈을 말이다. 그렇게 루루가 흘러내릴 최적의 장소를 찾는 것으로 흘러내림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루루는 틈을 찾는다. 엄마의 꼭 맞는 자궁에서 태아가 느끼는 안정감이나,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편안함 같은 것을 루루도 틈에서 느끼는 걸까. 자신이 가진 액체의 물성으로 자꾸만 흘러내리는 루루가 정말 귀엽다.액체화된 루루 곁에서 고양이액체설에 깊이 공감하며, 그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파르딘 연구원의 공로를기억한다.
흘러내리기 딱 좋은 틈이다냥
이어 루루는 조금은 이른 뜨거운 봄볕에집사의 녹아내림 영역까지 정복한다. 봄 햇살의 광합성을 즐기다 스르르 녹아내려 우주선에 퍼져 있기 시작한 것, 녹아버린 쿠키앤크림 아이스크림처럼말이다. 다가가 호로록 마셔버리고 싶은 충동은 귀여운 아가의 볼을 왕왕 물어버리고 싶은 것과 비슷한 류의 충동으로, 생각만 할 뿐 어쩌질 못한다. 귀여워서 집사도 녹아버리니, 녹아버린 것은 너인지, 나인지 모를 지경이다.
우리 냥이 녹아버렸다냥
항시 지켜보고 있다, 집사. 나는야 집사바라기
집사~~♡
고양이는 주르륵 흘러내리고, 그 모습을 보는 집사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날들이다. 집사에게 스며든 고양이는 집사 바라기가 되어 픽픽 쓰러져 발라당 발라당 집사의 손길을 기다린다. 냥며든 집사는 루루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 고양이들로 하여 더 자주 웃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앞으로의 날 또한 그러하길 바라며, 흘러내리고 녹아내리는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