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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일러 문 May 22. 2024

낭만 고양이 루루

집사, 달이 참 밝다

보름을 하루 앞둔 밤, 달이 점점 차올라 만월에 가까운 상현달이 떴다. 루루는 어쩐 일인지 캣타워에 앉아 지그시 달을 바라본다. 한동안 망부석이 되어 달을 바라보다가 본격적으로 달 감상을 할 요량으로 우주선에 탑승한다.

소원이라도 비는 것일까, 그저 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일까.




달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달밤에 관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스물네 살 가을밤, 전남친 현남편과 상동 cgv에서 영화를 보고 배웅해 주던 길 엄청 크고 밝았던 슈퍼문 내 생에 가장 컸던 달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가 본 영화가 무엇인지 기억 흐려졌더래도, 달 아래 마주 잡았던 손의 온기와 빌었던 소원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기에 슈퍼문이 뜨는 날이면 남편과 그날의 달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날 빌었던 남편의 소원은 지금과 매한가지로 로또 1등이었을까, 소원을 이룬 나는 지금까지 묻지 않았던 남편의 소원이 뒤늦게 궁금해진다.

 

사직 전에는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달과 함께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아이들과 퇴근길 차에서 나누는 대화의 단골손님은 그날의 학교 일상과 달,이었다. 어제 깎은 손톱이 저기 있다손톱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날도 있었고, 멀리 보이는 슈퍼문을 가까이자며 을 따라 무작정 안목해변으로 내달렸던 날도 있었다. 떠오르는 달을 보는 것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 마음을 먹는 것만큼이나 슴 벅차고 설레는 일이었으니, 달밤이 기다려지는 일이 새날의 중했다.


남편이 저녁 루틴인 운동을 다녀오는 길에 문득 전화를 해온다. 특별한 용건은 없다. "달님아, 창 밖 봐봐. 오늘 달이 되게 예쁘다." "달님아, 하늘이 정말 예뻐." 심심한 양반이라며 하던 집안일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본다. 무심한 양반이 찬사를 보낼 정도면 정말 대단히 아름다운 것으로, 예쁜 밤을 놓치지 않고 하나 더 수집했음에 행복해 한다. 우리는 그렇게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밤을 보내고 있다.  



집사, 달이 참 밝다.
루루야, 달이 참 예쁘다. 너처럼. :)


우리 루루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같은 것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곁에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시선의 끝에 역시 달이 있다.

 


루루야, 달이 참 밝다.


오래전 일본 소설가 한 분이 'I love you.'를 '오늘 달이 참 밝네요.'라고 번역 로맨틱 일화를 기억해 내다 뭉클해진다. 그러게, 우리가 서로에게 했던 수많은 달에 관한 말들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이었 모겠다. 심심한 양반이라며 남편의 전화에서 사랑을 읽지 못했던 무심 나를 반성하면서, 달을 바라보는 낭만 고양이 루루 덕에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달 속의 무수한 고백을 깨닫는다. 


앞으로의 밤들도 달을 보며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라며, 낭만 고양이와 함께 달을 바라보는 집사의 행복을 나눈다. 고양이는 그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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