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 알려 드립니다. 이 글은 결혼 24주년이던 2020년에 적었던 글은 브런치북으로 옮겨 두는 글입니다.
어제는 6월 6일, 결혼 24주년이었다. 96년 6월 6일이었으니까 벌써 24년이 되었고 내년이면 25주년 "은혼식"이다.
벌써 "은혼"이라니? 벌써 Silver라니? 결혼해 줘서 그리고 잘 살아 줘서 고맙다. 염두에 두긴 했었지만 참 날은 잘 잡은 거 같다.
해외, 특히 필리핀에 살다보니 적령기에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과 감사이며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감사할 일임을 알게 된다. 감사하다.
결혼할 때 결혼식과 사글세로 현금 딱 2백만원 부모님들께서 주셨었다. 목사셨던 아버지로서는 큰 금액이었을 것이고 감사한 일이었는데 맞추어 사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었는 데다 나 또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살지 않는 목사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전도사였던 내 월급이 60만원이었다.
덕분에 가정경제의 부담은 늘 아내의 몫이었다. 육아에 가사에 학습지 교사, 영어방문교사, 유치원, 한국어 교사, 피아노 레슨, 학원에 이르기까지 살아 오면서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보지를 못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늘 "사모"였다.
"사모"라는 말은 사람마다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와 아내는 교회 모든 사람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주일이면 아내는 늘 주방에 있었고 주중에도 성도들이 원하는 시간에 성도들과 시간을 보내 주려고 했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삶을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사는 것이 목사와 사모의 삶이라 생각하다 보니 나 또한 교회를 개척할 당시 성도들의 집 변기 뚫기나 잠긴 방문 베란다 타고 넘어가 열어 주기, 아내는 젖먹이 젖먹여 재워 주기등을 했었다.
"영적인 지도자?", "교회의 여성 지도자?"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우리 부부하고는 잘 안 맞는 수식어였고 목사와 사모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잘 할 줄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결혼 생활하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게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반지'가 있다.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반지랑 시계를 결혼 패물로 했었다. 그런데 결혼 하고 나서 3년도 채 안 된 첫째 서연이 돌잔치때 반지들을 다 팔았었다. 제대로 값을 쳐서 받지도 못하는 18K였는데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반지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근 20년을 살았다. 결혼 반지에 새기는 약속보다 마음에 새기는 약속이 더 깊고 확실하긴 한가 보다. 잘 살아 왔고 잘 지내 왔다.
작년에 한국에 들어 갔는데 갑자기 엄마가 금은방으로 가서 순금 5돈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주셨다. 돈도 없으실 텐데 매달 보내 드리는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으고 또 모으신 거 같았다. 이럴 필요없는데 감사했다.
그걸 받아서 세 딸과 나 그리고 아내가 18K로 가족 반지를 만들어 꼈다. 캠프왔다간 학생의 어머니께서 알려 주셔서 알게 된 곳에서 만들 수 있었고 가족 모두가 하나씩 반지를 가지게 되었다. 아내와 나에게는 결혼 반지가 되었다.
돌아 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지나 오면서는 쉽지 않았다. 어제는 락다운으로 갇혀서 지내느라 제대로 된 외식도 못 하고 장모님께서 보내 주신 돈으로 배달 음식을 시켜 집에서 결혼 24주년 기념식을 했다.
오레오 케잌을 직접 만들어 준 막내 해연이와 케익을 사와서 축하해준 희찬이와 영성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무엇보다 근 20년을 결혼반지도 없이 살아 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수고 많이했다는 말 전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랑 사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잘 삽시다. 금혼식 Gold 까지도 가야겠지요?
이 반지는 이제 팔아 먹지 맙시다. 대신 은혼식, 금혼식 때는 하나씩 더할 수 있도록 해 봅시다. 그게 뭐가 됐던 말이지요?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