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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Nov 28. 2024

나의 감정은 동정일까, 변화의 씨앗일까

추운 겨울, 밝게 웃으며 전단지를 나눠주시는 분께 손을 내밀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그들은 종종 바쁜 행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서 있다. 나도 그런 무리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얼마 전, 유달리 추운 날이 있었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역에서 나가면 집까지 또 어떻게 가나..'라고 생각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출구로 올라가는데, 그 순간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과 눈이 마주쳤다. 더 눈길이 간 이유가, 너무나 밝게 활짝 웃고 계셨다.


오버하는 게 아니라, 저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분 주위는 해가 떴나?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도 꿋꿋이 해야 할 일을 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너무 추운 날씨가 만든 붉은 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더라.


잠시 근처 올리브영으로 가 음료와 비타민 캔디 같은 것을 사고, 핫팩을 구매하기 위해 역사에 있는 약국으로 향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깊은 고민을 했다. '혹시 이런 내 행동이 단순한 동정이라고 느껴 불쾌하다 생각하시면 어쩌지.. 내가 뭔데 감히 그분께 이런 행동(?)을 행해도 되는 걸까..'라는 온갖.. 걱정들을 잔뜩 머금은 채 핫팩을 하나 결제하려는 도중, 갑자기 리더기가 작동을 안 한다며 핫팩을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현금으로라도 결제하겠다- 말씀드렸는데, 괜찮다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물론 그 약사 분께서는 핫팩의 의도를 모르시겠지만, 어찌 보면 그분도 선행을 하신 거나 다름없는 건데, 선행이 선행을 만드는 건가- 싶어 내 행동에 의심을 접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상대방이 시혜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포스트잇에 짤막한 글을 적어서 넣어뒀다. 그렇게 핫팩까지. 다시 그분께 다가가 쇼핑백을 드리며..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일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힘내시라고 별 건 아니지만 전달드렸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 걱정과는 달리 그분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미소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작은 행동이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이라는 주제를 자주 생각한다. 내 주변의 ‘평범하지만 소외된 사람들’. 버스 정류장에서 힘들게 버티는 어르신, 택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플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어르신, 시끄러운 밤거리의 한쪽에서 장갑을 끼고 폐지를 주우시는 어르신,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 혹은 무거운 짐을 든 채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려는 행인까지.



그들이 처한 상황은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모두가 작은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가꾸는 구성원으로서 단순한 의무감이나 동정심 따위가 아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를 돌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신경 쓰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미래 세대를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참참.. 든다.


*그렇다고 모든 걸 짊어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행동하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반드시 거창하거나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닐 터. 그날 내가 했던 행동은 작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방의 하루에 작은 따뜻함으로 스며들었다면, 그리고 그분이 그 따뜻함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돕는 일이 특별하거나 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자기중심적 사고가 팽배한 이 사회에선 더더욱. 그러나 사실,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는 데는 따뜻한 한마디, 작은 행동, 혹은 관심 어린 눈빛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며 다시금 전단지를 나눠주는 분들과 눈이 마주칠 때, 나는 조금 더 환하게 웃으며 인사드리려 한다.


이 작은 다짐이야말로 나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따뜻함을 나누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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