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세상이 되면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한 번쯤은 뛰어나와 눈을 굴리고 옹기종기 모여 눈사람을 만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고향이 경상도라 눈이 오는 날이 굉장히 귀했는데, 어렸을 적 눈이 오는 날이면 부모님께서 새벽부터 나와 동생을 깨워 ‘얘들아, 눈 온다!’고 말씀해 주셨다.
‘와!’하며 스키 장갑과 목도리, 모자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동생과 놀이터에 나가 눈밭을 구르고 눈사람을 만들었던 행복한 기억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눈사람을 만드는 순간을 좋아한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사람은 단순히 겨울놀이 이상의 의미를 담는 것 같다. 모두 한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협력하며 만들어진 눈사람은 그 자체로 성취와 기쁨을 준다.
서울에 117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2024년 11월 27일 기준으로, 서울의 일최심적설이 16.5cm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1970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11월 적설량 중 최고치였다. 이전 기록인 1972년 11월 28일의 12.4cm를 4cm 이상 뛰어넘은 수치이다. 지하철, 열차, 비행기 등의 운휴-지연-결항이 이어졌다. 강원도 원주시 교차로에서는 도로가 얼어붙으며 53종 추돌 사고가 발생했고, 화성 고속도로서 교통 통제하던 고속도로 운영사 직원이 미끄러진 버스에 치어 숨지는 사고가 벌어지는 등 한 마디로 ‘비상사태’ 수준이었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눈이 많이 쌓이는 걸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눈이 오면 낭만적인 풍경을 남기지만, 폭설이 내리면 늘 힘겨워할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일용직 분들의 노동은 중단될 수 있고, 전기와 수도가 끊길 수도 있으며, 적절한 난방과 보호시설 없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생명에 직결된 위험에 놓인다.
그리고 애묘인으로서, 길고양이 및 유기동물들이 생각난다. 어제 엄마와의 통화에서 ‘서울 상황 좀 괜찮냐, 넌 어떠냐, 우리 크림이(먼치킨, 남아, 4세, 장난꾸러기)는 추운 걸 너무 싫어해. 겨울이 되니 활발한 애가 전기장판 위에만 하루종일 누워있어. 집냥이도 저러는데, 밖에 있는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버틸까? 어디 따뜻한 곳에 잘 숨어 있으려나?..’ 아마 모든 집사, 애견인은 조금이나마 공감할 것이다.
아무튼, 하얀색과 눈사람의 계절이면 끊이지 않는 논란이 하나 있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의 심리’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도 눈이 아주 많이 쌓여서,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여 많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형태도 매우 다양했다. 고양이 모양, 오리 모양 등.
그런데 하루 뒤, 에브리타임(대학 커뮤니티 어플)에 ‘눈사람 부수지 마세요’라는 글이 많이 올라왔더라. 보니, 정성스레 만들어 둔 눈사람을 찾아다니며 마구 부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댓글에는 ‘꿀잼인데’, ‘찾아서 다 부숴놔야지’등의 반박성 댓글이 많았다. 아, SNS에서나 보던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도 어김없이 있다니..(사실 당연한 말이다.)
그렇게 처참히 부서진 눈사람들을 보며 부수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하게 됐다. 누군가 공들여 만든, 마음 담아 만든 것을 왜 부숴버릴까.. 한때 유튜브에서 ‘눈사람 부수는 사람’의 영상이 퍼지며 꽤나 큰 논란거리가 된 시기가 있다.
아, 겨울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구나..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은 위협적이고, 공포스럽다. 그리고 확실한 건, 그들은 피해의식과 결핍이 있어 보인다. 누군가 공들여 만든 눈사람을 부수며 느끼는 쾌감, 누군가의 존재를 ‘무시’함과 동시에 노력을 ‘삭제’해버리는 것이고 그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하는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녹아버릴 눈사람인데 뭘 그리 감성적이게 생각하냐’, ‘감정이입 하지 마라’,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지 마라’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눈사람’이 아닌 ‘폭력’이라는 점이다.
눈사람을 부수는 사람들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고,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못된 사람이며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를 지나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러한 행동은 특정 결핍이나 내적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해석한다. 경기대학교 공경식 교수는 이런 행동은 사회적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상대의 노력과 성취를 무너뜨리며 스스로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는 공감 능력의 부족과 함께 자신조차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심리적 결핍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뭐가 됐든, 눈사람을 부숴버리는 사람은 맥락 없는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 말은 즉슨 생물을 파괴할 수 있고, 동물을 학대할 수도 있으며, 결국 그 폭력성은 자기 자신에게까지 휘두를 수 있다.
눈사람이 많아질수록 눈사람을 부수는 행동 양상에 관해서의 팽팽한 갈등도 여전하다. 그런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눈사람을 부수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눈사람’이 아닌 ‘폭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