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카 Jul 30. 2022

[BIFAN2022] 독특한 변주로 번아웃을 이야기하다

<카브리올레>(2022), 조광진 감독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사직서를 하나씩 품고 다닌다고들 한다. 이 말은 곧, 직장에서 퇴사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은 많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2030 세대에서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떠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지치게 했으며, 끝내 퇴사를 결심하게 만들었는가?


2030 세대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과열된 취업 경쟁과 그에 따른 경제적 압박은 청년들에게 쉬는 순간 도태될 것을 예고한다. 쉴 틈 없이 달리는 그들은 이따금씩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증과 피로감을 마주하는데, 이러한 번아웃 증후군이 심하게 나타날 경우 퇴사, 우울증, 자살로 이어진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섹션 초청작이자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원작자 조광일 작가의 데뷔작인 영화 <카브리올레>는 청년 번아웃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출처 : 마파람

젊음과 열정을 회사에 바치고, 그렇게 받은 월급을 가정에 바쳐 온 청년 직장인 지아는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빡빡한 현실을 버텨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흉선암 판정을 받게 되고, 오픈카 '카브리올레'를 타고 전국 일주를 떠나자는 친구의 제안을 일과 수술을 이유로 거절한다. 다음날 들은 친구의 부고 소식과 여지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집과 직장. 번아웃에 빠진 지아는 충동적으로 미팅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수술비로 카브리올레를 사고 전국 일주를 떠난다.


출처 : 마파람

영화 <카브리올레>는 하나의 장르로 단정 짓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변주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극의 전반부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 직장인의 우울과 고뇌를 다루며, 중반에는 오픈카를 탄 로드무비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일상, 막바지에는 피 튀기는 빨간 맛 스릴러를 향해 질주한다. 다소 급격하게 호흡이 전환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영화가 루즈해질 때쯤 장르가 급변하기에 2시간 내내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 <카브리올레>에서는 감독의 전작 <이태원 클라쓰>와 달리 B급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었는데, 재치 있는 티키타카 대사, 흑백 화면&무성 처리한 모텔의 대화 장면 등 영화 곳곳에서 감독의 젊고 유쾌한 감각이 돋보였다. 일례로, 극 중 지아는 전국 일주를 떠난 이후로 'ㅆ' 소리를 들으면 앞뒤 안 가리고 쌍욕을 퍼붓는다. 집과 직장에서는 '참을 인'을 삼십 번씩 새기고 살아갔을 그녀가 자신을 향한 욕설에 참지 않고 반응하는 모습은 현실의 여러 부조리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큰 웃음과 함께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아쉬웠던 점은 극후반부 주인공의 심경 변화와 모호한 메시지이다. 지아가 삶의 의지를 되찾는 과정도 다소 급격하게 이루어졌으며, 다사다난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가 엄마에게 전화해 살고 싶다고 흐느끼는 장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극의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요약하면 '번아웃에 빠져 죽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죽을 뻔한 경험을 계기로 삶의 의지를 회복한다'인데,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여행과 카브리올레를 통째로 충동적이고 치기 어린 결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과감한 변주로 돌고 돌아 도달한 결말이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니. 감독이 번아웃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정말 번아웃 얘기만 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극적 모녀가 촉발한 모녀의 비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