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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csa Sep 03. 2023

아이와 나만의 식당

30년 뒤에 누가 더 기억할까?

마냥 귀엽게 아기 같던 아이가 어느덧 인생 10년을 살고 있다. 상상도 못 했는데 본인 스스로 사춘기가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 시기의 아이와 함께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의 식성이 아직은(?) 나와 비슷하다 보니, 주말에 국밥을 먹으러 종종 나가곤 한다.


서로의 입맛을 만족하는 국밥집을 찾기 위해, 몇 군데 돌아다녀봤는데 아이가 선택한 곳은 우성해장국이다. 사오십대 즈음의 남매로 추정되는 분들이 운영하는 식당인데, 소머리국밥, 콩나물해장국, 뼈해장국, 선지해장국이 주 메뉴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소머리 국밥에는 당면이 많이 들어있고,  추가 메뉴로 계란프라이 3개를 2000원에 판매하는데, 이 계란 프라이가 아이의 마음을 꽉 붙들어 잡았다. 집에서 꽤 거리가 있는 식당인데, 아이가 좋아하고, 잘 먹을 뿐 아니라, 오며 가는 길에 차에서 단 둘이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아내를 남편과 아들로부터 잠시 해방시켜줄 수 있는 많은 장점이 있다.  그래서, 되도록 주말에 한번 정도는 아이와 우성해장국을 방문한다.


자주 들리다 보니, 식당에 들어가면 메뉴를 먼저 읊어주신다. 소머리국밥에 당면 많이 소금 따로, 그리고 아빠는? 오늘은 선지? 뼈해장국? (선지요!), 아! 그리고 계란프라이 추가죠? 라며 요구르트 하나를 아이에게 쥐어주시며 주문을 받으신다. 아직, 아직 아내와 함께 간 적이 없어서, 나를 싱글대디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 불쌍하게 보시나? 하는 걱정도 드는데, 아직 메뉴 주문 이외의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아본 적은 없다. 그리고, 갈 때마다 점 점 양이 많아지는데, 매번 많아진 양을 싹 다 먹고 나와서, 어느 순간부터는 식당과 우리 부자가 꼭 무슨 배틀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주말에 일찍 일어난 아이를 꼬셔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일찍 일어난 목적은 패드와 게임이었을 텐데, 아빠의 꼬드김에 넘어간 건 자전거의 재미보다 국밥의 맛이 우선이었을 것 같다. 자전거를 타고, 집 앞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국밥집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녀석이 정말 잘 먹는다. 계란 프라이 한 조각이 남아 혹시 몰라 남겨둔 내 공깃밥을 빼앗아갔다. 한참 녀석의 먹는 모습을 보다 물어봤다. '나중에 아빠가 나이 들어서 혼자 움직이기 힘들어지면, 그때 아빠 데리고 여기 와줄 수 있어?' 아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정으로 듣더니,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어렸을 때 식당을 운영하시던 아빠를 따라 시장에 몇 번 따라갔다. 많이 걸어야 하고, 농수산물 냄새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던 나이였기에 그 시장 방문이 썩 맘에 들진 않았다. 단지 그때 갈 때마다 종류가 달라지던 해장국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쫓아다녔다. 아빠가 나한테 나중에 같이 다닐 수 있겠어?라고 묻지 않으셔서 인지,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등지셔서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는 어린 시절 이후에 아빠와 단둘이 함께한 식사가 별로 없었다. 그게 지금엔 너무 아쉽고 후회가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겐 참 좋은 기억이 자리 잡고 하루하루 추억을 쌓고 있다. 아이가 맛있어서 그냥 열심히 먹는 모습만으로도, 이 녀석이 크려고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것 같아서 고맙고, 감사하고, 감동을 받는 게 부모다. 30년 후, 녀석이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녀석이 아이와 함께 국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때 그 국밥집에선 누가 가장 맛있게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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