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어둠 속을 걷는 법 6-2
사순절에 함께 읽는 욥기
1.
“욥이 야훼께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린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칩니다.” (욥 42:1-6, 공동번역)
욥은 그리고 친구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사실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2천 년이 넘게 쌓아온 신학이, 그 많은 율법과 규율들이 하나님을 다 설명한다 생각했는데. 성경 66권이면 하나님을 아는데 충분하다 했는데. 그것이면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아는 그 예수를 내가 믿으면 되는 줄로 알았는데.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예수님은 저런 분이시다, 그리고 신앙은 이런 것이다 했는데.
그런데,
내가 잘 안다 했던 그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물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과 다투는 욥아, 네가 나를 꾸짖을 셈이냐? 네가 나를 비난하니,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 .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지만, 허리에서 나오는 저 억센 힘과, 배에서 뻗쳐 나오는 저 놀라운 기운을 보아라. 꼬리는 백향목처럼 뻗고, 넓적다리는 힘줄로 단단하게 감쌌다. 뼈대는 놋처럼 강하고, 갈비뼈는 쇠빗장과 같다. 그것은,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 내 무기를 들고 다니라고 만든 것이다. . . 누가 그것의 눈을 감겨서 잡을 수 있으며, 누가 그 코에 갈고리를 꿸 수 있느냐?” (욥 40:2-24)
욥의 그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는 아랑곳 않으시고 욥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으며, 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느냐? 그 코를 줄로 꿸 수 있으며, 갈고리로 그 턱을 꿸 수 있느냐? 그것이 네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 같으냐? 그것이 네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 것 같으냐? . . . 네가 창으로 그것의 가죽을 꿰뚫을 수 있으며,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 . . 그것이 흥분하면 얼마나 난폭하겠느냐? 누가 그것과 맞서겠느냐? 그것에게 덤벼 들고 그 어느 누가 무사하겠느냐?” (욥 41:1-11)
욥은 아무런 대답을 못합니다.
2.
베헤못은 하마입니다. 그리고 리워야단은 나일강의 악어입니다. 그 난폭한 짐승들은 우리 사람을 위해 있지 않습니다. 그 짐승들은 우리에게 위험이고 위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이고 원칙이라고, 또한 창조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창조하셨고, 또한 그렇게 운영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곧 사람을 위한 세상, 사람에 의한 세상, 그리고 사람의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우리 사람이 콘트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그리고 세상 운영의 원리 안에 있습니다.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 . 그것은,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 내 무기를 들고 다니라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 리워야단을 보아라.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 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노릇을 한다.”
그 거칠고 무자비한 베헤못과 리워야단이 함께 존재하는 세상에 욥과 친구들, 그리고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고난, 그리고 재난입니다. 그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우리 사람이 통제할 수 없고, 지배할 수 없습니다. 난폭한 그 두 짐승, 그 괴물은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힘(Natural Force)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어쩌지 못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고통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우리가 반응할 것인가, 어떻게 맞설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 속에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 속에 악(惡)을 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의지 속에 선(善)을 택할 수 있습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우리 인간의 멈출 줄을 모르는 탐욕과 미움과 시기와 증오와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멈추고, 악을 멈출 수 있는 자유, 회개를 택하고, 용서를 택하고, 자비를 택하고, 선(善)을 택하고, 또한 사랑과 평화를 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어둠이 아닌 빛을 택할 수 있고, 악(惡)이 아닌 선(善)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善)이 바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보여 주셨습니다.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 선(善)을 선택한 그 결말이 어떻다는 것, 죽음과 악의 끝이 어떻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계속해서 선택해서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길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