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는 예수 (9-1)
함께 읽고 걷는 더 드라마, 예수의 길 떠난 가족
1.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마태복음서 6:1)
‘나는 위로와 위안을 얻기 위해 교회에 온다’, ‘나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교회를 찾는다’ 신앙인들이 교회에서 바라고 그래서 교회를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과연 교회는 나에게 위로와 위안만을 주는 곳일까요? 성경은 나에게 마음의 평화만 주는 책일까요?
위로와 위안,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주는 말씀들, 물론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께서 당시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 하신 그 말씀들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그 의미를 찾아 따져 읽고 따져 듣고 솔직함으로 묵상을 하다 보면, 오히려 나를 꾸짖고 아프게 만들고, 새겨 읽고 듣기엔 다소 거북하고, 그래서 사실 조금은 꺼려지고 그래서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머리와 가슴에 그리고 나의 삶에 새기면 새길수록 무섭고 두려운 말씀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그래서 위로와 위안,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찾았던 교회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가벼워지려고 펼쳐 읽었던 성경 말씀이 오히려 나를 더욱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때 당시의 사람들의 얘기다, 나와는 별 관계가 없다, 남의 일이다, 그렇게 가볍게 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신앙을 한다 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서운한 말씀이고, 무거운 말씀이고, 또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경고입니다.
여기 마태복음서 7:21-23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마 7:21-23)
한마디로 말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이제 너희와는 더 이상 볼 일 없다!”
누가복음서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눅 13:23-28)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불법을 행한 것입니까? 주님,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님은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왜 불의를 일삼는 자들입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열심히 믿었고, 남보다 열심히 신앙 생활도 했고, 다 했는데. 도대체 왜 . . .
당연히 유대인들이라면 지켜야 할 신앙의 세 가지 실천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열심히 기도하고, 또한 개인 신앙 훈련, 영성 실천으로서 금식을 하고. 그렇다면 그것들을 게을리하는 것이 문제지, 왜 그걸 누구보다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문제일까요? 특히 바리새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이 어떻게 불의하고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일까요? 그런 신앙의 실천이 왜 문제가 될까요? 실천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그렇게 하듯이,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아라. . .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 . 너희는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띠지 말아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한다. . .” (마 6:1-2, 5, 16)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위선자는 영어로 <Hypocrite>, 그리스어로 <ὑποκριτής>입니다. ‘stage actor’ 즉, ‘무대 배우’를 말합니다. 특히 고대 그리스 극장의 배우, 얼굴에 큰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던 그 무대 배우를 말합니다.
배우는 무대 위에 선 사람들, 관객들 앞에 선 사람들입니다. 저 멀리 있는 사람들도 여기 나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연기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 무대 위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지금 내가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지 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나의 의도는 무엇인지, 코 앞에 있건 저 멀리 떨어져 있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합니다.
무대 배우는 사람들에게 ‘실제 나’가 아닌 ‘다른 나’를 보여 주는 사람들입니다. 연기를 합니다. 자연스레 과장도 있습니다. 사실 과장도 필요합니다. 일종의 자기 과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연기하는 그 인물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대 위의 그 ‘다른 나’와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를 관객이 따라갈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관객은 마침내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실제 나’가 아닌 ‘다른 나’를 볼 것이고, 공감할 것이고, 그리고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나’를 연기한 배우인 나에게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배우인 내가 연기를 잘하면 잘 할수록 더 큰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무대에 선 배우에게 관객이 보내는 그 박수와 환호성과 갈채는 그래서 배우에게 주는 최고의 상입니다. 물론 거기에 돈과 명예까지 얻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받았다.” (마 6:2, 5, 16)
빈 말씀이 아닙니다. ‘연기하는 너희가 받을 상을 이미 사람들로부터 다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줄 것은 더 없다’는 것입니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이미 다 받았으니, 그것이면 충분한 줄로 알아라’하는 것입니다.
대신, 연기를 하지 않은 너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실 다른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연기 전혀 못한다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너희,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 너희, 남들에게 뭔가 보여 주려고 애쓰는 것을 포기한 너희,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감히 연기할 꿈도 꾸지 않는 너희에게는, 비록 사람들에게서 박수도 칭찬도 받지 못하고, 땅에서 얻는 보상은 눈 씻고 찾아도 없는 너희에게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상을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연기할 생각 말고,
“. . .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자선 행위를 숨겨두어라. . .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 .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낯을 씻어라.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아라. . .” (3, 6, 17-18)
너희가 비록 당장에는 관객들에게,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지 못하겠지만, 너무 형편없는 배우라고 놀림도 받겠지만. 그러나 사실 배우가 아닌 너희는 숨어서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숨어서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들인 이웃을 돕고, 숨어서 모르게 하나님을 향한 너의 신앙을 훈련하고 단련하고 실천해라.
그리하면,
“남모르게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 6:4, 6, 18)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를 하나님은 항상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 그리고 곧 그 보상을 하실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카메라를 들고 줌으로 당길 수 있는 만큼 당겨 너희를 클로즈업해서 보신다, 그러니 연기할 생각은 말아라, 그러니 거짓말할 생각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아 아신다, 다 보신다, 그리고 이제 곧 갚아 주실 것이다.
지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