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드디어 나에게도
“와 축하해, 이제 부자네”
친한 지인들에게만 살짝 자산을 공개했다. 이어지는 부러움과 존경(?)의 메시지들. 뿌듯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2021년. 직장생활 10년차, 35세. 드디어 현금 자산 1억을 달성했다.
딱히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표는 없었다. 1년마다 적금을 갱신하고 비상금 통장, 26주 적금. 차곡차곡 돈을 모으다보니 어느덧 가계부 자산 현황에는 100,000,000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찍혀 있었다.
1억이면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올해 10월이면 전세 만기지! 지금 살고 있는 집(방)은 역세권에 신축 빌라여서 깨끗하고 주변에 편의 시설도 많았다. 다만 원룸이라 짐과 함께 산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현금 1억이 가시권으로 다가온 지난해 여름. ‘그래, 내년에는 회사와 가까우면서 깨끗한 투룸으로 옮겨보자. 전세금은 오르겠지만 현금 1억이면 전세 대출 금액을 좀 줄일 수 있을 테니 이자 부담도 덜 할거야’
처음으로 가져본 큰 돈을 수중에 넣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 때도 차마 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 그저 은행의 비율이 높은 집에서 내 비율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지금보다는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 이것만으로도 벼락 부자가 된 듯 행복감에 취했다.
그리고 8월. 전세 계약을 두 달 남기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직으로 인해 경기도 안양 부근으로 출근, 그러나 생활권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맞는 사당 인근으로 위치를 정했다. 각종 부동산 어플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예산은 2억에서 3억으로 수정했다. (이때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신축 건물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사당-이수를 (건물주들이) 한 묶음으로 보는 통에 트리플 역세권이라나 뭐라나.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자산, 1억을 믿었다.
이수역에서 사당역쪽으로 훑어보고, 주변 낙성대, 서울대입구, 남성까지도 사정권안에 넣었다. 지난번 집을 알아보던 때보다 주머니는 든든하다. 발품까지 더해지면 오늘 하루안에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첫 부동산에 들어간지 30초만에 모든게 망상임을 깨달았다.
“요즘 전세 없어요. 특히 이 동네는요. 얼마 보신다고요? 2억? 없어요 없어!”
‘그럼 금액을 조금 올리면…’ 이라는 말조차 꺼낼 틈을 주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를 말해야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줬을까. 다음, 그 다음 부동산에서도 몇 마디 말을 더할 수 있었다는 것 말고는 다를 바가 없었다. 금액은 마지노선인 3억까지 올렸고 그나마 가격이 맞으면 건물 나이가 늘어났다. 신축이 자식급인 25년, 30년된 빌라와 연립주택. 지층이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 지하철 역에서 15분, 20분 거리. 자산이 늘어난 만큼 일상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이사하려고 했는데, 그런 집에 살면 매일매일이 불행할 것만 같았다.
난 그렇게 현금 1억의 가벼움을 절절히 실감했다.
이 돈으로 건물주는커녕 서울에 오래된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겠지. 회사를 그만두는 건 무모하기만 하다. 요즘 유행하는 파이어족이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기만 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왜 퇴근을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퇴근하고 나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목표했던 자산을 손에 넣은 지금, 드디어 돈을 모으는 것보다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최소한의 기준을 갖춘 내 공간(잠깐 빌린)에서 내일, 내년, 10년 후에 똑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PS. 이 글은 2021년 9월에 작성했던 글입니다.